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남북관계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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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09-11-10 17:10:33
  • 분류 : 예전자료


■ 새로운 시대 남북관계의 해법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기다


                                                           글|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명박 정부 수립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의 2차 핵실험 실행에 따른 국제적 제재 시행과 이에 반발한 북한의 6자회담 탈퇴 선언으로 국제적 긴장관계도 심화되어왔다.


원칙적 대북정책과 북한의 반발로 악화된 남북관계


그러나 최근 억류되었던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김정일 면담을 계기로 북한이 연이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북한의 핵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적 사업이던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지 않고 있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과 최근 상황 변화의 원인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는 한국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원칙을 강조하는 대북정책을 천명함에 따라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 사건은 강경한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더욱이 비핵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대북정책을 지향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당국 간 대화 통로도 모두 닫아버렸고, 개성공단 출입을 제한하고 남한의 근로자를 억류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남북한은 서로를 비난하는 데 급급하면서 남북관계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개성공단 활성화, 남북 도로망 연결 등 지난 10여 년 동안 이루어진 남북한 간의 다양한 성과와 비교한다면 지난 1년여 동안의 남북관계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남북관계가 악화된 원인은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남한의 정권교체에 따른 대북정책의 전환이다. 지난 정권의 유화적인 대북정책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는 원칙을 강조하는 정책을 지향했고, 북한의 반발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의 폐쇄적이고 반동적인 정책의 전환이다. 북한이 관계 악화의 원인을 남한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엄밀하게 본다면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 사실 어떤 면에서 북한은 이를 내부단속과 체제결속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의 부분적인 개방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세력이 과거식의 대결구도를 조성함으로써 보수적인 정책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 의지다.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북한이 어느 정도 협조한것은 분명하고 이러한 태도는 9·19 합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근본 문제’ 즉 ‘체제안정’ 정확히 말하면 ‘권력구조 유지’를 보장받기 위해 핵무기 보유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남한의 정권교체 그리고 미국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전환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유화적 태도와 속내


그동안의 상황이나 북한의 지향성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상황 변화는 다소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 본다면 아무 대가 없이 억류하고 있던 미국의 여기자와 한국의 노동자를 풀어주었고, 개성공단을 옥죄고 있던 여러 가지 조치들을 해제했다. 심지어 개성공단의 임금 인상 요구 등도 거두었고, 이산가족 상봉에도 합의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불충분하지만 그동안 북한의 태도에서 본다면 극히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지도자가 금강산 피살 사건과 관련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실질적으로 유감도 표시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서울을 방문해 자신들이 먼저 당국 간 회담을 요청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원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북한이 먼저 나선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는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나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처한 경제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식량을 비롯해 북한의 경제난이 급속히 악화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의 생활 문제로 정책 전환을 시도한 적이 없으며, 특히 기존의 요구를 대부분 철회할 정도로 남한에 ‘굽히고 들어온’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첫째, 북한의 ‘절대명제’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바마 정부는 비로소 정리된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북한에 전달하면서 북미관계 개선 과정에서 남북관계 개선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6자회담의 재개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북한의 일정한 화답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미 직접대화를 꺼림칙해하는 남한 정부를 고려할 필요도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를 북한에 요구했을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성의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 근거로 남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엔 차원에서 대북제재가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은 핵개발 혹은 핵무기 보유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을 위한 북미 직접대화라는 미국의 이야기는 관련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은 과거와 달리 북한 핵문제의 근본 해결이라는 주장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미 간에 정치적인 타협도 가능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북한은 파키스탄같이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


셋째, 경제적 실리 문제도 하나의 원인이라할 수 있다. 식량부족은 만성적이라고 할 수 있고, 식량지원이나 비료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일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과거와 같이 지원을 받는다면 이를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공으로 선전할 수 있고, 반대로 그 성과가 여의치 않으면 다시 북한 식량난의 원인을 남한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넷째, 지난 1년여 동안 북한 내 체제정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개방에 따른 자본주의 ‘황색바람’이나 원조물자를 기반으로 급속하게 진행된 시장화에 대해 꾸준히 단속하는 동시에, 과거 대남사업에 참여하면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오염’된 구성원들에 대한 정리도 어느 정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제는 다시 남한과의 접촉면이 넓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줄였다는 것이다.


다섯째, 남한 내의 정치적 갈등을 촉발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서도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여전하다. 그러나 관광객을 피살하고, 근로자를 억류하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북한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점차 확산되는 현실을 북한이 고려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구도 속 남북관계의 전환점


북한 태도 변화의 원인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본질적이든 아니든 북한도 정책을 전환하고 있고, 미국도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어느 정도일지 모르나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일본도 대북정책을 부분적이라도 바꿀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수용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본질적으로 북한체제의 존속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일정한 결실을 맺는다면 남북관계나 한반도 현실이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는 그동안의 대북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 대북정책의 실효성을 문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상황이 바뀌고 관련 국가들의 정책이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면 이에 부응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근본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여전히 대북정책을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문이 제기돼왔는데, 이제는 이러한 주장을 불식시킬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그동안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지난 정권과의 차별성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원칙의 견지도 중요하지만 원칙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상황 변화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현 상황에서 우리가 처한 위치를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재 상황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대북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난 정권과는 정말로 다르게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대북정책 개선에 필요하다면,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정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시의에 적절해야 한다는 점을 잊은 채 원칙만 중시하고 기존 정책의 성과에만 집착한다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이런 전환기에 자칫 잘못하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왕따’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옳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것은 국가 정책이나 특히 국가 간 관계에서는 그다지 좋은 변명거리가 아니다.(월간《자유공론》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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