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새 활로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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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9-10-20 15:04:04
  • 분류 : 예전자료

남북관계, 새 활로를 찾아라!


-떠들썩했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방북 후 남북관계의 방향


조준형 / 연합뉴스 기자 


 8월 10일~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은 출범 이후 1년 6개월간 반목을 거듭해온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사에 변곡점이 될 것인가. 이번 방북을 통해 현 회장은 그간 서로 어긋나기만 한 남북 당국에 대화의 소재를 제공하고, 고사 위기에 놓인 현대의 대북사업에도 희망의 싹을 틔우는 성과를 거뒀다. 게다가 곧이어 21~23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한 북한의 고위급 사절단이 서울을 방문,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급격한 변화의 조류를 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남북관계의 앞길에는 북핵문제를 비롯한 각종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이번 현 회장의 방북과 그에 이어진 북한의 태도 변화가 남북관계의 고속도로 개통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현 회장을 통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재 사실과 새로운 한반도 질서에 대한 그의 의중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해졌으리라는 점에서 이번 방북은 충분히 의미 있는 행보였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현대-북한이해관계 속에 방북 성사

현 회장의 평양 방문은 현 회장 본인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만남에 대한 필요가 맞아떨어진 데다 우리 정부도 그것을 막을 이유가 없는 상황과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금강산∙개성관광 사업자인 현대는 작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 총격 피살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작년 말 개성 관광까지 중단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담판’외에는 탈출구가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현시점에서 현대를 매개로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풀어갈 필요가 있었기에 현 회장을 불렀다고 봐야 한다.


맘 같아선 대미 관계 개선에 올인하고, 남한과는 계속 긴장을 유지해가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압박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만도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 통하고 남한과는 각을 세운다)’전략이 성공했다고 회상한 1990년대와 달리 지금 한미 공조는 한결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즉 남북관계를 긴장 상태로 둔 채 북미관계만 속도를 내려 해도 미국이 그런 전략을 용납할 수 없음을 김 위원장도 모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또 북한 핵실험을 제재하는‘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구심점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대오를 흔들려면 북미관계와 함께 남북 관계까지풀어나가는모양새를만들필요가있을수있다.


그리고 현금수입 원인 금강산 및 개성관광을풀어서실익을챙기는것도나쁘지않다. 정부도 이런 현대와 북한 간의‘이해 일치’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반기 진입을 앞둔 현 정부로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에 누군가가 대신 숨통을 터주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현 회장 방북에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런 상황 속에 현 회장 방북은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고, 그에 따라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이 석방된 뒤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북미관계 개선에 발맞춰 남북관계도 함께 풀어가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북한은 클린턴이 방북한 날 금강산을 찾은 현 회장에게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보내 현 회장의 평양 방문을 협의케 했다. 결국 현 회장은 7일 아태평화위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든 뒤, 10일 딸 정지이 현대 U&I 전무, 최규훈 현대아산 계약지원실장과 함께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7일 기다려 묘향산서 김 위원장 만나

시작은 좋았다. 북측은 남북정상회담 등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육로 평양행을 현 회장에게 허락했다. 또 리종혁 부위원장에게 개성에서부터 현회장을영접토록했고, 숙소도국빈이묵는백화원영빈관을제공했다. 그러나 정작 김 위원장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월요일인 10일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찾은 현 회장은 16일 김 위원장을 만나기까지 꼬박 엿새를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억류된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가 석방되는‘성과’를 거뒀고, 대남 분야 실세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 부장도 만났지만, 방북의‘메인 이벤트’인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계속 미뤄졌다.

 


현 회장 일행 3명에겐 도청 우려 없이 서울과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장비가 없었기에 그들의 평양 동선은 거의 파악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5일까지 엿새가 지나도록 현 회장과 김 위원장 간 면담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서울 통일부와 현대사옥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의 애간장은 녹아내렸다. 현 회장은 결국 한미합동군사훈련인‘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개시 전날인 16일 오전에야 묘향산의 한 처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한미훈련이 시작된 이후에는 만남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었기에 사실상 만날 수 있는‘마지막 날’에 만난 것이다.


