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생태적 관점에서 본 '4대강 살리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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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6-18 15:41:57
  • 분류 : 예전자료

■시사진단

생태적 관점에서 본 ‘4대강 살리기 사업’
노쇠한 강에 역동적 생명을 불어넣을 기회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4대강 프로젝트가 녹색 뉴딜 정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고 균형 발전을 촉진하며, 역사와 문화의 발상지였던 강의 생명력을 강화해 국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환경과 생태 문제를 들어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4대강의 환경과 생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 긍정적 입장의 주장이다.


차윤정 /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풍경 1] 상공에 내려다보는 들녘 풍경이 한가롭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은 얕은 두렁을 물막이 삼아 저마다 물을 가득 담고 있다. 찰랑이는 수면 또한 햇볕에 반짝거린다. 그러나 반짝이는 논 사이로 굽이치는 강줄기에는 끊어질 듯 고단하게 흘러가는 탁류로 마음이 무겁다. 너른 모래사장 위로는 자동차가 지나간 흔적이 선명하다. 수면보다 높은 모래톱에는 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강변의 버드나무는 밑동이 한 치나 모래 더미에 박혀 있으며 물에 쓸려 기울어져 있다.
[풍경 2]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밭이랑이 강변에 가지런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봄바람을 타고 흙냄새와 거름 냄새가 실려 온다. 문득 중학교 1학년 첫 생물 시간에 들려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봄에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 향긋한 고향 냄새가 난다. 아, 거름 냄새.” 한 번씩 비가 내리면 그 강가엔 언제나 봄 냄새의 실체들이 떠내려 왔다. 강을 따라 늘어선 밭이며 비닐하우스에서는 많은 거름이 뿌려지고 그 잔여물은 물을 타고 땅으로 강으로 스며들었을 테다. 아직도 강변을 걸으면 예의 그 고향 냄새가 난다.
[풍경 3] 논을 갈아엎는 트랙터 소리가 시끄럽다. 물에 충분히 젖어 부드러워진 흙이 속에서부터 뒤집힌다. 트랙터 바퀴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중대백로가 뒤따르며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미꾸라지며 개구리를 집어삼킨다. 개구리 쪽에서 보면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만 이런저런 사고에 대비해 그렇게도 많은 알을 낳았을 테지. 논에 물이 차 있는 동안 물속에는 온갖 곤충이 득실거리고 개구리밥이 수면을 가득 메울 것이다. 그저 논에 물을 댔을 뿐인데 물을 토대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물과 함께 깨어나는 것이다.

