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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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9-10-20 14:45:36
  • 분류 : 예전자료

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 논란


-법보다 폭넓은 사회적 인식 앞서야 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


고윤석 /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삶의 마지막 순간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늘 피하고 싶으며 건강한 자신에게 심각하게 다가온 문제도 아니다. 문득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이 평화롭고 고통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길지 않기를 바란다. 질병으로 입원하는 환자도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는 의사가 자신의 질병을 치유해줄 것으로 믿는다.


현대 의료의 발전은 여러 암들의 완치율을 높이고 장기이식을 통해 장기부전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다. 특히 생명 연장을 위한 집중 치료술이 크게 발전했다. 환자의 병은 고칠 수 없지만 그 병으로 인한 심장이나 폐,콩팥 기능의 상실은 인공호흡기나 신장 투석기 같은 기계 장치나 약물을 사용해 때로는 수년씩 연장할 수도 있다.


이로써 노화나 질병에 의한 자연스러운 사망을 뜻하는 자연사의 모습이 바뀌었다. 환자가 집에서 사망을 맞이하던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많은 환자가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중환자실에 서의 연명 치료는 대부분 고통을 동반하고 의료 비용이 많이 든다. 의식은 없고 기계 장치에 의존해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되어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러므로 현대 의료 윤리는 의사가 환자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함과 아울러 환자에게 무익한 치료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환자의 마지막 삶의여정이 보다 의미 있고 고통은 최소화하도록 권장한다.


용어의 혼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 식물상태인 한 환자의 연명 치료 중단을 두고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존엄사를‘고통이 적고 품위 있는 죽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존엄사에 대해 종교계, 법조계, 학계, 의료계 그리고 정치권에서까지 논란이 있는 것을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존엄사’가 우리 사회에서 합의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공적부조 기능이 미약한 우리 사회에서 연명 치료의 중단을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자칫 사회 소외 계층이 불이익을 받거나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The Oregon Death with Dignity Act’를 존엄사라고 할 경우 여기에는 대한의사협회의 윤리 강령에서 금지 하고 있는 환자의 자살을 돕는‘의사조력 자살’을 포함하게 된다. 이런 뜻으로 존엄사를 말한다면 의료인도 이를 수용할 수 없다. 일본과 대만도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조례가 있으나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안락사도 우리 사회에서 그 용어 정의가 합의되어 있지 않다. 이는 학술 용어이면서 또한 생활 용어이므로 안락사에 대한 생각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존엄사를 안락사와 구별하기 위해 안락사를 환자의 사망을 초래하는 행위를 의사가 직접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만으로 한정해 사용하는 것도 제안되고 있다. 세계 의사 윤리 강령에도 이런 범주의 안락사를 의사가 시행하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치료 가치에 대한 판단

환자 가족과 의료진과의 연명 치료 중단 논란의 초점은 치료의 무익성이다. 치료의 무익성 여부는 가치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뇌사자에게 인공호흡기 치료를 지속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무익하다. 그러나 중환자실 치료로서 환자가 한 달 정도 더 생존할 수 있다면 당신에게 그 치료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와 같이 치료의 무익성 여부는 많은 경우 개개인의 가치 판단에 의존하므로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현대 의료에서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으뜸으로 친다. 환자에게 행해질 치료가 환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의료에서는 환자가 자신에게 주어질 치료에 대해 사전에 의사와 협의해 결정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사전의료요청(혹은 지시)서의 의미와 문제점

환자는 기록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담당 의사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를 사전의료요청서라고 하며,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준비하는 존엄사법에서도 사전의료지시서를 중요한 요소로 두고 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의 표현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죽음이 예상되는 환자가 병원에서 사전의료요청서를 통한 자기 결정권 행사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익숙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닥쳐올 죽음에 대해 노인이나 환자와 의논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말기 암이라는 것을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이야기해달라는 보호자를 만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환자에게 암이라는 진단조차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환자가 사전의료요청서의 여러 내용들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대부분은 그 치료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어도 생명과 직접 연관된 것이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점진적으로 사망이 예견되는 말기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연명 치료에 대해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병원 문화의 정착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치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의사는 의학 정보를 환자와 충분히 공유하여 환자의 판단을 도와야 한다. 연명 치료의 중단 결정에서 담당 의사의 역할은 이와 같이 대단히 중요하고, 담당 의사의 뜻에 따라 그 결정이 대부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존엄사 논란 합의 과정에 의료 전문 집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외국의 경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법률이나 조례가 마련되어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종말기 의료의 결정 프로세스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2007년에 제정되었으며, 안락사는 금지했고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내용은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대만은‘안녕완화 의료조례’를 2000년에 제정했고 역시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두 조례 모두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과 사전의료지시를 인정했다.  미국의 오리건 주에서 1997년도에 제정한‘오리건 존엄사법’에는 잔여 생존 기간이 6개월 미만인 말기 환자의 경우 환자의 뜻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으나 미국의사협회의 2009년 윤리 강령에는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반대했다.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 내용은 사망 단계에 진입한 지속적 식물 상태의 환자에서 환자를 대신한 가족의 요청으로 특수 연명 치료인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한 것이다. 의료 기관에서 지금까지 적용해온 연명 치료 중단의 범주는 말기 환자에게‘심폐소생술 거절’이 서울아산병원에서 2001년에 병원윤리위원회의 승인 아래 처음 도입된 후 여러 병원으로 확산되었고‘중환자실 입실 동의서’ 등이 세브란스병원 및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적용되어왔다.


