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의 진실, 변희재 토론 준비용 문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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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 2012-11-12 17: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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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의 진실, 변희재 토론 준비용 문답 전문 


1111, 동양대 진중권 교수와 주간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 간의 ‘NLL의 진실관련 곰TV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변희재 대표는 미리, 그간 NLL 관련 하여 문답식으로 풀이한 기사를 주간 미디어워치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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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2007111NLL에 대해 땅따먹기 할 때 비슷한 싸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발언한 바 있다. 과연 NLL은 어떠한 논리적 기준도 없이 땅따먹기용으로 그은 선인가?


  ) NLL1953727일 한국 군사정전협정 이후, 약 한 달 뒤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의 군사적 충돌을 해상에서도 막기 위한 후속조치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와 북한 황해도 사이의 대략적인 중간 수역을 이은 북방한계선이다.


  이미 서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UN군 입장에서는 그 어디에도 선을 그을 수 있었으나, 정전협정 규정과 국제해양법을 절충하여 매우 논리적인 선을 그었다. 정전협정 제 2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15에는 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며 항구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서해 5도의 연결하는 윗선을 한 줄로 긋지 않으면 서해5도는 북한의 수역에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줄로 이어서 긋되, 북한 황해도와의 대략적인 중간수역을 그 기준으로 했다. 이는 국제법 기준에도 걸맞은 것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면서도 서해5도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가장 최적화된 선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NLL을 땅따먹기에 비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망언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20071011일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입니다. 영토 안에 줄(NLL) 그어놓고 이걸 영토선이라고 주장하고 영토 주권 지키라고 자꾸 얘기하면 정말 저 헷갈리죠."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맞는 말인가?


  ) NLL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해상에서의 실질적 군사분계선의 역할을 하는 해상경계선이다. 이는 마치 휴전선을 영토선이라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제로 1992년 남북당국 간에 채택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도, 국가 간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영역이 아니라 구역이란 표현을 썼다. 즉 대한민국 정부에서나, 애국우파 진영 어디에서 법적으로 NLL을 영토선이라 주장한 바 없다. 노대통령의 영토선 부정 발언 이후에 정치적 레토릭용으로 일부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발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헌법에서 규정된 영토 조항은,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로 평화통일의 의무를 대통령에 부여하면서, 영토고권 회복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대통령은 영토 보전의 의무와 함께, 자유통일을 평화롭게 달성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한반도 전체로 확산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휴전선이 영토선이 아니라고 해서 휴전선 이남의 철원, 파주 등이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므로, 북측에 넘겨줘도 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이 영토선이 아니므로 NLL, 이남의 서해5대 인근바다와 서해바다를 북한에 넘겨줘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영토선이 아닌 것을 다들 알고 있음에도, 서해바다를 북측에 넘겨주기 위한 여론선동용으로 영토선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면,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 실질적인 해상 군사분계선 역할을 하는 해상경계선이다. 이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취해오던 UN사 역시 1차 연평해전 직후인 1999615북방한계선은 실질적인 해상분계선이며 지난 40여 년간 쌍방이 인정하고 지켜온 엄연한 해상경계선으로서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국제관습법적으로도 응고의 원칙에 따라 법적 실효성을 확립하고 있다. 1953830일 선포 이래 1973년까지 북한 측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특히 1959년 조선중앙연감의 북방한계선 표기, 1963년 군사정전위원회에서의 북방한계선 인정 발언, 1984년 북한 수해물자 수송선박의 북방한계선상 인수, 2002, 2011년 북한 조난선박의 북방한계선상 인수 등의 사례에서 이미 북측이 NLL을 인정해왔다.


  이런 응고의 법칙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른바 프레어 비히어 사원 사건으로 판례가 존재한다. 1907년 프랑스의 국경위원회가 프레어 비히어 사원을 캄보디아 영토 내로 잘못 표시했고, 태국은 실측 결과 1934년 이 지도에 착오가 있는 것을 발견, 16년이 지난 1950년에서야 비로서 이 사원 지역에 국경수비대를 배치하였다. 캄보디아 측은 1959년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태국 측은 항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음에도 이에 항의하지 않았기에 이를 묵인한 것으로 본다고 캄보디아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1953년 당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UN군이 자발적으로 북방한계선을 긋고 북상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북한 측은 오히려 안도했고, 이를 20년 간 묵인해왔다면 국제관습법 상 응고의 법칙이 적용되어, 정전협정과 같은 수준의 묵시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와 동양대 진중권 교수 등 친노종북 세력들은 1992년 남북불가침부속합의서 제 10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내용을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협의 관련 주장을 정당화 하고 있다.


