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미학의 감동, 동계올림픽을 기다리며…

  • No : 358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2-12 09:37:25
  • 분류 : 예전자료

스포츠 미학의 감동, 동계올림픽을 기다리며…



정윤수 / 스포츠 칼럼니스트


지난 2009년은 야구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짜릿한 한 해였다. 우선 3월에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제2회 WBC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관중 600만 명을 향한 열광적인 시즌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접하는 문구는 ‘대한 건아’, ‘역전 투혼’, ‘8강 고지 탈환’ 같은 용어들이다. 아무래도 피 말리는 승부 싸움을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요즘에는 올해 6월 남아공 월드컵을 앞둔 허정무 감독의 축구대표팀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허정무 사단의 태극전사들이 16강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전지훈련을 떠났다’는 식의 예의 표현들이 난무한다. 이는 스포츠의 매력이나 열정을 존중하지 않는, 스포츠를 예전과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결여된 상투적이고 식상한 사고방식의 발로다.

‘투지’와 ‘애국심’에 가려 스포츠는 뒷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중심으로 여러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소식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선수의 가치와 해당 종목의 미학, 그리고 올림픽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태극전사’요 ‘대한 건아’ 뿐이다.

앞서 언급한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이나 2009 제2회 WBC 야구대회 준우승을 기억해보자. 그 당시 쏟아져 나온 대부분의 이야기 역시 이와 흡사했다. ‘투지’나 ‘애국심’에 초점을 맞춘 얘기가 많았는데, 과연 멕시코나 베네수엘라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보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투지’, ‘신뢰’, ‘애국심’ 이런 단어로 스포츠의 과정과 성취를 설명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종목에 내재된 미묘한 원리와 미학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는 해외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중계하거나 보도하는 매스미디어가 해야 할 일인데, 한국 선수의 출전여부로 중계를 하거나, 온통 김연아 같은 주요 선수의 사소한 동정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동계올림픽의 종목에 스며 있는 스포츠 내적인 원리와 미학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지난 2002년 가을에 부산 아시안게임을 관전한 적이 있다. 당시 세팍타크로 경기가 눈에 띄었다. ‘세팍타크로(sepaktakraw)’는 그 명칭조차 생소한 종목이다. 말레이시아어 ‘세팍’(발로 차다)과 태국어 ‘타크로’(볼)가 합쳐진 것으로, 동남아의 유구한 전통문화가 현대의 스포츠 제도와 결합된 종목이다. 세팍타크로는 발로 하는 배구 혹은 사회인의 ‘족구’를 연상하면 되는데 하나의 세부 종목이 더 있다. 7m 크기의 원형에 5명이 빙 둘러서서 마치 오각형의 별을 그리듯 정해놓은 순번대로 공을 넘기는 것이 있다.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공을 주고받되 발을 뒤로 돌려 제기 차듯이 고난도의 기교를 부리면 점수가 가장 높다. 이 과정을 무려 30분 동안 진행한다. 아마도 제한 시간이나 엄격한 규칙이 없다면 그들은 며칠이라도 그렇게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을 것만 같았다. 선수들은 고도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심오한 무표정으로 온 정신을 공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일상을 넘어서는 도약과 비상의 아름다움

<매혹과 열광>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문학부의 한스 굼브레히트 교수가 쓴 책으로, 부제가 흥미롭다. ‘어느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이 그것인데, 실제로 이 책에서 굼브레히트는 스포츠 선수의 경이로운 육체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생명의 고양감을 불러일으킨다”(칸트). 우리가 스포츠에 몰입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상에서도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강렬한 체험, 한 개인(선수)이 최고의 신체적·감정적 몰입을 통해 궁극의 희열과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을 우리는 만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금기와 제약이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잘 길들여져서’ 순응자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스포츠를 만나는 순간, 우리의 심장은 거세게 박동한다. 당신은 지금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저만치에서 공이 하나 굴러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축구공이라면 발목에 힘을 주고 찰 것이고, 야구공이라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던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신체에서 멀리 벗어나는 그 공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그 규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그 규칙 안에서도 능란하게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스포츠 선수가 보여주는 몸짓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은 반칙을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제한 규정을 심미적으로 뛰어넘는 황홀한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 이제 정리해보자.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연히 우리 선수들의 빛나는 경기 모습과 뛰어난 성취를 바란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열렬한 지지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른바‘ 효자 종목’이라고 하는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무관심과 어려운 경제 형편에서도 태평양을 건너간 선수들이 애초의 목표를 슬기롭게 달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이 마음에 하나를 더하자. 우리의 평범한 시공간 개념을 완전히 벗어나는 선수들의 비상을 떠올려보자. 봅슬레이는 최대 시속 150km까지 질주한다. 커브를 돌때 중력의 4배에 달하는 압력이 가해져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침을 흘리는 일까지 생긴다. 알파인 스키 종목의 활강 역시 최대 시속 140km를 넘나든다. 스키점프는 또 어떤가. 아파트 20층 높이(58m)에서 순간 시속 90km 이상으로 질주한다. 그러면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몸으로 무려 120m 이상을 자유롭게 날아간다. 그 도약과 비상의 순간은 우리가 일상 속에 서 늘 꿈꾸던 자유와 몰입의 한순간이다. 그 아름다운 순간, 바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다가온다.(자유마당, 2010년 2월호)

네티즌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