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이슈 - 한러 수교 20주년 진단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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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7-19 11:08:32
  • 분류 : 예전자료

■ 글로벌 이슈

러시아의 동아시아 외교전략을 통해 보는 한러 수교 20주년 진단과 비전
- 실용주의적 외교로 한·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를

2010년 9월이면 한러 수교 20주년이 된다. 1990년 북한의 군사동맹국이던 러시아와 정식으로 수교한 것은 우리 북방 외교의 상징적 시작이었다. 이후 나로호를 비롯한 우주 분야와 극동 시베리아 개발 등 경제 분야의 두드러진 협력관계를 보이며 외교의 새로운 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러 관계를 돌아본다.

최태강 / 한림대 러시아학과 교수

1990년대 초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서로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극동의 발전을 위해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간주해 한국과 관계를 강화해갔다. 반면 한국은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서 친한정책과 대북 영향력 행사를 기대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이러한 서로의 기대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1993~94년 1차 북핵위기 상황 속에서 이해 당사국이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소외된 경험을 맛본 이후 러시아는 남북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를 펼쳤다. 이러한 기본 원칙을 토대로 러시아는 남북한과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갔다. 2000년대 젊은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2008년 5월 7일 집권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이 같은 한반도 외교정책을 변화 없이 유지해오고 있다.

동북아 강대국 지위 꿈꾸는 러시아의 전략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을 이해하려면 우선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대외전략을 살펴보아야 한다. 동아시아에 대한 전략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에 현존하는 기회를 극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 상존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
러시아가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러시아는 동아시아와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동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이 지역 국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며, 동아시아에서 약한 러시아의 정치적 프로필을 끌어올리는 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0년대 들어와 러시아 정책 결정자들은 동아시아에 전략적 다양성, 아시아 협조체제, 다자참여라는 세 가지 의미의 접근을 추구했다.
첫째, 전략적 다양성은 어느 특정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만 집중하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해 여러 나라와 다양한 협력관계를 맺어 안전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둘째, 아시아 협조체제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강국들 사이에서 대등한 힘을 가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고립을 피하자는 전략이다. 셋째, 다자참여는 현재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처럼 다국 협력체제 참여를 통해 러시아의 발언권을 유지하되 직접 개입의 부담을 피하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세 가지 접근을 통해,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우월한 전략적 자산을 개발하고 활용하려 한다. 특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핵 등 군사안보 문제를 제기하며 동북아 질서를 운영하려는 미국에 맞서 러시아의 강점인 에너지 자원을 활용, 동북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증진시키는 동시에 에너지와 광물자원을 개발하고 판매 수송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또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상을 활용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남북한 종단철도에 연결시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물류기지화하고 중국, 일본,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증진하는 기능주의적 협력 중심의 동북아 질서를 건설하면서 이 지역에서 강대국 지위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자세도 남북한 균형외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더 많은 발전 기회를 얻기 위한 지역통합 참여와 이 지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도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다.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서 이것이 중요한 것은 동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의 발전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
보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동북아 지역에 진정한 평화시대가 올 때 이 목표 달성에 좀 더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균형적 관계 발전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균형 접근이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고 남북 화해 증진에 건설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남북의 건설적 관계 유지를 바라고, 남북 간의 대화를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정부는 한반도 정책 실현 과정에서 균형을 상실했을 때 그 파장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이미 1993~94년 제1차 북핵 위기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그래서 이번 천안함 사태에도 한국과 서방국가들이 북한의 소행으로 제시한 과학적 근거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셋째, 한반도의 비핵화 추구다. 러시아는 국익 차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6자회담을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한국은 동북아와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일·러·중 한반도 주변 4강의 이익에 대한 균형을 이루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비록 한미 관계만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한러 관계 발전은 지역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강화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2004년 양국 관계는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더욱 격상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양국 간 쌍무적인 관계를 넘어 세계적 범위에 걸친 모든 분야의 문제에 대해 서로 논의하는 단계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맞는 적극적 교류 필요

향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진정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될 것이다.
첫째, 양국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 사이의 인적 교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정상회담, 총리 및 장관회담 등 고위급 회담의 제도화를 통해 공동으로 관심을 갖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협의하고 협조함으로써 양국의 정치적 신뢰 관계가 보다 깊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 중앙 및 지방정부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을 대신해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연방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통령 전권대표들 및 지역 주지사들과 정기적인 교류(예를 들어 한러 지사회의)도 필요하다.
둘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그에 못지않은 실용주의적 균형외교 원칙 아래 러시아와 외교적 협력도 확대해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 한반도에 독립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6자회담 이후 동북아 다자안보구축을 겨냥한 주변국의 외교 경쟁에서 균형 있는 실용주의적 외교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한반도의 역사적 교훈을 보았을 때 주변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지 않았고, 한반도 재통일도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셋째,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 공동성명에서 나온 경제협력 부문에 대해 양국 간 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 협력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특히 2008년 2월 러시아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0 플랜’ 경제계획에서 첨단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 다변화와 에너지 공급, 수송 기반 시설 확충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첨단기술과 테크놀로지 부문, 시베리아 극동 지역에 대한 투자와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양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양국 국민 간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문화, 스포츠, 청소년 교류 등 전반적인 인적 교류를 확대해 친선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한다. 이러한 교류는 상호 방문을 정례화해 실질적인 협력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과거나 현재나 러시아는 한반도를 동북아 강국(미·일·중)과 러시아 관계의 상황 속에서 보고 있다. 미래에도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인식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러시아의 동북아외교정책에서 영향력 증대에 실패한 것은 바로 러시아가 이 지역의 강국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주요 강국들과 대등한 동반자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 강국이 되기 위해서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사회, 경제, 기술적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결국 자본· 기술 · 노동력을 가진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 국가들과 협력 발전이 연계되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통합 메커니즘에 적극 참여해 지역 국가들과 우호 협력관계 강화, 지역 안정을 위한 안보문제 평화적 해결 등에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바로 그런 러시아와의 공조관계인 것이다.(자유마당,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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