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서 벗어나 논의해야 할 세종시 문제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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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2-12 09:41:03
  • 분류 : 예전자료

■ 시사진단

국민적 합의로 미래를 열자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논의해야 할 세종시 문제의 본질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정치 현안은 ‘세종시’다. 지역 간, 정당 간, 계파 간의 이해관계와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토해양부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따른 세종시법 개정안을 1월 27일 입법 예고하기로 했다.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진정한 국민적 합의를 통해 향후 우리나라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박희봉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세종시 논란’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대통령 후보가 선점함으로써 시작된 문제다. 세종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에서 시작된 신행정수도에 관한 논의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이 있었지만 2003년 12월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큰 문제 없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충청권으로 이전되는 분위기였다. 당시 여론은 세종시 탄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야당에서도 이 여론을 의식해 합리적인 논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소송에 대해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수도 이전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행정부처 일부를 충청권으로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시도했고, 2005년 3월 중앙부처 중 50%인 12부 4처 2청을 옮기는 것을 골자로 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여론에 의해 세종시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중앙행정기관 분리하면 효율적인 통솔 어려워

그러나 약 5년이 지난 현재 정운찬 총리의 등장으로 세종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에 관한 새로운 여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여당과 야당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동안 국민의 여론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이 바뀌었다면 지역균형발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지난 정부 때 제정한 법을 원천 무효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정치적 이해관계는 어떻게 다시 조정할 것인가? 원안과 수정안 중에서 어떤 것이 합리적인 대안인가? 등 세종시와 관련한 많은 이슈가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세종시 논의를 불러일으킨 지역균형발전에 경제성, 합리성, 정치성 문제에 더하여 신뢰와 지역감정 문제까지 복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차원이 다르면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이 칼럼에서는 현재 초점이 되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차원의 논의를 분리해봄으로써 얽혀 있는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세종시 논란의 단초는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논의다. 일부 중앙행정기관을 충청권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상위 목표가 있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 경제활동의 70%가 집중되어 수도권 과밀로 인한 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앙행정기관 이전 취지는 수도권 집중과 과밀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지방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이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중앙행정기관 이전 반대론자들도 지역균형발전 자체는 인정한다. 다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중앙행정기관이 반드시 이전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중앙행정기관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행정기관 이전 그 자체가 정책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도시 간 경쟁 상태에 있는 현 상황에서 중앙행정기관이 이전된다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으며, 이는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기관 이전이 충청권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며, 충청권 일부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즉 지역의 자생적 발전 토대를 구축해야 근본적인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행정기관 이전이라는 수단보다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성과 합리성 차원에서의 논의다. 행정기관 이전 반대론자는 중앙 행정기관의 분리가 국정 통합 운영을 어렵게 하고, 국가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각부 장관과 고위 공무원이 수시로 발생하는 대통령 주재회의, 국무총리 주재회의, 국회 참석 등에 어려움이 발생해 효율적인 중앙정부 통솔에 문제가 생기고, 부처 내 또는 부처 간 의사소통과 통합도 저해될 것이다. 중앙행정기관을 의도적으로 분리한 예를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중앙행정기관이 분리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 중앙행정기관이 서울과 세종시로 분리되면 남북통일 후 또다시 발생할 행정기관 통합과 이전 문제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행정기관 이전 찬성론자는 행정기관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상위 차원의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비용 발생은 지역균형발전의 편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논박한다. 수도권 과밀과 지역불균형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비용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 배제하고 국민적 합의 이끌어내야

셋째, 정치적 문제다.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과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 판결로 인한 후속 조치 성격을 갖고 탄생한 정책이다. 위헌판결 이후 대안으로 세종시 문제가 제기되었을 당시,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충청권 민심을 잡기 위해 이 법안의 통과를 적극 찬성 또는 소극적으로 방조했다.

철저하게 여론을 의식한 계산된 행위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도 본질을 차치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상태다. 정치적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넷째, 최근 부상한 신뢰 문제다. 대통령이 바뀌고, 여야가 바뀌었다고 해서 서로가 합의한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문제인가? 대통령 후보시절 이행을 약속한 세종시 건설을 대통령이 된 후에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다. 대통령이 약속 불이행의 잘못을 시인한 후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바꿀 수 있는가? 세종시 건설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수정하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당초의 약속과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국정에 대한 국민 신뢰성을 확보하는 옳은 길인가?

세종시 문제는 이렇듯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있다. 행정기관 이전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과도한 수도권 집중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지역균형발전이 미래 국가전략을 위해 옳은 방향이라는 점, 중앙행정기관 분할이 국정 운영과 국가 경쟁력에 저해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문제는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세종시 문제는 여론에 따라 논의된 정치적 문제다. 여론이 변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세종시 문제는 충분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어떤 구체적 방안이 필요한지, 행정기관 이전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정치적으로 세종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세종시 건설 문제는 심판자인 국민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종시를 둘러싼 각종 문제를 차분하게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자유마당,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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