  )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 배경과 협의 내용을 모르던지 아니면 고의로 모른 척한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소련연방 해체,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체제유지에 위협을 느낀 북한 측이 벼랑 끝에 몰려서 시작한 협상이었다. 특히 당시 북한의 GDP는 마이너스로 떨어지던 상황이었다.


  이 당시 노태우 정권은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7.7선언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이에 체제 위협을 느낀 북한 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했고, 노태우 정권과 미국은 이에 동의하여 한반도 내에 핵무기는 없다고 선언하며,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전제가 성립되었다. 결국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각기 서명 및 발효한다.


  이 당시의 모든 협상은 남측이 주도했기 때문에 남측은 불가침 조항에 반드시 NLL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야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이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11210일부터 시작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 연형묵 총리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이니 이번에는 꼭 합의해야 한다. 서로 체면을 살리는 수준에서 양보하고 절충하면 쟁점 조항들을 타결할 수 있다. 합의서에 찍을 도장을 갖고 왔다고 언급했다. 1차 회의에서 북한은 양보안을 내놓겠다며 북과 남의 불가침 경계선은 1953727일부 조선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전격적 수정 제의하였다.


  이러한 북측의 양보로 남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되었고, 그 직후 북한의 안병수 대변인은 불가침 경계선은 원래 군사분계선을 불가침의 경계선으로 한 데 대해서 우리가 제기했는데, 남측에서는 이 경계선뿐만 아니라 해상에 있는 도서라든가 이런 것도 염두에 두고서 경계선을 긋자고 제기를 해왔다. 우리는 이것을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에 대해 남북한 간의 불가침 경계선이 군사분계선이고, 불가침 구역은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 즉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구역이라는데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전협정에 명기되지 않은 북방한계선에 대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지금까지 지켜온 관행을 인정한다고 명확히 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이정희, 진중권 등이 선동하는 내용은 이런 남북기본합의서가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발표 이후에 시작된 남북불가침 조항에 대한 구체적 이행 대책을 협의하는 군사 분과위에서 논의된 부속합의서이다.


  북측은 남북기본합의서 규정을 교묘하게 비틀어 서해에는 정전협정 해당 조항에 따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계선과 구역으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전협정에는 해상경계선 조항이 없기 때문에 우리 측은 이에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북측은 불가침의 이행을 위한 전담기구인 군사공동위의 기능상 반드시 다루어야 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런 북측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남북기본합의서가 준수되는 한 항구적으로 운영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 NLL이 정식 의제로 올라가게 될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826일 제 7차 군사 분과위 회의에서 임태순 통일원 자문위원, 이영호 대령 등 남측 대표단은 남북한 간에 경계선이 없지만 19537월 정전협정 체결 직후에 선포한 북방한계선을 지금까지 쌍방이 지켜왔다. 그것을 경계선으로 정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고 못을 박는다. NLL을 경계선으로 정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이렇게 군사 분과위에서는 남측의 원칙적 자세로 협의가 안 되자 1992915일부터 열린 제 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은 기존에 주장하던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 추진한다는 조항을 스스로 삭제했고, 결국 아무 것도 담보될 수 없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후퇴했다.


  이는 애초에 군사공동위원회와 같은 NLL을 협의할 구체적 기구가 명기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조항이었고, 실제로 이를 합의한 노태우 정권, 이를 승계한 김영삼 정권, 심지어 김대중 정권에서조차 그 어떤 남북회담에서도 NLL을 협상한 바 없다. 애초에 북측이 요구한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 추진한다는 조항이 폐기되면서, 남측이나 북측이나 NLL은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상호 인정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을 일으키고 서해 5도 한참 밑에 내려온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2000년엔 후속조치 성격으로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하며,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하며 NLL 의제설정에 돌입했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조항 등을 위반했기에 그 부속합의서의 협의 사항을 남측이 이행할 의무는 없어졌다. 이에 김대중 정부에서조차 NLL을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녀 노무현 정권에서는 정상회담 이후 벌어진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서 22항에서 쌍방은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하여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덜컥 합의해준다. 바로 노태우 정권에서 강하게 반대하여 무력화시킨 조항을 노무현 정권에서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는 북한이 절실히 원했던 것이고, 이 조항을 근거로 NLL을 합법적으로 무력화시킬 수단을 갖게 되었다.


