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칼럼 - '경술국치' 100년에 생각한다

  • No : 393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8-17 15:29:01
  • 분류 : 예전자료

■〈자유마당〉 발행인 칼럼

‘경술국치’ 100년에 생각한다


박창달 /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1910년 8월 29일 정오, 경복궁 근정전 정문에 대형 일장기 두 장이 나붙었다. 대한제국의 주권을 ‘압류’하듯 X자로 걸린 깃발은 침략자의 오만과 자신감을 과시하고도 넘쳤다. 꼭 100년 전의 일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경술국치’와 같은 치욕은 일찍이 없었다. 고려와 조선 중기 당대 슈퍼 파워인 몽골(후에 원)과 청에 항복한 적은 있지만 그 정치적 의미는 자주성의 훼손에 그쳤다.

하지만 한일강제병합은 차원이 달랐다. 명실공히 완전한 망국(亡國)이었다. 최근 병합조약의 ‘원천 무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한민족은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1910년 8월 29일 망국, 일찍이 없는 치욕

한일강제병합은 우리 민족이 근대화의 길목에서 맞닥뜨린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반면 열강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한 나라가 사라지는 데 대한 연민이나 우려는 아예 없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각자의 국익(國益)이었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해체는 당연시됐고 국제 정의니 만국공법(지금의 국제법)이니 하는 것은 말뿐이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지만 그것이 20세기 초 세상 인심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는가? 한마디로 무지했고 무력했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동아시아의 중심 청나라를 강타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세상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허우적대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기득권과 정파적 이해를 넘어서는 공동의 대응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고 부국강병의 길은 멀기만 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제국주의에 편승한 일본의 도전은 너무나 집요했고, 결국 우리는 나라를 내주어야 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한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나라 잃은 설움을 이겨내어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고, 다시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딛고 ‘G20’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한일병탄이 빚어 놓은 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성취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우리는 개항 이후 3세기(19세기 말, 20세기, 21세기 초)에 걸쳐 국제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정글에서 살아왔다. 1910년 당시 열강은 한반도의 안정을 바랐으며 그것을 위해 한반도의 일본화를 선택했다. 물론 지금도 한반도의 안정은 주변 4강의 여전한 관심사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분단이라는 한반도 내 상황이다.

주변 4강 이해 꿰뚫어보며 미래 개척해야

국가는 자신이 처한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스스로의 힘과 전략으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이는 제국주의시대나 지구촌 시대나 마찬가지며, 국권 상실의 고통을 체험한 우리로서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튼튼한 경제력과 국방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 북한이라는 위협적 실체와 중국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고, 한미동맹의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동맹체제를 활용할 줄 아는 전략적 지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어느 시대든지 국익은 국가의 대외활동을 규정하는 최고의 가치다. 우리는 주변 4강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를 꿰뚫어보고 한 세기 전 이 땅을 외면했던 세상 인심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여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통일 한국을 건설해야 한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술국치’ 100년이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성토를 넘어 진정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는 8월 15일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을 바라보며 새로운 100년을 향한 각오를 다지자.(자유마당,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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