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 진입한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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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2-22 14:30:01
  • 분류 : 예전자료

다문화사회 진입한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

한건수 /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우리는 이제 모두 다문화주의자다!”
미국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네이선 글레이저(Nathern Glazer) 교수가 1997년 출판한 책에서 미국 사회를 진단한 선언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논의와 정책들을 글레이저 교수가 본다면 한국 사회에 대해 비슷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늘어나면서 한국 사회의 인적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있고, 이들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나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집중되던 ‘다문화 가족’이나 ‘다문화 사회’ 기사를 연중 특집 기사의 주제로 선정한 신문사도 있으며, 외국인 여성을 내세운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모으는 방송사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인 광고업계에서도 이제 공익광고를 넘어 기업 광고에까지 ‘다문화’를 홍보의 기표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언론·시민사회·정부, 다문화 사회 지원 활발

시민사회 또한 정부의 정책 개입 이전부터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사업을 통해 ‘다문화 사회’를 한국 사회의 미래 전망으로 제시해 왔다.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2006년 이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의 지원정책을 체계화해 온 정부는 ‘다문화가족 지원법’과 같은 법률적 근거를 확보하며 각 부처별로 다양한 정책을 입안해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은 때로 중복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며, 이주민을 지원해 온 시민단체와 경쟁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런 정황은 글레이저 교수의 말대로 ‘한국 사람은 이제 모두 다문화주의자!’라고 선언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가히 열풍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을 바라보는 학자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글레이저 교수가 미국인들을 다문화주의자라고 평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십 년 간 미국 사회에서 전개되었던 치열한 논쟁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칠 교과과정을 결정할 때마다 교육구와 지역사회의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전통은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논쟁하고 합의해 나갔다.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다문화주의나 다문화적 가치는 논쟁이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언론과 시민사회 정책 담당자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치(politically correct value)’가 되어 버렸다. 다문화 사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개인의 실질적 호불호를 떠나 시대적 추세이며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된 것이다. 다문화적 가치 자체에 대한 거부나 반대가 없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전 지구적 변화의 흐름이며 한국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나가야 할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현실이 불안하고 위기로 느껴지는 것은 다른 의견과 입장들이 토론되지 않은 채 잠복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국제이주 현상이 지속되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 외국인 이주민이 더 늘어나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이행할 때 그동안 묻혀 있던 갈등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 열풍, 냉정하게 성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한국 사회가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지금과 같은 다문화 열풍을 이제 냉정하게 성찰하는 일이다. 관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실질적인 내용을 생각할 단계이다. ‘다문화 사회’가 무엇을 말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 사회는 국제이주를 통해 인적 구성에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이다. 여러 민족과 인종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를 말한다. 또한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이다. 이주민의 권리만 보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해당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소수자들이 함께 존중되는 사회이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창의적 문화 생산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이 증진되고 사회 전체의 창의성이 커지는 사회를 말한다.

현재 정부나 시민사회의 다문화 논의는 아쉽게도 이주민을 위한 지원 대책에만 머물러 있다. 심지어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한 이주민 중에서도 여성결혼이민자에게 국한된 정책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꿈꾸는 다문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는 누가되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주류인 선(先)주민 한국인들이 이주민 한국인에게 시혜적 관점에서 베푸는 다문화 사회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주민과 다양한 소수자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사회일 것이다.

한국사회 변화 특성따른 단계적으로 적절한 정책 제시를

그런 점에서 이제 문제의 첫 단계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이 다민족화 되는 초기 단계이다.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함께 사는 한국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가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랜 이민 역사를 통해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발전해 온 나라들의 고민을 여과없이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가 갖는 특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절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한국 사회의 주류인 선주민 한국인들이 각 단계마다 어느 수준에서 다문화적 가치를 수용할 것인지 논쟁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현재의 다문화 열풍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추동할 바람직한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한때 지나가는 ‘열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 이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앞으로 경험할 변화와 위기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장기적 전망이 제시되어야 한다.(공감 코리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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