  즉 북한에 NLL을 넘겨줄 수 있는 단서 조항은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서인 것이다.


  ) 그래도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에 나온 대로 NLL을 추후 협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닌가?


  )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에는 단지 해상경계선 뿐 아니라, 남북, 특히 북측이 지켜야할 다양한 불가침 이행사항 등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 12조에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 인사 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 추진한다고 되어있다. 불가침 부속합의서는 더 상세하다.


  더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사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남북기본합의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북한은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를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동구권의 몰락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작성한 남북기본합의서 대신,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만 앞세운다.


  특히 북한 2006년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전제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이에 북측도 들고 나오지 않는 남북기본합의 사항을 이정희, 진중권의 남측의 친노종북 인사들이 들고 나온 것은 북측도 어리둥절할 친북 행위이다.


  ) 노무현 정권 때는 실제로 NLL 문제를 어떻게 협의해갔는가?


 정상회담 전에 20046.4, 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 이른바 ‘6.4합의서를 채택 발효시켰다.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하여 남북 함정간 통신 실시, 기류 및 발광 신호규정 제정, 활용 불법조업선박에 대한 정보교환, 서해통신연락소 설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군사분계선 상 선전수단 제거에만 관심을 가졌고, 실제 우발적 충돌방지 관련 사안은 이행하지 않았다.


  200623, 3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열렸고, 여기서 북한은 기존의 연평은 물론 강화만까지 포함하는 넓은 수역의 공동어수역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2006516, 4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는 북측이 NLL 협의를 요구하고 나서자, 한국 측 한민구 수석대표는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충분히 이행되어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마련하는 협의의 틀에 따라 협의해 나갈 수 있다, 사실 상 거부의사를 명확히 했다. 북한은 이미 연평해전을 일으켰고, ‘6.4합의서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517, 18일 회담에선 북한의 김영철 단장은 그간 스스로 무시해오던 남북기본합의서 조항을 들고 다시 NLL 협상을 요구, 우리 측은 역시 NLL 준수와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군사 분야 합의사항 이행 등 2가지 조건을 내걸어 거부하였다.


  이렇게 우리 측이 군이 NLL 협상안을 거부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한달 뒤 2006616일 계룡대 특강에서 현재 남북한 간 신뢰의 장애요소이자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N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는 신뢰가 중요하고 전략적 유연성이 있어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NLL(북한과) 협상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국방장관은 남북회담에서 (NLL 협상이) 안 됩니다 라고 했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금기는 없다NLL 협상론을 제기하며 군에 경고를 주기도 했다.


  ) 간결과의 토론회에서 진중권은 NLL 관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단지 말을 거칠게 하는 수준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했다. 이는 사실인가?


  ) 노무현 대통령 혼자서 NLL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게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전후에 친노세력 전체가 조직적으로 뭉쳐서 NLL 무력화 기도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1년 전인 2006616일 계룡대 특강에서 현재 남북한 간 신뢰의 장애요소이자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N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NLL 협상론을 제기했다.


  2007719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은 친노세력의 핵심인 이재정 통일부장관에게 군사문제인 북방한계선에 대해 다른 부처가 앞서가는 발언을 하지 마라 달라라고 요구하여, 청와대 내에서 청와대에 도전으로 인식, 후임자를 물색하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재정 장관은 정상회담 합의가 이루어진 직후 8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답변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은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16일에는 안보를 어떻게 지켜내느냐 하는 방법론에 대해 우리가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 파장을 일으켰다.


