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진단 / '조두순 사건’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아동 성범죄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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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1-13 15:12:25
  • 분류 : 예전자료

■ 시사진단 /

'조두순 사건’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아동 성범죄 대책
-‘처벌 강화’ 법감정에 앞서 예방 위한 사회안전망이 우선이다

김미애 / 아시아투데이 기자

2008년 12월, 8세 여아가 초등학교 등굣길에 유인당해 인근 교회 화장실에서 폭행 강간당했다. 피해자는 항문과 성기가 파열되고 생식기 기능과 생리 기능을 80% 이상 상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게 되었다. 범인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나이가 많고 술을 먹은 상태여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심신 미약의 이유로 항소했고, 이를 계기로 2009년 9월 사회에 널리 알려져 아동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조두순 사건이다.

‘조두순 사건’ 이후 법원은 아동 성범죄자에게 무기징역 등 종전보다 무거운 형량을 고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평생 전자발찌’ 등 강력한 처벌 방안을 속출하고 있다. 아동 범죄의 악성과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안하면 처벌 강화 여론이 달아오르는 건 당연하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성폭행 피해자 중 아동 비율 급증

부녀자 2명을 상대로 돈을 빼앗고 10세 여아를 성추행한 윤 모(40세)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출소 후에도 다시 여아를 성추행한 점을 봤을 때 그 죄질이 나쁘다”면서 영구격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서부지법은 지난 3년간 서울시 전역에서 11세 아동을 포함해 60대 여성까지 11명을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유 모(41세)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인천지법은 길 가는 8세·3세 여자아이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 모(49세)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검찰의 구형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달 수원지검은 여자아이를 성폭행해 상처를 입힌 윤 모(31세) 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윤 씨에게 10년간 위치추적용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려줄 것을 청구했다. 윤 씨는 지난 9월 수원의 한 종교 시설 놀이터 부근 화장실에서 8세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술에 취하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마시고 범행한 것이므로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부 일각에선“ 처벌 기준을 강화해 양형 하한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인가”라는 신중론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사건 발생을 전후로 형성된 국민의 일시적 법감정에 따라 처벌을 강화하면 자칫 법적 안정성이나 양형 비례성 등 주요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성범죄자 검거 시스템 마련이 급선무

최근 미국에서 아동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된 사례를 살펴보면 성범죄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존 형벌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이 낮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과연 무거운 형벌이 범죄를 근절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 아동 성범죄자에게 무거운 형을 내리는 것만으로 성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다. 외국처럼 출소 후 거주지 의무 신고제, 가석방 금지 등 범죄 예방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성폭행 피해자 중 아동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검찰의 ‘2008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04년 1000명 선이던 어린이 성폭행 피해자가 2008년에는 1958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산술적으로는 하루에 5명의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한 셈. 연령별로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최근 5년간 접수된 성폭행 사례 중 6세 이하 어린이가 796명이나 됐다. 초등학생은 무려 3759명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동 대상 성폭행의 상당수가 낯선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학교 주변 상인이나 인근 주민들을 아동을 보호하는 의무 봉사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느 누구나 해당될 수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선 성폭력상담센터에서는 성폭력 범죄가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지, 범죄자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과 환경에 대한 기초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치권이 조두순 사건에 대한 여론 감정에 발맞춰 대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대부분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안들이다. 여론 또한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것은 물론, 양형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형량을 논의하기 이전에 성범죄자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2의 조두순 사건’으로 알려진 ‘은지 사건’을 폭로한 담임 교사는 “체계적인 수사 전담반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형만 늘릴 경우 오히려 상황은 더 끔찍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후 양형을 늘리고 전자발찌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수사 전담팀도 없는 상황인데 형량만 늘린다면 성폭력에 중독된 범인들은 증거 인멸을 위해 피해 아동을 죽일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양형 기준을 올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현재 있는 법만으로도 아동 성폭행범을 충분히 징벌할 수 있다.

일선에선 아동 성범죄 근절을 위해 범죄심리사 등 전문가가 성폭력 피해 아동의 진술을 조사, 분석하는‘ 전문가 참여제도’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여론은 높지만, 아동 진술 증거 부족으로 성폭력 사범 기소율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피해아동 행동과 진술을 분석한 뒤 수사 ·재판의 증거 자료로 활용하는 ‘전문가 참여제도’는 아동 성폭력 사범의 사법 처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찰의 성폭력 피해 조사 과정뿐 아니라 형 선고 전에도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13세 미만 아동 및 정신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요건을 갖춘 전문가는 현재 24명만이 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벌 위주 방안만으론 한계

전문가 참여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성폭행 사범은 불기소되거나 약한 처벌만 받는 경우가 많다. 2007년 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검찰이 수사한 아동 성폭력 사범(5948명) 중 42%(2501명)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형이 확정된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1839건 가운데 무기징역은 0.4%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선 성폭력상담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성폭행 아동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이나 검찰, 판사가 하는 말이 똑같다고 한다. “애들 말을 어떻게 믿느냐?” 그리고 자꾸 “다른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는 것. “목격자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성폭행 현장에 증인이 있을 수 있을까. 경찰이나 법원이 어린이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가해자가 무혐의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아동심리 전문가는 아이의 범행 당시 진술 능력에 의심이 간다면 그 진술을 선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고 주장한다. 아동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이에게서 제대로 된 진술을 듣고, 진술의 진실성을 전문가가 인정할 경우 단 1회의 진술이 증거로 채택될 수 있도록 공인해주면 된다. 이는 아동 성범죄를 담당하는 전문 부서 하나만 장기적으로 있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성폭력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재활 기금을 모아 지원하는 등 각종 법률 자문을 돕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변협 소속 전국 여성·아동법률지원변호사단 223명도 이번 제휴 체결을 계기로 모든 유형의 아동 범죄 피해자에 대한 법률구조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를 돕기 위한 성금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1개월 만에 1억5000여만 원이 모금될 정도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는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처벌 강화 방안에서 정작 예방책 마련은 여전히 뒷전이다. 문제는 현 제도를 제대로 활용해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여론을 의식한 정부의 대책 없는 형량 논의, 처벌 위주의 방안은 오히려 아동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실정이다. 범죄 이후 형량 논의에 앞서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양육과 보호를 위한 사회 안전망 확충이 더 시급한 때다.(자유마당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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