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국가발전패러다임 녹색성장

  • No : 326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9-10-20 14:25:49
  • 분류 : 예전자료

녹색성장, 21세기 우리의 화두


곽재원 / 중앙일보 중앙종합연구원장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생소한 복합어가 우리 앞에 등장한 지 벌써 1년이 돼간다. 지금은 저탄소란 말이 빠진 채 녹색성장정치, 사회, 문화, 경제 현장의 곳곳에서 대표적인 정책 및 전략 용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녹색성장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거나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들의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녹색성장이 도대체 무엇이냐, 둘째 왜 지금 녹색성장이냐, 셋째 녹색성장은 누가 하는 것이냐. 그 답을 찾아본다.


현재 한국은‘저탄소 녹색성장’, 미국은‘그린 뉴딜’, 일본은‘저탄소 사회 구축’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저탄소는 지구온난화와 이상 기후의 대표적인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국제공조체제를 염두에 둔 말로 녹색(그린)이라 하면 저탄소까지 포함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저널리스틱한 용어 분석을 해보면 우리는 국제협력을 중시하되 친환경적 성장정책을 강조해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잡았고, 일본은 교토협약과 도야코 정상회의 등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 입지 강화를 중시해‘저탄소 사회’로, 미국은 추락한 경제를 살린다며 아예 국내용으로‘그린 뉴딜’을 내건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됐건 세계는 바야흐로 녹색 경쟁시대다. 이 경쟁은 한마디로 지구의 한계를 연장하면서 지구의 혜택을 넓히자는 국제적 연대와 저마다의 성장을 모색하는 이기적 전략이라는 이중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한 나라로 볼 때는 녹색과 성장의 상반된 개념이 하나의 정책으로 합쳐진 것으로 나타난다.


녹색은 환경론, 성장은 개발론의 핵심 언어다. 녹색은 규제를 전제로 하는 반면, 성장은 촉진을 바탕에 둔다. 따라서 녹색과 성장이 함께하는 녹색성장 정책은 규제를 완화하고, 성장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다만 녹색은 사회적 개념을 강하게 담고 있어 정책으로 펼치려면 사회적 컨센서스가 절대 필요하다.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는 모든 나라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작년에 휘몰아쳤던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무조건적인 재정 투입과 녹색성장에 매달리고 있다. 이렇듯 불황 탈출 수법과 방향이 같을 때 국가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한국형 녹색성장 정책은 무엇일까.


금융위기로 그 어느 나라보다 고생했고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은 경기 대책과 동시에 구조 대책(산업 구조를 바꾸는 일)을 찾아야 한다. 위기관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변화관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 녹색성장 정책은 이런 과제들을 껴안는 것이다.


1973년 1월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중화학공업 시대’를 선포했다. 당시 미국의 정권 교체로 주한 미군 철수가 본격 거론되자, 정부는그때까지 미국의 안보 그늘에서 유지해오던 공업입국과 수출산업 육성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서 자주국방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여기서 나온 일석이조의 정책이 중화학공업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화학공업 등은 우리 수출 산업의 버팀목으로 지금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다. 1998년 외환 위기를 1년 만에 극복한 것도 이들 덕이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은 본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업이 발전할수록 이산화탄소 배출은 늘어난다.


일본은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우리와는 정반대로 에너지 저소비 구조로 만들었다. 1974년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한다는‘선샤인 프로젝트’를 출범시켰고, 1979년에는 전 산업의 에너지 절약을 위한‘문라이트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그리고 1980년에는 통산성(지금은 경제산업성) 산하에‘신에너지 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란 거대한 연구 개발 조직을 구성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율이 매우 높은 한국에 비해 일본이 세계에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의 녹색성장 정책은 36년간 해 온 고에너지 소비 구조를 확 바꾸는 것이다.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에너지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대에 시급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산업 구조 개혁이다. 미국의 GM 등 빅 3 자동차 회사가 일제히 몰락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자동차 산업은 석유 중심의 엔진 시대에서 모터와 연료전지를 쓰는 하이브리드, 전기, 수소 연료전지 시대로 바뀌고 있다. 전장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거대 기업들은 몰랐던 것이다. 각종 환경 기술들이 자동차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기계, 전자 전공보다 화공, 재료 전공의 인재를 더 필요로 할 것이다. 하청과 협력 기업들의 양상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100년 동안 밝혀온 백열전구가 LED 조명에 밀려나고 있다.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포기한 원자력발전이 되살아나고 친환경적 신형 원자력 기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원자력 르네상스다. 바닷말이 바이오 연료로 재배된다. 옥수수와 사탕수수는 바이오에탄올이란 자동차 연료로 이미 자리 잡았다. 이제는 공업과 농업의 구분이 사라지고 기술 발전과 시장 형편에 따라 공업과 농업이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온갖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문명의 패러다임 시프트라 칭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녹색성장은 과학 기술자만의 몫도 아니고, 정책 입안자만의 일도 아니다. 녹색성장은‘전원 참가형 모델’이 아니면성공할 수 없다. 사회도 이해관계자라는 얘기다. 녹색성장을 넓은 의미에서 21세기형 국민 과학화 운동으로 볼 수도 있다.정부는 녹색성장 국가 전략 및 5개년 계획(2009~2013년)에서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 강국 진입을 비전으로 잡았다. 2020년을 보면 국가(녹색성장 일류 국가)는 에너지 자립도를 50%(현재 32%)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녹색 기술과 녹색산업 육성)은 기술 투자 비중을 현재의 16%에서 25%로, 주력 산업 수출 비중을 10%에서 22%로 확대하려 한다. 국민(생활의 녹색 혁명)은 녹색 소비를 현재의 2조5000억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리고 자전거 교통 분담률도 1.5%에서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오는 12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총출동해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대책을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이나 억제에 관한 각자의 약속을 발표 할 예정이다. 되도록 부담을 줄이려는 속셈과 국제 협력이라는 명분이 얽힌 온갖 정책의 진검 승부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에 끼어 있어 입지가 매우 좁은 편이다. 이를 극복하고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선 우선 우리의 녹색성장 전략을 다시 다듬고 선택과 집중의 추진 체계를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적 컨센서스가 합쳐져야 한다. 녹색성장 정책은 60년 후의 모습을 먼저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미래완료형이다.


녹색성장은 과연 IT 혁명을 넘어설 수있을까.‘ EV(전기자동차)’,‘ IT(정보 통신 기술)’,‘ RE(재생 가능 에너지)’라는 3개 키워드로 21세기 중반의 큰 승부를 상상해보자.(자유마당,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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