  818일 개최된 청와대 남북정상회담 준비회의에서 서해평화지대와 공동어로구역 설치를 북측에 제안할 거라고 논의하면서도, 이재정 장관 등은 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없이 우리 내부에서는 계속 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주석 청와대 전 안보수석비서관 역시 육지에 인접한 북방한계선 남북의 수역은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이 선이 영해선을 의미한다고 하면 위헌적 주장이 된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육상의 군사분계선만 규정했을 뿐 해상경계선을 따로 정하지 않아 휴전 직후 유엔군사령관이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제 그것이 영해선이라면 우리 영토를 유엔군사령관이 지정한 셈이 된다. 또 이 선이 영해선이라면 육상의 군사분계선도 국경선이라고 해야 할 텐데 정작 그런 주장은 없다2007828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다.


  홍익표 통일부 정책보좌관도 822일 국정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NLL에 대한 우리 내부의 논의나 남북 간의 협의를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NLL이 조금이라도 변경될 경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829일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해서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새 경계선이 확정되기 전까지 확고하게 불가침 경계선으로 인정토록 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협의를 해나가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그 동안 역대 정부 가 취해 온 정책방향으로 보나 합리적이라 본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노무현 대통령 혼자가 아니라, 이재정, 홍익표, 서주석, 이종석 등 대표적인 친노인사들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NLL은 영토선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의 시각은 노대통령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 노대통령은 200711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에서 어쨌든 NLL 안 건드리고 왔다고 해명했다. NLL을 지켰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 NLL을 안 건드리고 왔다는 발언을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한 달 이상 뒤에야 확답하는 것 자체가 일국의 국군 통수권자로서 비정상적인 행태이다.


  정상회담 끝난 직후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10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나라 공식 문서에도 NLL이 영토적 성격이라고 써 놓은 것이 없다. NLL이 영토개념이라는 것이 어디에도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또 다시 NLL 협상론에 불을 지폈다. 반면 김장수 국방장관은 서해 NLL을 끝까지 지킨 것이 이번 회담의 군사 분야 성과라고 말하며 언론에서는 통일부와 국방부의 NLL 대결이란 제목의 보도가 쏟아졌다. 106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NLL 문제를 협의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경계선 유지라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NLL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가진 여야 정당대표 및 원내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그 선(NLL)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다""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며 NLL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북한 땅도 우리 땅이고 영토인데 영토 안에 경계선을 그어 넣고 자꾸만 그러면 곤란하다""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한다면 NLL은 남북 간에 합의한 경계선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발맞춰 1011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비유를 하자면, 가령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있음에도 남북교류협력법이 생기고 남북관계발전법이 만들어져서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처럼 NLL은 그대로 있어도 경제협력과 평화를 정착시키는, 보다 더 높은 구체적 사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현 단계에서 현명한 방법이 아니겠는가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발상의 전환이라고 했는데, 해주에 특구를 만들고 해주항이 열리면 그 자체가 평화적 이용을 확대하는 기반이 되지 않겠습니까. 개성공단과 해주공단이 만들어지고, 물류가 바다로 나오고, 기찻길로 다니고, 더 크게 본다면 인천공항까지 연결되는 큰 틀의 서해, 흔히 환황해권의 광역화된 지역을 우리가 평화와 협력이라고 하는 틀 속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NLL이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 것 아닙니까. 구태여 NLL을 없앤다고 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나름대로 NLL의 존재를 남북이 인정하는 것이니까 없앤다’ ‘그대로 둔다는 논쟁으로 가면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우리 국민 누구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북측 군부가 받아들이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이제까지의 논쟁을 피해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경협과 평화정착으로 접근해서 성공한다면 이 자체가 큰 방향이 될 것입니다. 논의의 여지는 참 많죠. NLL의 북쪽으로 얼마나 가느냐, 남쪽으로 얼마나 가느냐, 공동어획의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입니다. 앞으로 남북이 호의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서로의 이익을 구하고 협조한다는 입장에서 노력한다면 충분히 좋은 길이 있을 것이라는 이해에 바탕에 두고 합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재정 장관의 발언은 결국 서해평화지대를 통해 서해를 북한과 남한의 공유하게 되면, NLL은 사실 상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으로, 노무현 정부의 일관된 NLL 정책을 보여준다. 노무현 대통령의 111일 민주평통에서의 어쨌든 NLL 안 건드리고 왔다는 발언 역시 이와 연관되어있다. NLL을 직접 변경한다 하면 국내에서 심각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니, 서해 자체를 남북이 공유하도록 하여 실질적으로 NLL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향후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의 태도로 인해 구체화된다.


