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유비무환의 자세로 안보역량 강화해야

  • No : 270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1-20 16:40:05
  • 분류 : KFF뉴스

유비무환의 자세로 안보역량 강화해야 - 전인범 부총재 (전 육군 특전사령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9년은 우
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한 해이다.
그 해에 우리나라가 미국과 국교를 수립
했고, 우리 군의 해병대가 창설됐다. 또
한 1949년 6월 29일에는 주한미군이 군
사고문단 500명만 남기고 한반도에서
완전히철수했다.
광복 후 이때까지 남북 간에는 38선을
연하여 870여 회의 크고 작은 군사적 충
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이런
저런사정으로인해한반도를떠났다.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
은 미국신문기자협회에서 행한‘아시아
에서의위기’라는연설에서처음으로미
국의 극동방위선을 언급했다. 우리에게
는이른바‘애치슨라인’이라고 더 잘 알
려진연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아시아에서의 공
산주의에 의한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하여 태평양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알
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는 것이 주된 내
용이다.
이 선언은 결과적으로 광복 후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수시로 틈을 노리고 있던
김일성과 스탈린이 6∙25전쟁을 일으키
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김일성의 철저한
준비와 스탈린의 야심 찬 후원으로 6∙25
전쟁의 비극이 발생했다. 당시 남한 주요
당직자가 전쟁이 나면“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
장담했다 한다. 국민을 안심시킨 것인지
기만한것인지그속은알수가없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의 민간인이 모
두 250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통계에 의
하면 당시 남한 인구는 2184만 명이었
다. 전쟁의결과는너무나참혹했다.
내년이면6∙25전쟁70년이다.
70년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
의 전반적인 국력도 군사력도 강하고 튼
튼해졌다. 국제정세도당시와는다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는 그대
로이다. 남북한이 38선(휴전선)을 경계
로 분단된 채 아직도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북한군은 여전히 전쟁
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는 또 그에 대비
하고있는것도사실이다. 게다가지금은
70년 전에는 없었던 핵무기라는 가공할
만한파괴적인무기가북한쪽에있다.
국익 앞에서 국제질서는 냉혹하게 움
직인다. 동맹을튼튼히하고외교를다변
화해야 함은 당연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6∙25 때와 같
은 호언장담이나 감언이설로 인해 다시
는 국민이 전쟁의 참화나 비극을 겪어서
는 안 된다.
국방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결의
만다져서는안된다. 행동으로뒷받침하
고 결과로 보여주는 것만이 전쟁을 겪은
후손들이 가져야 할 유비무환의 자세이
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민주주
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미군
과 연합군 군인들을 상기하며 그들 국가
와의 유대와 연대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되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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