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 미일 갈등 속 동아시아 역학관계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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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1-13 15:21:06
  • 분류 : 예전자료

■글로벌이슈


미․일갈등 속 동아시아 역학관계 변화 조짐
-혈맹 과시하던 미․일관계에 심상치 않게 흐르는 냉기류의 정체는?


지난 8월 30일 출범한 일본 민주당 정권의 총선 공약 중 하나는 ‘대등한 미일관계’였다. ‘미국 의존적인 관계 대신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을 만들어가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탈미성’ 발언에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재검토까지 더해 오랜 미일동맹관계는 껄끄러워졌다. 일본과 지척에 있는 우리나라로선 향후 협상 전개에 따라 불똥을 안을 수도, 실익을 챙길 수도 있는 시점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11월 13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두 정상은 미일 동맹강화와 북핵문제, 경제위기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으나 주일미군 재편 문제 등 민감한 과제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핵 없는 세계’ 실현 및 지구온난화 대책,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을 포함한 공동문서를 발표하는 등 지난 9월 일본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 이후 드러났던 미일 간 파열음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지만, 현재 미일 간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등한 미일관계’를 강조하는 일본

오바마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이 부각될 경우 아시아 순방의 의미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점을 고려한 듯‘ 중요한 현안’에 대한 협력을 당부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문제와 관련 양국 각료급을 구성원으로 하는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기로 한 만큼, 이를 통해 조기에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하토야마 총리는 아프가니스탄 지원과 관련, 올해부터 5년간 총 50억 달러 규모를 지원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했다.

그러나 두 정상이 양국 간 껄끄러운 현안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고 해서 미일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씨앗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처럼 미일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원인은 하토야마 총리의‘ 대등한 미일관계’주창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서 시작되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8· 30 총선거 과정에서 자민당 전정권의 대미 외교를‘ 미국 추종 외교’라는 식으로 비난하면서“할 말은 서로 하는 신뢰 관계를 구축하겠다”며‘ 대등한 미일 외교’를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1월 8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 ·중 · 일 3개국 정상회담의 서두에 하토야마 총리는 “지금까지는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아시아를 더욱 중시하는 정책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국의 원자바오 수상으로 하여금 만면의 미소를 띠게 한 이 발언은 즉각 미국 측에 전해졌고, 하토야마 정권의 ‘탈미’ 자세에 대한 걱정과 초조함을 증폭시켰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금까지의 자민당 정권과 달리‘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관계’를 시사하면서 대미 종속 외교를 비판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외교정책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초강대국 미국과 중화사상의 중국과의 사이에서 자립된 일본을 만들어 일본, 미국 그리고 중국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의도이다. 이 점에서 하토야마 정권의 외교는 자민당 정권과는 다르다.

자민당 정권 시기의 외교는 아시아와는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더라도 미일관계만 좋으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예로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문제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정상회담조차 거부당했음에도 탄탄한 미일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 외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 민주당 정권은 아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미일관계에서는 균형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번 총선거 직전 9월호에 실린 ‘나의 정치철학’에서 우애(友愛) 외교를 주창했다. 현시점에서 우애는 글로벌화된 현대 자본주의의 과도함을 바로잡는 ‘자립과 공생’의 시대 정신이라고 했다. 우애의 정신으로 일본 국내에서는 ‘지역주권국가’를 확립
하고, 외교에서는 대등한 미일관계를 실현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하토야마는 현재 국제질서가 미국 1극체제로 한계에 이르렀고, 이 과정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 1극체제의 한계가 금융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고 우애의 이념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하토야마의 주장을 미국은‘ 탈미’로 인식, 미일관계에 갈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후 미국과 대등한 동맹관계를 요구하면서 자민당 정권 아래에서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 문제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일본이 해상자위대에 의한 인도양에서의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급유 지원 활동을 내년 1월부터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일본의 대미 외교 노선이 달라졌음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었다.

‘후텐마 기지’ 이전, 미일관계 갈등의 씨앗

현재 하토야마 정부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는 최대의 원인은 미군의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하토야마 정권의 방황에 있다. 당장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 미국 측은 2014년까지 오키나와 현 나고 시에 있는 주일미군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토야마 정권에 대해 ‘인내가 필요하다’며 외압을 가하지 않고 신정권을 지켜보는 자세를 취한 커트 캠벨 국무차관보는 지금 미 정부 내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관계자’라며 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커트 캠벨 국무차관보조차 후텐마 기지 이전은 슈와브 연안부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리고 10월 14일에는 존스 대통령보좌관(국가안전보장담당)이 관료가 아닌 나가시마(長島昭久) 방위정무관과 회담을 가지면서, 미국 측은 더 이상의 교섭을 안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 10월 20일과 21일에 방일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압력 노선으로 변하여 후텐마 이전 문제를 현행 계획대로 실시할 것을 일본 측에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건 점령군의 사령관이다. 지나치게 나사를 조이다 보니 나사가 튕겨 나갔다”라는 반응과 같이 도리어 일본 측의 반발을 초래했다.