  ) 결국 남북장관회담에서 김장수 장관이 NLL을 지켰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은 NLL을 지킨 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 이미 레임덕에 들어선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언론은 남북장관회담에 나선 김장수 장관의 입장에 더 주목했다. 김장수 장관은 청와대의 친노세력과 NLL 관련 갈등이 고조되자, 해군에 NLL 침묵령을 내리기도 했다. “내 이름을 걸고 NLL을 지키겠다고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가 아닌 청와대에서 이를 정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아예 118일자 "노 정권은 국방부장관의 NLL()을 사수하라!!“라는 성명서를 내서 김장수 장관을 지원하기도 했다. 레임덕에 빠진 노무현 정권의 친노세력보다 이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게 확실시되었던 시점에서, 김장수 장관에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장수 장관은 노대통령의 ”NLL 영토선 아니다라는 발언에 대해 답할 수 없다며 항명의 뜻까지 내비쳤다.


  회담 직전까지 김장수 장관은 “NLL은 반드시 사수한다는 입장을 언론에 공개한 반면, 청와대는 입장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 당시 김장수 장관의 태도는 노무현 정권과 독립되어 움직인 셈이다. 실제 김장수 장관은 2012112일 채널A에 출연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의견이 달랐다고 밝혔다.


  ) 당시 김장수 장관의 태도에 대해 지난 104일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10·4 선언이 부정된 이후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비판하며,10·4 선언의 핵심 중 하나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관련해 "당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회담에 임하는 태도가 대단히 경직됐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김장수 장관의 NLL 관련 입장이 크게 달랐던가?


  )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104일에 나왔고 정문헌 의원 노무현 대통령 NLL 발언 폭로는 108일에 나왔다. 문재인 후보가 즉각 “NLL을 지키겠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대체 문재인 후보의 김장수 장관에 대한 지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해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문재인 후보와 10.4 정상회담 5주년 기념 특별대담에 나섰고, 정상회담 당시 노대통령 수행원이었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는 10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김장수 장관에게 협상 전권을 주었지만 당시 청와대 안보팀에서는 김 장관에게 협상 옵션에 대해 브리핑을 했던 것으로 안다. 북한이 NLL을 기점으로 한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거부할 경우,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제안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등면적이라는 것은 북측과 거리가 가까운 연평도 지역에서는 우리가 NLL 남쪽의 일정 부분을 양보하는 한편, 북측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백령도 지역에서는 북측이 일정 부분 양보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김장수 전 장관은 당시 북한 대표였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우리 측의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거부하고, 반대로 NLL 이남에서만의 공동어로구역을 제안했기 때문에 협상을 깼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브리핑대로 등면적에 따른 공동어로구역이라는 역제안을 할 수 있었는데 김 장관이 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이를 두고 '경직됐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정인 교수의 주장은 어색하다. 특히 문정인 교수의 주장은 결국 연평도는 물론 강화도 부근의 서해어장을 북측에 통째로 넘겨주려 했던 친노세력의 의도가 포착된다. 김장수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 등거리 원칙을 양보하여 등면적 원칙을 제안했다. 등면적 원칙은 문정인 교수가 지적한 대로, 연평도는 물론 강화 인근의 서해바다를 통째로 넘겨주고, 전혀 쓸모없는 백령도 위쪽의 바다를 가져오는 것으로, 철저히 북한 측의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20071017일 노무현 정권의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어로 지정은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기본으로 하되, 백령도 쪽처럼 해역이 넓은 곳은 넓게, 연평도 쪽처럼 해역이 좁은 곳은 좁게 해서 해역의 특성에 따라 지정해야 한다”, “해상교통이 빈번한 연평~강화 구간은 평화수역으로 정해 해양생태계 보존 사업이나 바다목장 사업 등 평화적이고 상호수혜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이 강구될 것이라며, 연평어장과 연평과 강화 사이의 바다를 완전히 북한 쪽에 내줄 계획을 설명하기도 했다.


  반면 북한 측은 NLL과 북한경비계선 사이의 바다 전체에 5개의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며 너무 큰 욕심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북한 측은 수시로 노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하여 결심을 받아오라며 노대통령을 거론하며 김장수 장관을 위협했다.