대한의학회에서는 사망이 임박한‘임종 환자 연명 치료 중단 지침’을 약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02년 5월 3일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에서 발표했으나 이 당시 언론은 의사들이 안락사를 시행하려 한다고 질책했다. 이때 한 일간 중앙지에서‘이제는 품위 있는 죽음을 논할 때’라는 칼럼으로 대한 의학회가 발표한 지침의 뜻을 지지해주었다. 우리나라 국회의 연명 치료와 관련한 입법 노력은 2006년에 안명옥 의원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과 관련해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제안한 바 있고, 2008년 김충환 의원이 발의한‘호스피스-완화 의료에 관한 법률’이 있었다. 2009년 신상진 의원이 발의한‘존엄사법’에서는 상해와 질병으로 인한 말기 환자가 대상이며, 김세연 의원이 발의한‘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식물 상태의 환자는 제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환자의 말기 상태에 대해서는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의 발의안 내용이 유사하며, 의료계에서 정의한‘회복 가능성이 없고 단기간 내 사망(흔히 6개월)이 예측되는 환자’와 일치한다. 최근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학병원에서 연명 치료 중단

지침을 발표했으며 환자의 범주와 절차 등에 대해 명시했다. 연명 치료의 중단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해야 하는 것은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절차로 어느 범위까지를 중단할 것인지 등이다. 대상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나눈 후 그 분류에 따른 연명 치료 중단 절차와 범위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뇌사자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여러 장기의 손상으로 사망이 임박한 임종환자의 경우, 의료진과 가족의 협의로 연명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말기 질환 환자나 지속적 식물 상태의 환자 중 인공호흡기와 같은 특수 연명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의료진과 환자 혹은 환자의 대리인이 협의하거나 병원윤리위원회와 같은 자문 기구를 통해, 기타의 경우는 그 상황에 따라 병원윤리위원회나 대한의사협회의 중앙윤리위원회 혹은 법원의 판단에 의존해 중단 범위를 결정하는 방식 등을 사회가 합의할 수 있다.


현재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가 국회에서 준비 중이다. 그러나 연명 치료의 중단은 매우 개별적이고 다양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해결을 법으로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법으로 규정하기보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처럼 조례로 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보건 의료기본법 제12조(보건의료서비스에 관한 자기 결정권)는“모든 국민은 보건 의료인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장기이식 여부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로 되어 있다. 이를“…장기이식, 연명 치료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와 거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로 정하고 구체적 사항은 의료계에서 정한 지침 형태의 규율에 따르는 것이 의료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병원의 의료 윤리위원회의 구성과 함께 의료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 공적부조의 강화

치료의 무익성 판단에는 삶의 질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진료비와 간호 부담이 흔히 개입된다. 특히 선천성 장애를 가진 영아의 경우 부모는 장애아로 살아가야 하는 자식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고려한다. 그러므로 연명 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논의할 때 이런 어려움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부 및 사회의 공적부조 체계를 확대하고 강화해나가는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연명 치료 중단 지침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일단 합의된 지침도 사회 환경의 변화와 임종 환자와 그 환자를 돌보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존엄사법과 같은 법제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위에 기술한 바와 같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각 구성원들의 바람을 지속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항구적인 자문 기구와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이 보건복지가족부 내에 구성 되어야 하고, 필요한 예산이 매년 책정되어야 한다. 의료인은 말기 환자가 자신의 생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마감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지고 환자와 의논해야 한다.(자유마당, 2009. 8)

 


그리고 우리 사회도 논의를 꺼리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보다 폭넓게 수용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소년기 학교 교육부터 생명과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의 합의는 생명 경시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사망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바라는 바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힘겨운 사망 과정은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가족에게도 심한 고통을남긴다.(자유마당,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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