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양분하는 G2시대의 개막

  • No : 329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9-10-20 14:54:48
  • 분류 : 예전자료

미-중 전략경제대화와 한반도 안보


-세계 질서 양분하는 G2새대의 개막


구본학 /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미국 일방주의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21세기 초의 세계 역학 구도를 반영하는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환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30년간의 개혁과 개방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중국이 냉전에서 패배한 구소련을 대체하고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양대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두 나라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8분의 1, 인구의 약 4분의 1, 국내 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난 4월 22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미국이 단독으로 대응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 실토한 바 있고, 2008년 <뉴스 위크>의 국제편집장인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이제 세계 질서는‘미국 이후의 세계(The Post-American World)’로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은 세계 정치∙경제∙과학∙문화를 지배해왔고, 특히 구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후 20년간은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의 지배에 도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미국은 군사안보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도전받고 있다.


한때 미국은 전 세계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2008년 GDP는 14조2600만 달러로 세계 총 GDP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2위 일본(약 5조 달러), 3위 중국(약 4조 4000억 달러), 4위 독일(3조7000억 달러)의 GDP를 합친 정도가 되었다. 자카리아는 이러한 현상이 미국의 국력 쇠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the rest of world)의 급속한 성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 지배의 현존 질서에 대한 도전들, 즉 이슬람의 도전과 테러, 북한 등‘불량국가’의 도전, 세계 각 지역에서의 민족주의 운동, 핵확산 등에 대해 미국이 단독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전 세계 총 국방비의 약 45%를 지출하는 미국에 대해 어느 국가도 직접 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여러 강대국이 지배력을 나누어 가지는 단다극 복합 질서(uni-multipolar order)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나, 미국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질서이다. 한편 아시아의 거대한 후진국이던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 이후 정치적 안정을 이루면서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했고, 현재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산업화 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변국을 압도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혁 초기 중국은 미국 과 일본의 기술 및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주변 정세의 안정이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해 이념이 다른 국가 또는 심지어 적대적인 국가도 모두 포용하는 화평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서서히 대국으로의 지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냉전이 끝난 후 세계 질서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중심의 G7이 주도했으나, BRICs(중국, 러시아, 인도,브라질)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제 질서는 다극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는 다극화를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4월 런던에서 개최한 G20 제2차 금융정상회의는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슈퍼 파워의 자리로 진입하는 신호탄이었다. G20 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중관계를“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고 했으며,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미중관계는 21세기를 공동으로 건설해나가는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협력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이 쌍두마차가 되어 세계경제를 이끌어나갈 것임을 선언한 것이며,‘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나‘대국으로 솟아오르는’대국굴기(大國掘起)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금융기구의 개혁을 요구했으며, IMF에 400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했다. 또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티베트 독립을 반대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중국 언론들이 오바마와 후진타오의 첫 만남을 후오회(胡奧會: 胡錦濤와 奧巴馬의 만남)라고 부른 것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자신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이끌어갈 미중관계

20세기가 끝나면서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지지 세력을 잃었다. 유럽과의 유대관계가 약화되었고, 러시아의 반발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남미에서는 미국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국가까지 나타났다. 미국 본토가 테러 집단에 의해 공격당했고, 대테러전은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비록 군사력과 연구개발 투자, 전문 인력, 기업 활력 등에서 미국이 아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미국의 위상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다. 즉, 카터 행정부의 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바와 같이‘경제위기든 중동 사태든 기후변화든 핵확산이든, 중국과 미국이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둘러싼 대결과 경쟁 관계에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로에게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미국의 투자와 소비 시장이 필요하며, 미국은 생산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분야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 냉전시대 G2이던 미국과 소련은 대결 상대였지만, 21세기의 G2인 미국과 중국은 동반자로서 협력이 필요한 관계에 있다. 중국은 8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26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7월 28일 폐막된 미∙중 전략경제대화(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는 양국 간의 협력 시대를 선언하면서 G2로서의 입지를 모색했다. 특히 이번 대화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포괄적 대화였다. 과거 군사와 경제를 분리한 두 개의 대화를 통합하고 수준을 격상시킨 회의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미∙중 협력 시대의 출범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미∙중 대화는 주로 경제 분야였고 정치 외교 분야는 보조 분야에 지나지 않았으나,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열린 이번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화의 범위와 수준을 격상시켰다.


중국에서는 왕치산 경제담당 부총리와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50여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했으며,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티모시 가이스너 재무장관을 대표로 대규모 대표단을 참석시켰다. 양국 고위 관리들은 금융위기부터 북핵문제까지 세계가 직면한 주요 현안을 빠짐없이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미중관계가 21세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미∙중 전략경제대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양국은 이번 대화에서 경제, 외교안보,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했다.


첫째, 글로벌 금융위기로 드러난 국제금융체제 개혁에 협력하기로 했으며, 시장 개방 확대, 무역투자 협력 강화 등에도 뜻을 같이했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일단락되는 대로 재정 적자 축소에나서 인플레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며, 중국이 가지고 있는 8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채권의 가치를 안정시킬 것이라고 중국에 다짐했다. 중국은 지속적인 내수 확대로 수출의존형 경제 체질을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 세계 온실가스 배출 1, 2위 나라인 양국은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릴 유엔 기후변화협약회의를 앞두고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안보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셋째,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문제와 관련, 6자회담을 지지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874호의 이행에 합의했고,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수단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넷째, 양국 간 군사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군사작전, 군 인사교류,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조에 대한 공동 대처 등에 대해 논의했다. 또 미∙중 군사 핫라인 구축에도 합의했다. 대부분 원칙적 수준의 합의에 불과하지만,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양국이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21세기를 향한 긍정적이고 협력적이며, 포괄적인 관계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핵 공동보조에 기민 대응한 북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한반도 문제도 주요 관심사로 제기되었다. 그동안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유엔 결의를 지지하면서 북핵에 반대해왔으나, 대북 제재에는 소극적이었다. 이번 대화에서는‘안보리 결의 제1874호의 이행과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이 공동 보조를 취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매우 영리하며 신속했다. 8월5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평양에 억류된 두 여기자를 석방했고, 김정일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전달했다. 핵문제로 긴장을 높이지 말고 관계를 개선하자는 신호다.


또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평양으로 초청해 억류된 유성진 씨 석방 문제와 금강산 및 개성관광사업 재개 문제, 개성공단 문제를 협의했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전략적 협력관계에북한식으로대응하는발빠른행보이다. 미∙중 전략경제대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다만, 미∙중 전략적 협력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과 정책 공조를 더욱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2006년 4월 <타임>은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을 기하여 미국과 중국의 문명 충돌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양국의 길고도 먼‘21세기의 진검승부’의 시작은 아닐까? 북핵문제와 김정일 후계구도 문제 등 우리의 안보와 관련한 문제들이 우리를 배제한 채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시해야한다.(자유마당, 2009. 9)

네티즌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