  북측의 김일철 무력부장은 11282일차 전체회의에서 쌍방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없이 구역을 설정하자는 것이며, 이렇게 설정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수역에서 평화적인 교류협력사업이 이루어지는 일정 기간 동안에는 불가침경계선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한다. 즉 연평 어장 등 남측의 어장을 내준다면, 구태여 NLL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는 서해를 공유하면 NLL은 무의미, 즉 무력화된다는 노대통령과 친노세력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방 행정관을 지낸 디팬스 21의 김종대 편집장은 이털남 197회에 나와 북측은 5개의 공동어로구역을 제시했는데, 그중 한 개가 NLL 이남으로 넘어와 있고, 김장수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이 경직됐다는 표현을 쓴 것이로 설명하기도 했다.


  북측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요청했던 것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해도 북방한계선이 살아있으며,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기간에는 서해 해상경계선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데도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환경에서 다른 문제는 논의할 수 없다2일차 회의를 종료시켰다. (NLL 북방한계선 기원, 위기, 사수 258, 통일부 남북회담 자료 검색)


  북한은 회담 마지막 날에도 공동어로 수역 확장에 의욕을 보여 결국 쌍방은 서해 해상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것이 절실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 문제를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빠른 시일 안에 협의 해결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하였다.


  이 남북장관회담의 의미는 북한이 노무현 정권의 제안대로 서해 바다만 넘겨주면, NLL은 얼마든지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등면적 원칙이 적용되더라도, 불필요한 백령도 윗 바다만 갖고, 연평과 강화 어장을 내줘야 하는 위험한 협상이었고, 완전 결렬된 것이 아니라, 공동어로구역은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NLL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도록 합의하여,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1년만 더 있었더라면 서해바다는 북측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당시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언론에서 김장수 장관이 NLL을 지켰다고 보도하자, 청와대의 지침이었다고 뒤늦게 확인하면서도, “"특히 1992년 남북이 합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던 남북 군사공동위를 부활시키고 군사적 신뢰조치와 해상불가침 경계선 문제를 논의해나가기로 한 점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NLL을 군사공동위에서 논의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끝까지 NLL 의제가 군사공동위로 올라가는 걸 막았던 노태우 정부와 전혀 다른 태도였다.


  ) 당시 친노종북 세력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의 입장은 무엇인가?


  ) 정동영 후보는 200711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세계적으로 바다에는 경계선이 없다. NLL이 영토냐 아니냐는 것은 소모적이고 무익한 논쟁이다“NLL1954년 개념에서 바다의 개성공단 모델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후보는 1996년 국민회의 대변인 시절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이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과는 관련 없다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말하자 “50년 동안 북한도 준수한 NLL을 포기한다고 말한 것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태라고 논평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당시 야당 대변인으로서 정부를 공격하느라. 어떤 맥락에서 그런 대응이 됐는지 다시 살펴보겠다고 해명했다.


 정동영 후보 역시 친노세력과 만찬가지로, NLL을 무력화시켜, 서해바다를 북측에 넘겨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만약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지 않았다면, 남북국방장관회담의 조항대로, NLL과 공동어로수역 협상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 첨예하게 문제가 되는 공동어로수역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어왔는가?


  ) 공동어로수역은 이미 이승만 정권 때부터 논의된 의제다. 195711월 북측 연안까지 들어간 민간어선 56척이 나포 당하자, 북한은 19581229일 군사정전위원회 제 92차 본회의에서 동해에서는 명태 잡이 계절에, 서해에서는 조기잡이 계절에 남쪽 어민들이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 북한 어장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유엔사 측은 남측의 어선을 나포하는 북측의 행태를 신뢰할 수 없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에서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천명하며, 다시 남북공동어로 사업을 제안하였으나, 북한에서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앞세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들어 연평 북한의 어선들이 꽃게를 잡으러 NLL 이남으로 침투하다보니, NLL 부근에 남북 등거리의 공동어장을 만드는 방안을 구상한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의 해양부는 서해 쪽에 북위 3748분과 3818분 사이로, 북방한계선으로부터 상호 15마일 떨어진 수역에서 장면적은 약 3,000이며 폭은 약 56가량의 이른바 등거리형 공동어로수역을 기획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4년 빈약한 어선과 휘발유를 살 외화 부족으로 어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어, 2004년 북한과 중국회사 간에 동해 공동어로 협약을 맺어, 이윤은 북한 25%, 중국 75%를 배분, 어업권을 중국에 넘기게 된다. 북한의 어업은 80% 이상 동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 상 전체 어업권이 중국에 넘어간 것이다. 북한 동해 해역에서 조업하는 중국의 어선들은 2007년 기준 497척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해에서도 암묵적인 조업을 하여 중국 어선들이 본격적인 조업이 이루어진 2004년 이후 인천시 서북해역 일대의 어획량이 기존의 4000천에서 1700여 톤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끝까지 남북공동어로 사업을 추진했다. 서해와 달리 동해에서는 20071214일부터 시작된 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 1차 회의에서 북측 동해 수역의 일정한 어장에서 남측 어선이 입어 및 어로를 진행하는 것을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남한 내 어업인들의 반대로 인해 추진되지는 못했다.