일본 측에선 10월 23일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카데나 기지와의 연내 통합안을 언급한 오카다 외무장관에 이어, 기타자와(北俊美) 방위장관이 현행안으로도 민주당의 공약 위반이 되지는 않으니 미일 합의에 따라 연내 매듭짓자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채 속출했다.

외무성과 방위성이 후텐마 기지의 현(縣)내 이전을 전제로 연내에 방침을 결정하기로 협의를 해오고 있으나, 문제는 방위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무장관은 사전에 몰랐다는 점이다.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방위장관의 입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고, 역으로 외무장관이 23일 카데나 통합안을 표명했을 때에는 방위장관이“ 정부안은 아니다”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대승한 이번 중의원 선거의 선거공약에는 “수정하는 방향으로 임할 것”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하토야마 총리도 선거전에서 최소한 ‘현(縣)외 이전’이라는 주장을 했다. 10월 27일에도 하토야마 총리는 선거 전과 마찬가지로 “현외(縣外), 해외를 생각하고 있다.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며 후텐마 기지 문제에 관한 방위장관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현재 내년 1월 오키나와 현 나고 시 시장 선거 이후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보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후텐마 문제에 대해 이전 장소와 이전 시기에 대해 3명 모두 제각각의 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내각불일치 상황에 대해 아무도 조정하려고 나서지 않는 상황이 더욱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하토야마 총리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안(案) 중에서 최종적으로는 총리가 결단하는 것이 좋다. 미일관계가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미국의 말을 들으면 지금까지의 대미 추종외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내각불일치를 총리가 ‘정치 주도’ 연출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한편, 후텐마 문제를 총리가 주장하는 ‘대미 추종 탈피의 계기’나 ‘대등한 미일관계의 시금석’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미 오바마 정부는 회담 설정을 둘러싸고도 갈등을 겪은 가운데 카데나 기지로의 통합안을 언급한 오카다 외무장관의 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후텐마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미를 시도한 오카다 외무장관에 대해 ‘(미국을) 몇 번을 와도 좋지만, 이쪽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미 국무성의 케리 보도관은 11월 3일 기자회견에서“ 궁극적으로 미국과 어떤 관계를 구축하느냐를 일본이 결단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텐마 기지를 나고 시로 이전하겠다는 현행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일동맹은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미국의 분노가 정점에 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발언이었다.

중일 협력 진전 등 동아시아에서 한국 영향력 축소 가능성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이전부터 미국 내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탈미’와 ‘미일관계의 갈등’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번 11월 정상회담에서도 미일 양국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후텐마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고 동맹 강화를 재확인하려 하지만, 미국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보수진영 싱크탱크(think tank) ‘헤리티지 재단’의 부르스 선임연구원은 “후텐마 문제가 정리되어도 오바마 정권의 대일불신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한국의 노무현 전 정부 시대의 한미관계를 아주 닮았다”며 원래 지지 기반을 반미 세력에 두고, 한미관계를 냉각시킨 노무현 정권과 하토야마 정권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하토야마 정권은 후텐마 이전 문제로 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미국과 선거 공약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10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서 총리나 관방장관 등의 총리관저와 외무, 방위 양 관료기구와의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서 하토야마의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것이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다.

그 결과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 기지 문제를 두고 미일관계와 선거공약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현재 민주당 정권이 직면한 미일관계의 과제는 하토야마 총리의 리더십과 직결된 것이며,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은 하토야마에게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미일관계의 갈등이 한국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한다면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아시아를 생각할 때 중국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 일본 측이 바라보는 한국의 전략적인 가치가 높아졌다. 이 점에서 중일관계가 좋아지면 그만큼 한국의 전략적인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한국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미일관계가 갈등을 하면 미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조정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전의 일본 중시 정책에서 중국과 일본을 서로 견제하게 만들면서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미일관계의 갈등 여하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 딸린 종속 변수에서 벗어나 독자적 역할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한국의 동아시아에서 전략적인 선택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자유마당,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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