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눈물…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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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3-18 15:44:09
  • 분류 : 예전자료

도요타의 눈물…남의 일 아니다



지난 2월 5일 도요타의 사장 도요다 아키오(Toyoda Akio)가 고개를 숙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 하지만 사과와 판매 중단이라는 초강경수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은 들끓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사건을 발판 삼아 고객 확보에 전념하고 있다. 과연 이 상황은 우리나라에 득만 되는 것일까?


글|김한용(경향신문 기자, 자동차 전문 블로거)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품질 문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시장에서 벌어진 ‘괘씸죄’ 때문이다. 사건은 작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진 대로 ES350의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서지 않고 계속 가속되어 승객 4명 전원이 사망에 이른 사고다. 다른 급발진 사고와 달리 이번 사고에서는 승객이 사고 직전 미국의 긴급전화 911과 통화한 녹음 내용이 공개됐고, 4명이 죽는 사고 순간이 고스란히 TV 방송을 타면서 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이 이 사고를 대서특필했고, 수개월간 재탕 삼탕 보도한 끝에 결국 도요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처음 도요타는 이 사건의 원인을“ 바닥 매트가 가속페달을 밀어서 일어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여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각종 소비자 단체는“ 매트를 제거한 상태에서도 급가속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도요타의 변명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어 도요타는“ 가속페달이 간혹 늦게 돌아와서 발생하는 문제”일 거라며 가속페달 부품 제조사인 CTS에 책임을 묻고 있지만 이것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자국 산업 살리는 기회가 될까

애국적인 보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미국 언론은 연일 도요타와 혼다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차종별, 이슈별로 매일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어 당분간 이러한 보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영향을 받아 도요타의 중고차 가격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소비자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도요타가 미국의 자존심인 GM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우뚝 선 것 그리고 얼마 안 돼 GM이 파산을 맞은 것이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언론, 정치, 산업계가 일제히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를 자국 산업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는 듯하다.

GM은 회생 카드로 소형차와 하이브리드카를 내놓고 판매에 매진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차종에 강점을 갖고 있는 일본 자동차메이커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소유한 GM 지분(60%)을 도요타가 일부 인수해야 여론의 공격이 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언론도 비슷한 상황이다. 도요타는 한국에 오자마자 월 500대의 판매 목표를 훌쩍 뛰어넘어 700대를 팔더니, 어느새 계약자를 6개월 넘게 줄 세우는 폭발적 인기를 보였다. 물론 국산차의 판매 대수와는 격차가 크지만, 최근 별다른 대적 상대가 없던 현대·기아로서는 충격이 컸다. 언론들은 미국 언론의 깎아내리기 식 보도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며 도요타의 문제점을 연일 보도했다. 그 결과 한국 시장 판매량도 20% 이상 하락했다.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도요타 사태를 발판 삼아 고객 확보에 전념하고 있다. 심지어 도요타 소비자가 차를 팔거나 폐차하고 현대차를 사면 1000달러(약 120만 원)를 깎아주는 이벤트까지 실시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회사 “나 지금 떨고 있니?”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이처럼 겉으로는 자신 있다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은 의외로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이번에는 현대차가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미국 시장에서 언제고 도요타 꼴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도요타 사태를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본다는 뜻이다.

사실 미국 시장에서 급발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것은 도요타가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에 미국에 진출한 아우디는 연간 7만 대가 넘는 판매량을 보이는 등 갑작스럽게 인기를 끌었는데, 1986년 기묘하리만큼 시의적절하게 미국 언론에 아우디의 급발진 문제가 보도됐다. 뒤늦게 운전자의 잘못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미 판매 대수는 1만 대 수준으로 급락하고, 중고차 가격까지 폭락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퇴출에 가까웠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미국 시장에서 아우디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만 이번 도요타 사태는 퇴출 수준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1980년대의 아우디와 달리 도요타는 미국 내에 생산공장과 부품 공장 등 연관 기업들이 있어 여기에 고용된 미국인 근로자 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도요타는 최근‘ 미국 공장 생산 중단’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정치와 언론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는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70년 만에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이번 리콜 사태 이후 주가마저 폭락해 회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커다란 자동차 회사는 의외로 외부환경에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평준화… 바로 그 생각이 틀렸다

도요타는 1980년대 이후 세계 최고의 품질을 내세웠지만, 2000년대 들어서부터 그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요타의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 생산 방식이나 린(Lean) 방식은 모두 100%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훨씬 싸고 효율적으로 99%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다. 큰 결함 없는 차를 무난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생산성과 수익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따르는 품질관리기법인 ‘6시그마’도 100만 대 중 3~4대만 문제를 갖고 있는 품질 수준이지만, 차에 들어가는 4만 개의 부품을 생각하면 5대 중 1대 꼴로 문제 부품을 사용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도요타는 이런 사실을 간과했다. 이번 급발진 사건은 고속 주행 중 전자식 가속페달이 잘못 작동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무사안일주의의 결과다.

1980년대 아우디의 미국 시장 퇴출(?)로 쓰디쓴 교훈을 얻은 폭스바겐, BMW, 벤츠, 아우디 등 독일 자동차 회사는 전 차종에 안전장치를 장착했다. 가속 페달이 전자화되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행 중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가속페달 신호를 무시하고 차가 서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브레이크 오버라이드(brake override)’ 혹은 ‘스마트 페달(Smart Pedal)’이라고 불리는 장치다.

다행히 현대 · 기아도 이 스마트 페달을 전자제어 가속페달 모델 전 차종에 장착했지만, 일본과 미국의 일부 메이커들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적용하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쳐왔다. 도요타, 혼다, 포드, GM 등이 모두 그랬다. 최근 <컨슈머 리포트> 등은 이들 차종이 고속 주행 중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는 경우 차가 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차의 가속페달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다는 말이다.

작년 8월 급발진 사건 이후 도요타는 2011년부터 스마트 페달 기능을 전 차종에 장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가속페달 리콜에는 이 기능을 덧붙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여론과의 싸움은 2라운드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도요타의 눈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사실 무릎을 치게 하는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의 안전장치는 복잡하고 쓰디쓴 역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업체나 일본의 메이커들은 그동안 돈벌이는 했어도 여전히 설익은 상태다. 메이커 간 기술과 정보 교류를 통해 차를 발전시키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 메이커들은 다양한 유전자와 진화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찍어내기 식 팽창을 했기 때문이다. 단일 유전자로 만들어 작은 부품의 이상에도 여러 차종을 대량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구를 침략한 화성인이 처음에는 득세하다 감기 바이러스에 전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자유마당, 201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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