  1991910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북한은 어선 척수의 부족으로 20만 톤의 조업 쿼터 량의 대부분을 일본에 팔아넘기다 구소련 당국에 적발되어 ·소 어업협정이 파기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북한은 어업권을 일본, 중국 등에 팔아넘겨왔기 때문에 만약 연평어장과 강화어장의 어업권을 확보하면, 중국 등에 어업권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서해5도 어민들은 공동어로수역 설정에 꾸준히 반대해왔다. 안 그래도 중국의 어선들로 인해 어획량이 줄어드는데, 남측 어장까지 중국의 어선들이 북측의 쿼터를 갖고 넘나들면 어장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NLL을 중심으로 한 남북 등거리 정도의 어장 이외에, 친노세력이나 북한이 원하는 남측의 어장을 공유하는 것은 대한민국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 북한의 어업의 실태는 어떤가?


  북한은 정무원에서 모든 수산업을 관리한다. 북한의 어선관리체제는 정무원결정 제37(1998. 7. 23.)에 의거하여, 일반 동력어선들에 대해서는 국가해사국의 해사감독처에서, 돛배와 전마선과 같은 무동력어선에 대해서는 안전국 국토처에서 등록과 감독 관리를 맡고 있으며, 모든 어선은 조업 허가증을 받아야 조업이 가능하다.


  , 최근까지 북한은 어선을 전시에 대비하는 보조함정으로 간주하여 왔기 때문에 군사동원의 비밀사항으로 간주하여, 어선 보유실태를 공식적으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동력 어선은 약1,500여척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최근에는 경제난으로 인해 유류부족과 함께 정비 불량, 부품부족, 기관고장 등으로 실제 조업이 가능한 어선 수는 400여척이 채 안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 114, 청와대 관계자는 "김정은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6월부터 배급제 철폐를 포함한 `6·28조치`를 공식화하면서 군대에 대한 식량보급이 전면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북한군 내의 군기문란 사건이 만연되고 있으며, 육군은 농사에, 해군은 어업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동어업수역에 남북한 어선들이 공동으로 조업할 경우, 북한 어선에 탄 북한 해군에 의해 남한 선박들이 납치 혹은 테러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남방인물 주간에서 중국의 어선들이 북한 해군에 뒷돈을 주고 서해에서 조업한다는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단둥의 한 선주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둥에서 국경을 넘어 고기잡이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중국 쪽 바다는 이미 싹쓸이 조업으로 고기가 없어서 북한(해역)에 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인터뷰에 따르면 단둥과 인접한 압록강 하류의 중국 둥강과 북한 철산 앞바다에 어로구역이 형성되는데 이곳에서 고기를 잡으려면 작은 배는 하루에 1천 위안(18만 원), 100t 이상 큰 배는 1천 달러(118만 원)를 내야 한다.


  이 선주는 고기잡이 허가권을 내주는 기구는 북한의 철산 수산사무소가 아니라 해안경계를 담당하는 부대라며 현재 북한 측에서는 미국 달러화를 좋아하지 않아 인민폐만 받는다"고 전했다.