현 회장은 애초부터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자신이 일찍 방북한 것이라고 귀환 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회동 지연은 극적 효과를 노린 김 위원장의‘작전’이었다는 설부터, 남북관계에 아쉬울 것이 없다는 사인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는 설까지 다양하게 제기됐다. 이와 관련, 클린턴과는 방북 당일 저녁을 함께 한 김 위원장이 현 회장과는 방북 7일째 오찬을 함께 한 것은 북한이 생각하는 나라 밖 문제의 우선순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합의, 통민봉관(通民封官) 우려도…

8월 17일 새벽 4시부터 당일 귀환길에 현 회장이 싸들고 올 보따리가 북한 매체를 통해 미리 공개됐다. 현대와 아태평화위는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 및 비로봉 관광 개시, 금강산 관광 편의와 안전 보장 ▲육로 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 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 때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5개 항에 합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또 공동보도문안 곳곳에 북이 절대시하는 6∙15, 10∙4 선언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담겼다.


결국 이들 합의는 현대와 북한의 이해가 절묘하게 버무러진 것이었다. 합의 중 육로 통행 및 체류 제한 해제와 이산가족 상봉은 현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 듯 보이지만, 통행 제한 해제는 개성 관광의 걸림돌을 치우는 것이었고, 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금강산 관광 재개로 가는 발판 마련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었다. 정부 당국은 현대의‘월권 행위’일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담은 이번 합의를 보자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특히 5개 항 합의 중 이산가족 상봉

은 누가 합의했건 우리 정부가 회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과거와 다른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해 일시적 긴장도 감수할 수 있음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지만,‘시한(고령이산가족의 수명)’이 존재하는 이산가족 문제를 장기간 방치하는 데 대해서는 어떤 설명으로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현대가 이끌어낸 합의를 기초로 이산가족 상봉 협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아울러 북핵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 국면이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북한이 현대를 비롯한 남한 민간하고만‘통’하고 당국과의 대화는 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 합의 사항을 이행할 때에는 정부와 반드시 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 위원장 건강상태 확인으로 대북정책 방향에 도움


글 서두에 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가 왔지만 글을 마무리하면서도 그 답을 시원하게 하긴 어렵다. 일단 현회장이 귀환한 지 나흘 만에 북한은 김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이끄는 고위급 조문 사절단을 파견,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을 잇달아 만나도록 함으로써 남북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던 종전 입장에서 명시적인 변화를 보였다. 또 조문단의 이 대통령 예방 이후 북한매체에서는‘이명박 역도’라는 험한 표현이 즉각 사라졌다.


외견상으로 남북관계는 막 고속도로 질주를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 전개 과정을 낙관하기엔‘변수’가너무많다. 북핵 문제의 진전 상황, 국내 정치적 변수, 대남 접근을 해오는 북한의 진짜 의도 등이 그것이다 .

우선‘비핵∙개방∙3000’을 모토로 북핵 진전을 대북 협력의 전제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가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제재 국면 속에 과감한 대북 접근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에 현금을 주는 사업인 금강산 및 개성관광을 재개하려 할 경우 국내 여론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알 수 없다. 또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재발 방지 대책 및 신변 안전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북한이 선선히 수용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아울러 북핵 프로세스와 북미 대화의 전개 양상도 중요한 변수다. 북한이 최근 대남 유화 공세를 잇달아 취하는 것은 제2차 핵실험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회복 등을 통해 체제보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상황에서 북미관계 진전이라는 최대 목표에 도움이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빌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개선의 모멘텀을 만든 북미관계가 북핵문제 등으로 다시 삐걱댈 경우 북한은 남북관계도 다시 흔들려고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현 회장이 이번에 4시간여 김 위원장과 면담함으로써 그의 건재를 확인한 것이 대북정책 수립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집중력을 키워줄 것이라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빌 클린턴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김 위원장과 3시간 30분간 대화했음을 감안할 때 현 회장은 클린턴보다 배 이상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봐야 한다. 그런 현 회장이 보고 느낀 북한 최고지도자의 상태가‘정상’쪽에 가깝다면 정부는‘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조기 도래를 기대하기보다는 김 위원장을 상대로‘승부구’를 던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즉 우리 정부로선 김 위원장의 물리적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대북정책의 집중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난 이유 중 하나도‘나 아직 건재하며 내 생전에 한반도 안보 질서를 바꿀 협상을 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하려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김 위원장의 물리적 수명 종료가 임박하지 않은 것이 현 회장의 방북을 통해 확인됐다면, 이 대통령은 2012년을‘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삼고‘속도전’을 벌이는 김 위원장, 그해 재선 시험대에 오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미답의 고지’를 2012년까지 정복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으리란 추측도 해봄직하다. 공교롭게도 2012년 이 대통령은 본인으로서도 사실상 임기 마지막해를 맞는다. 현 회장 방북이 이 대통령에게 이 같은 상황 인식을 심어주었다면 그 역시 큰 성과일 것이다.(자유마당, 20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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