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풍향계 / 국제 금융제재로 압박받는 북한 경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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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9-16 13:29:39
  • 분류 : 예전자료

■ 한반도 풍향계 / 국제 금융제재로 압박받는 북한 경제의 미래

미국의 고강도 대북 금융제재 효과, 국제사회 동참이 중요한 변수

양문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강도 높은 금융제재를 골자로 하는 미국의 대북 추가 제재 조치가 한반도 정세를 또 한 차례 요동치게 할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정황만으로도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가해 북한을 실질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북한에 치명적 상처를 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추가적 대북제재 조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7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 이른바 2+2회의에서이다. 이날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첫째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의 더욱 엄격한 시행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협력의 강화, 둘째 미국의 독자적 대북 금융제재 시행 방침을 밝혔다. 여기서 주목받은 것은 두 번째, 즉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금융제재 시행이다. 이어 8월 초 아인혼 미 국무부 이란·북한 제재조정관 일행의 방한 시 이 방안의 윤곽이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북 금융제재는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단계로 무기, 사치품뿐 아니라 마약, 위조지폐 등 각종 불법 거래 활동에 연루된 북한 기관과 지도층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2단계로 이들 제재 대상과 거래 중인 제3국 금융기관에 대해 거래 중단을 권고하며, 3단계로 이들 금융기관이 미국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 민간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중단시킴으로써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북한 위장 계좌의 정확한 추적이 중요

이러한 계획은 2005년의 이른바 방코델타아시아(BDA) 방식을 연상시킨다. 미국은 2005년부터 이 방식의 제재를 통해 북한의 금융 거래를 사실상 전면 차단, 결국 북한을 압박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5년 9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애국법 311조에 따라 마카오에 소재한 소규모 은행인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은행이 위조 달러를 유통하고 마약 판매 대금을 세탁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런데 그 충격파는 엄청났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미국 정부의 권고에 따라 BDA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아울러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에서 불필요한 장애를 우려한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BDA와의 거래를 기피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BDA의 신용에 치명타가 되어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마카오 당국까지 나서 결국 BDA는 북한계좌 내 자금을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미국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 나아가 전 세계 금융기관은 미국 재무부로부터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북한과의 금융 거래를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은 이러한 BDA 조치를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과 시장 경제원리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북한의 자금 유통 경로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 북한에 엄청난 고통을 주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미국은 빠르면 8월 말에 금융제재 대상의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선 이 리스트에 어떠한 개인과 기관이 포함되느냐 하는 것이 관심사이다.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재래식 무기와 사치품 거래는 물론, 위조지폐, 마약, 가짜 담배 제조 등 불법행위에 개입된 김정일 정권의 핵심 인사와 외화벌이 기관(무역회사)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나 그 범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가 내놓은 제재결의안 1718호,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의 대북 제재 결의안 1874호에 이미 올라와 있던 제재 대상이 이번에도 포함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대상 모두가 포함될지, 아니면 일부만 포함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아울러 새로운 대상이 포함될지 여부도 큰 관심거리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북한의 외자유치 창구로 신설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다. 이 그룹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이사장을 맡고, 국방위원회 인사가 이사로 참여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김 위원장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특히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는 북한의 체제 특성에 비추어볼 때, ‘대풍그룹’이 제재 대상에 새로 포함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미국은 북한의 가명 및 차명계좌 추적 작업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북한 관련 해외 계좌의 실태 조사를 거쳐 막바지 추적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다양한 불법행위를 위해 위장 기업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외국인 이름의 가명 및 차명 계좌를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가·차명 계좌를 포함할 경우 북한의 해외 계좌는 2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위장 계좌를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 이번 금융제재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 은행 간 금융데이터 통신협회인 스위프트(SWIFT)를 통해 북한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프트는 207개 국가 8100여 개 금융기관이 가입한 금융 결제 메시징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어 가․차명 계좌라도 실체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자금추적에 대해 북한은 계좌 폐쇄나 예금 분산이라는 방법으로 대처할 공산이 크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BDA 사태로 크게 고통 받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외무역에서 현금 거래의 비중을 줄이고 중국, 중동 등 해외의 사업 파트너 혹은 대리인을 통한 차명계좌 개설 등의 방식으로 대처해왔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파산 국가이자 국제 금융거래상의 제약이 너무 많은 북한이 완벽한 대책을 세워놓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과 경제 교류 많은 중국의 소극적 태도가 변수

또 하나의 변수, 어쩌면 최대의 변수일지도 모르는 것은 중국 정부의 태도다.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인 지난해 6월,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를 발표했다. 무기 및 관련 물자(사치품 포함)의 수출 금지, 화물 검색, 금융제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가 내놓은 1718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높은 수위의 압박 조치였다. 특히 1874호는 북한의 무기 활동과 관련된 금융 거래를 전면 차단하도록 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제재가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특정 국가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모두가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결의안을 모두 충실히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유엔 결의의 모호성 그리고 북한에 대한 각국의 정치·경제적 관계 수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1874호 발표 이후 각국이 보인 반응은 다소 상이했다. 미국은 행정명령 13382호에 따라 북한의 원자력총국 등 23개 기관, 기업 등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자산동결 및 거래금지 조치를 취했다. 일본도 전면적인 금수 조치를 취했고, EU도 제재 대상 개인 및 법인 수를 늘렸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경제제재에서는 북한과 경제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의 행동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은 중국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각종 자원을 무역과 지원을 통해 획득할 것이고,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재제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이 주도하는 추가적인 금융제재 조치에 대해 중국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 은행들이 직접적인 대북제재의 영향권 안에 든다면 중국 정부의 반발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 BDA 사태 당시 자국의 은행에 ‘과도한’ 제재를 가한 미국 정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시한 바 있다.

큰 흐름으로 보아서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에 고통을 줄 공산은 크다. 하지만 그 고통이 ‘치명적’인 고통이 될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번 금융제재의 효과를 좌우할 요인은 상당히 많다. 미국의 계획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해외 가·차명 계좌의 추적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숨바꼭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이 이 문제를 가지고 타협할 것인지, 타협을 한다면 어느 선에서 타협할 것인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8월 초 대북 금융제재 문제로 방한한 미국 측 인사들이‘외교적 노력’을 강조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자유마당,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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