  이어 현 시세로는 2만 위안(370만 원)을 건네면 2주간 고기잡이를 할 수 있다면서 돈을 내지 않는 어선은 압류된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이번에 북한 측에 13일간 억류된 중국 어민들은 이 해역에서 나포됐고 당시 선원들의 증언을 인용, 중국 내 범죄조직과 북한의 일부 부패한 무장 세력이 결탁해 몸값을 노리고 저지른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어선과 북한의 해군이 뒤엉킨 서해는 이미 무법천지가 되어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남측의 서해를 북측에 넘겨준다는 건, 서해를 아시아의 범죄 및 화약고로 만드는 격이다.


  ) 친노종북 세력에선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도 공동어로수역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 지난 9149개 지방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는 서해에서 기존의 남북 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 뜻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합의한 내용에 대해 NLL이 지켜진다는 전제에서 논의해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의견이었다. 그러다 NLL 문제가 심각해지자, 박근혜 후보도 한발 물러선다. 115일 외교안보 공약 발표 때 기존 합의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정신을 실천하며, 세부 사항은 현실에 맞게 조정해 나갈 것이라며, 그 한계를 분명히 했다.


  또한 1028일 한국일보 외교·안보정책 설문 답변에서 북한이 기존 경계선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공동어로(共同漁撈) 문제 등을 상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날 발언에서는 공동어로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공동어로수역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때도 제안을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모두 NLL을 기점으로 남북 3킬러미터 정도를 인정하는 등거리 원칙이었다. 이로 인해 남북 어선 모두 NLL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정도의 의미이다. 이를 등면적 기준으로 바꿔, 서해를 통째로 내줄 수 있도록 한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박근혜 후보가 이러한 노무현 세력의 공동어로수역에 동의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실제 당내 NLL 대책팀장인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등거리 공동어로수역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대로 남북정상회담록 공개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 친노종북세력은 지엽적인 문제로 정문헌 의원의 거짓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108일 연합뉴스의 첫보도에서는 "지난 2007103일 오후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남북정상은 단독회담을 가졌다"면서 "당시 회담내용은 녹음됐고 북한 통전부는 녹취된 대화록이 비밀 합의 사항이라며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대화록은 폐기 지시에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보관돼 있다"고 되어있다.


  연합뉴스 첫 보도에서는 비밀 회담을 했다는 내용이 아니고, 단독회담을 한 뒤, 그 내용인 “NLL(북방한계선)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 이라는 게 비밀 합의 사항이라는 것이다. 향후 남북한 모두 녹취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현재 국정원에 대화록은 물론 녹음파일까지 보관된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국가안보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내용이므로 대선과 관계없이 공개되어야 하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가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다고 밝혔고, 친노종북 세력들은 이를 노대통령이 NLL을 지켰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정문헌 의원, 천영우 외교안보수석과 달리 노무현, 김정일 회담록을 본 적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NLL 관련 주무부서가 아니다. 국방부가 주무부서이고, 이 때문에 노무현 정권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류우익 장관이 NLL 기점으로 한 등거리 원칙과 등면적 원칙의 심각한 차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달리 처음으로 NLL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라는 구체적 논의기구에 의제로 넘겼고, 공동어로수역을 등면적 기준으로 바꿔 서해바다를 통째로 내주며 NLL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문제는 통일부 장관의 소관이 아니므로 류우익 장관에 물어볼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 정치권에서 지루하게 공방되는 NLL의 진실과 결론은 무엇인가?


  )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은 엄연히 대한민국 정부에서 실질적 해상 군사분계선 혹은 해상경계선인 NLL을 느닷없이 영토선이 아니다라며 국민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평화수역, 공동어로수역 등의 명목으로 서해바다를 북측에 넘겨주기 위한 작업을 시도했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므로 그 아래의 서해 영해를 북한에 넘겨줘도 된다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셨다.


  이 작업은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절반가량 실현되었다. 북한은 서해바다만 넘겨받으면 NLL 문제 거론 않겠다는 입장으로 노대통령에 화답했고, 노무현 정권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NLL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협조해주었다. 이건 대한민국 정부 사상 NLL이 구체적 공식기구를 통해 논의될 수 있는 길을 터준 첫 회담이었다.


  김장수 장관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한 문재인 후보, 서해바다에 개성공단을 만들겠다는 정동영 후보의 공약으로 볼 때, 만약 친노종북세력으로 정권 연장되었다면, 서해바다는 지금쯤 북한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여전히 문재인 후보는 NLL 기점 등면적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지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무현 정권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이런 국가안보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김정일 정상회담록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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