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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남북관계,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변화 있을 수 있어"

"중국, 사드로 부딪혀도 절대로 우리와 관계 못 끊어...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

“지금이라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남북관계에서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보수단체의 맏형’을 자부하는 한국자유총연맹. 지난 4월 자유총연맹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김경재 회장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김 회장은 8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평화공존교류를 진심으로 원하지만 북한이 미사일만 쏘고 있으니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변화가 있으면)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시간은 곧 끝나게 돼있다”며 “(내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북한에 대해 탄력 있는 대북정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북한에 끌려 다녀서는 결국 대남공작에 말려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 이후 냉각된 한중 관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이 우리와 사드에 대해 부딪히는 부분은 있지만 절대로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이 입증됐다”며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적게 오고 화장품이 적게 팔리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 문제를 중국의 잣대로 보는 것은 사대주의”라며 “중국 반응에 대해 너무 일희일비하고 쩔쩔매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 지난 4월 자유총연맹 16대 회장으로 취임한 후 5개월 정도 지났는데 소회는?

“취임은 4월에 했지만 선거를 2월에 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6~7개월 정도 됐다. 자유총연맹은 350만 회원을 자랑하는 큰 단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난 전통적인 방공의식을 세계화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선거에 나섰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화해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살리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승만, 박정희에 김영삼, 김대중을 합친 것이다.”

- 왜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4명인가?

“이승만과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4명의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는 것이 이 나라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이들을 합치면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다. 나는 이승만 정권 때 시위를 했고 박정희 정권은 대놓고 반대했던 사람이다. 당시 미국에서 10년 이상 쫓겨 살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니 박정희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고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주화의 경우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헌한 것이 있다. 21세기는 나중에 판단하고 20세기에서 끊자는 생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외했다.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우리가 후기 조선도 아닌데 왜 광화문에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이순신과 세종대왕만 있나.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의미로 네 사람의 동상을 세우면 이승만한테 오는 사람들이 김대중한테도 분향하고 갈 것이다. 상징적인 강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살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여기서 분열을 말하지 말라고 적고 싶다.”

- 최근 사드 한반도 배치를 놓고도 갈등이 있다. 아울러 중국의 반발도 심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왜 한반도 평화 문제를 중국의 잣대로 보는가. 그것은 사대주의다. 중국이 사드에 반대하는 것은 지도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타났듯이 중국은 우리와 사드 문제에 대해 부딪히는 부분은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와 절대로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사드로 한중이 약간 긴장 관계에 있어 요우커가 적게 오고 화장품이 적게 팔리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중국에서의 한류는 중국 인민들의 자체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다. 충분히 회복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절대 한국을 무시 못 한다고 본다. 그래서 중국 반응에 대해 너무 일희일비하고 쩔쩔매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러시아도 사드가 자기들을 겨냥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위협이 안 되니까 별로 신경 안 쓴다. 결국 사드 관련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큰 문제가 없다. 충분히 외교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평화공존교류를 진심으로 원한다. 대통령 후보가 될 때도 통일에 대해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내가 약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서 열심히 도왔다. 그런데 북한이 죽기 살기로 미사일만 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줄 수는 없지 않은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럼 개성공단을 10개도 만들 수 있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수 있다. (김정은은) 왜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고 포탄으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말씀하신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북한이 계속 미사일을 쏘고 있지만 절대 우리한테 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신들도 절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향후 유엔 차원에서 북한 핵무기를 해체하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곧 나올 것이라고 본다. 미국 일각에서는 족집게 작전이라고 김정은만 딱 뽑아내는 작전에 관심이 있다. 소위 백두혈통만 권력에서 배제되면 북한 군부나 당은 자유를 얻는데 협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은의 시간은 곧 끝나게 돼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입장에서 DJ 정부의 햇볕정책과 대북 퍼주기가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도움을 줬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DJ가 건네준 돈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공격하는데 DJ로서는 그 돈이 핵무기 개발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나쁘게 이용한 것이 문제지, 돈 건넨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면 안 된다. 당시 쌀을 보내면서 북한이 원래 보내기로 한 곳에 안 보내는 것 같아 확인하려 했지만 안 됐다. 그래서 돌아와서 쌀이 인민군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DJ에게 대북 지원을 서둘지 말고 조정하면서 하자고 했다가 결국 (대북 정책에서)빠지게 됐다. 햇볕정책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조정을 요청했다가 주군으로부터 배제된 것이다. DJ가 그것 때문에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결국 두고두고 당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5억달러 중 5000만달러는 중간에 누군가 해먹은 것이다. 사실 그것도 조사해야 한다. 4억5000만달러 큰 돈 아닌가. 정확히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핵무기 개발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논리는 반박하기 어렵다. 주변 참모들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왜 참모들은 한 마디도 사과하지 않는가. 그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최근 탈북이 이어지면서 김정은 체제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는데 북한에 대한 전망은?

“김정은 절대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한다. 구소련이 망할 때 8000개 이상의 핵탄두를 갖고 있었지만 핵탄두가 나라 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조절하는가가 중요하다. 정치적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한반도 평화무드를 끌어가는 것이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서 자유총연맹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우리나라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북한에 대해서 능신능굴(能伸能屈)하는 입장은 안 된다. 탄력 있는 대북정책을 해줬으면 좋겠다. 북한의 요구에 너무 끌려 다녀서는 결국 북한의 대남공작에 말려든다는 것을 꼭 지적하고 싶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일정한 라인을 갖고 북한의 대남공작에 결과적으로 이용당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틀림없이 북한은 내년 대선을 이용해 정치공세를 벌일 것이다. 우리는 단호히 맞서서 싸워야 할 것이다. 설사 통일이 당장 안 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자유총연맹의 역할은 무엇이고 통일운동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350만 회원 중 통일선봉대를 꾸려 엘리트 그룹으로 만들었다. 북한의 민족통일전선과 비슷한 것이다. 북한의 문이 열릴 경우 우리 사회에 있는 민간단체가 북한의 자유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여는데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지키고 자유와 평화를 같이 즐길 수 있게 하는데 우리가 따뜻한 안내자, 협조자가 되겠다는 것이 자유총연맹의 모토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통일이 되면 8000만명이 된다. 8000만이 되면 잠재력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진다. 다만 우리 국민들은 개인적으로 우수한데 단결을 못한다. 이제는 싸우더라도 헤어지지 말자. 다시는 찢어지지 말자.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백성들 밥을 먹여주는데 돈을 모아서 공동으로 나눠줄 것인가, 세금을 걷을 건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형제가 싸우는 부끄러운 짓거리를 우리 민족이 하고 있다. 한 나라가 돼 사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나는 젊은 남편을 보내는 아낙네의 노래다. 남북이 소통이 잘 돼서 두만강변에서 자유로워지고 고통이 경감된 북한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를 수 있는 날이 생전이 꼭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김경재, 그는 누구인가?

김경재(74) 회장은 DJ 측근이었으며 18대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호남 출신 정치인이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순천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유신 체제하에서 재야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1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1987년 귀국,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전남 순천에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7년 대선 때는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을 맡아 DJ의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캠프의 홍보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일조했으나 이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친노(노무현)세력과 갈라서게 됐다.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최근까지 청와대 홍보특보를 역임했다.

2016년 9월 9일 아주경제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