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풍향계 / 북한 불안정성 대비하며 개혁개방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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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4-15 15:13:16
  • 분류 : 예전자료

■한반도 풍향계 / 북한 불안정성 대비하며 개혁개방 이끌어야
- 화폐개혁 실패의 후유증, 불안정한 후계문제… 궤도 이탈한 북한


김창권 / 한길리서치 대표


북한이 화폐개혁에 실패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수명이 “3년쯤 남은 것 같다”는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의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은 이대로 가면 ‘초읽기 상태’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곧 쓰러질 상태의 북한이 남쪽으로 쓰러지는 경우는 피해야 하는 상태가 도래하고 있다”는데, 이에 대비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인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가 지난 3월 19일 강원도 양양 대명리조트에서 공동 개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대토론회’에서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은 현재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다고 설정해놓은 기간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올 초부터 북한 체제가 종전 궤도를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 미증유의 ‘북한 사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했다. 김 교수는 “현재 북한은 화폐개혁 실패가 보여주듯 시장 의존도가 높아졌고, 정보 유통 속도가 빨라지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남한 화장품과 전기밥솥이 ‘명품’으로 통하고 드라마 <아이리스>와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 만큼 주민 의식이 변했고, 신병 탈영이 속출하는 등 북한군도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곧 쓰러질 상태의 북한이 남쪽으로 쓰러지는 경우는 피해야 하는 상태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류길재 경남대 교수도 “북한 급변 가능성이 최소한 20%는 넘어섰다”고 했다. 그는 옛날처럼 경제협력과 지원으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것도 과욕이지만, 북한을 ‘빨리 끝장내자’는 태도도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급변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올해도 벼랑 끝 외교와 전통적 기만 전술을 구사할 것인데, 미국과의 대립이 격화하면 김정일이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유호열 고려대 교수), “김정은 후계는 결국 실패할 것”(박형중 통일연구원 박사) 등의 얘기도 나왔다.

특히 올해 북한 위기의 근거로 ▶ 4~6월 춘궁기에 최소 50만 톤 식량 부족 ▶ 남한 · 중국 등 외부 지원 불충분 ▶ 김정일에 대한 주민 불만 확산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도 이날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6자회담 진전이 쉽지 않고 자주 좌절했지만 6자회담을 대체할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북한 급변 사태를 대비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연내에 미증유 사태 경험할 수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북한이 최근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형에 처한 것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화폐개혁 실패로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이 화폐개혁 이후 두 달도 안 된 1월 중순 박 전 부장을 전격 해임, 구속한 데 이어 다시 두 달 만에 총살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을 보면, 현재 북한의 민심이 얼마나 흉흉하고 북한 당국이 이를 어느 정도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북한 당국은 당초 ‘구권 100원 : 신권 1원’ 비율로 화폐교환을 단행, 이른바 ‘시장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민심을 잡고 국가 계획경제도 복원하려 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그 연장선에서 ‘김정은 후계체제’의 조기 안정화를 겨냥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의 삶과 직결된‘ 시장의 위력’을 간과한 채 화폐개혁에 이어 시장폐쇄, 외화 사용 금지 등의 ‘반시장 조치’를 잇따라 취한 것이 결국 자충수가 된 셈이다.‘ 시장’에 역행하는 일련의 조치들로 주요 물자의 유통 경색과 식량난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돼 변방의 오지는 물론 신의주, 청진 같은 주요 도시에서까지 다수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아직 심각성은 덜하지만 1990년대 중 · 후반 ‘고난의 행군’을 연상시킬 만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실정의 여파는 상당히 심각해, 최근 들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지도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심지어 주민들이 보안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박남기가 화폐개혁의 정책 책임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총살한 배경에는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 같은 북한 내 ‘반체제’
기류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1인 통치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쏠릴 주민의 ‘비난화살’을 박남기에게 분산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남기가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진 것으로 알려진 부분도 북한 당국의 의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통상 북한 내 정보 유통이 빠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문의 급속한 확산’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번처럼 민심 수습을 목적으로 정책 실패의 ‘희생양’을 처형한 일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를 평양에서 공개 총살한 것인데, 당시 북한 당국은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인 1994년부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돼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정책 책임자인 서관희를 처형하는 카드를 선택했다. 또 남한의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등 대남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최승철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총살하기도 했다.

민심 이반 확산 ‘총살설’ 등 극약 처방

이런 가운데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2차 회의가 4월 9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회의 안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을 선출한 뒤 다음 달 1차 회의를 열어 국방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규정하고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했으며,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하고 국방위원회 구성원을 늘리는 등 김정일 3기 통치시대를 열었다.

매년 3〜월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정기 회의에서는 전년도 예산을 결산하고 새해 예산을 편성한 만큼 이번 회의에서도 예산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의 실패로 각지에서 아사자가 생겨나고 민심이 악화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해지자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는 등 ‘극약 처방’의 수습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회의에서 어떤 경제 조치와 인사 조치가 취해질 지 주목된다.

결국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2차 회의는 화폐개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민생 경제와 외자 유치를 중점으로 한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며 단행한 화폐개혁이 오히려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후속 조치 여부도 관심거리다. 김영일 내각 총리 등 주요 경제 관료들이 아직은 건재하지만, 북한이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민심 이반을 돌리기 위해 경제 관료들의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의 후계체제 공식화와 관련한 발표도 주목거리다.

무엇보다 이 같은 시점에서 정부는 북한의 불안정성을 철저히 대비함과 동시에 북한을 개혁 · 개방으로 끌어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금처럼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반전과 정상화에 기여했다면, 앞으로는 신축적 · 전략적으로 국민이 원하는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 봄내음이 가득한 4월이다. 그동안 엇박자를냈던 남북한이 서로 존중하며 이제는 시대 추세에 맞는 듣기 좋은 화음을 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자유마당, 201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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