오랜 지질학적 과정으로 노쇠한 우리의 강

경사가 급하고 고도가 높은 산악 지형인 우리나라는 매년 엄청난 양의 토사가 유역 내 하천으로 흘러든다. 강물 속 토사는 물의 힘이 약해지는 곳에서 쌓인다. 퇴적의 역사는 강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특별한 지형적 교란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강은 수만 년 동안의 지질사적 부산물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강우마저 여름 한철에 집중되어 1년 중 절반 이상이 강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마저 빈곤한 상태다. 높아진 강바닥은 경우에 따라 1년에 겨우 한두 달만 물에 잠길 뿐 일상적인 모래사장으로 변한다. 강물이 부족하니 물의 자정 능력도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사람들은 물의 힘이 약한 퇴적지에 경작지를 만들어 경작 활동으로 인한 오염물질을 강으로 다시 흘려보냈다.
이처럼 우리의 강은 오랜 시간 쌓인 퇴적물, 부족한 물, 악화된 수질로 인해 강으로서 수명이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강도 높은 자연 교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강이 변할 여지는 없다.
강의 환경이 혹독하면 그 속에 사는 생물도 고통스럽다. 강바닥의 모래는 일정 부분 물을 정화시키기는 하지만 수심을 얕게 만든다. 그나마 물로 채워지면 다행이겠지만 켜켜이 쌓여 수면보다 높아진 강바닥은 물이 없는 계절이면 햇볕에 그대로 드러나 뜨거운 사막으로 변한다. 햇볕에 반짝이는 황금빛 모래는 그 뜨거운 열기로 표면에 생물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겨우 유지하고 있는 물도 수시로 질이 떨어져 생물들에게 고통을 준다.
이제까지 강의 물 공간이 줄어들고 수량이 줄어들고 수질이 악화되면서 얼마나 많은 종(種)들이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개체 수가 줄어든 종들 역시 어쩌면 강의 역사와 그 운명을 함께하는 마지막 종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 종만이 아니라 더 많은 생물들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보기에 좋았더라’의 강은 기실 지독히 인간적인 감상일 뿐 그 속의 생물들에게는 절망의 강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강을 이용하는 생물 중에는 사람도 있다. 인류의 정착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사회가 발달하면서 강은 순수한 자연으로서보다 삶의 터전이자 수자원의 공급처로서 중요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1년 내내 비가 고르게 내리는 곳은 없다. 비는 지역적으로 움직이는 기상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기상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나라도 있으며 거의 오지 않는 나라도 있다.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든 강을 개발하고 관리해왔다. 그나마 연간 1300mm 안팎으로 비가 내리는 우리나라는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집중되는 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여전히 홍수기와 갈수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강으로서의 한계가 명확히 나타난 한 현재의 강을 보는 입장은 분명하다. 우리는 강우 자체를 조절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노쇠한 강을 버리고 새로운 강을 찾아 떠날 수도 없다. 결국 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시간을 거슬러 좀 더 젊은 시절의 강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이미 강은 온전한 자연,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오늘날 강들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관리해야 하는 국토의 일부요, 수자원의 주요한 근원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강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의 생명은 두말할 것 없이 물 자체다. 물이 없는 강은 그 어떤 생물도 품을 수 없다. 강이나 하천은 담수생태계 중 유수 생태계의 대표적 유형이다. 즉 물이 흘러가는 생태계인 것이다. 강의 속성은 제공자 조절 생태계(donner control ecosystem)이지 수혜자 조절 생태계(receptor control ecosystem)가 아니다. 생물이 강의 특성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물이 생물을 규정짓는 생태계인 것이다. 부차적으로 물과 육지가 만나는 곳에 때로 물이 고이면서 호소 생태계나 습지 생태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들 생태계도 물의 기운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며 물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습지는 자연스럽게 육지가 된다.
강을 살리는 가장 기초는 물에 대한 접근이다. 강의 변화하는 성질에 따라 당연히 생물의 성질도 바뀔 것이다. 물론 인위적인 간섭으로 강의 역사를 거슬러가는 동안 일정 부분 자연의 흐름에 반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관리는 불가피하게 모든 종을 다 살려낼 수는 없다. 그것은 생태계 자체의 법칙이기도 하다. 생태학자들은 종종 생태계 관리를 위해 효율적인 종 관리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물의 기운이 가장 풍성할 때 수 생태계의 속성과 생물적 속성들이 온전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물이 풍부하면 물속 생물의 종 수는 물론이고 개체 수도 늘어난다. 많은 생물량은 상위 포식자들을 부양하는 힘이 크다. 곧 물속의 먹이가 커지면 물 밖의 생물도 풍성해진다. 생태계 관리는 일정 부분 종 관리와 구분될 수밖에 없다. 생태계는 소수의 희귀종이 아니라 대다수의 보편적 종들이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과정에 서 부정적 영향을 받는 생물종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생물종도 인간의 편익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물이 풍부하면 경계 그릇도 커지면서 큰 습지가 조성된다. 습지는 양서류와 파충류를 비롯한 가변적 생물들에게는 절대적 서식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칫 빈약한 습지 구조는 기회종들로 채워지기 쉽다. 습지든 산림이든 강이든 고유한 생태적 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핵심 지대(core zone)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 지역을 보호하는 완충지대(buffering zone)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핵심 지대가 빈약하면 고유한 종의 보존이 사실상 어렵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보는 관점은 단순한 종 수가 아니라 종의 질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강의 모래사장은 일부의 풍광으로 유지되어야지 강변 전체를 대표하는 풍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풍성한 하반림(수변림, riparian forest)이 오히려 생태적으로 필요하다. 하반림은 물과 식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할 뿐 아니라, 물이 실어온 영양분을 걸러내며 이로 인해 높은 식물 생산성을 유지한다. 물에 대한 접근성과 풍부한 식물 먹이로 인해 곤충과 소형 초유동물, 양서류와 파충류의 절대적 서식처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강에 산재하고 있는 하반림은 물과 분리되어 있어 고유한 기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하반림과 물 사이의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의 패러다임이 ‘자연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에서 ‘자연의 질서, 과정, 흐름’을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존립은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식량과 물은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에 대한 관리의 절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오늘날 그 시급성과 절대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생태학이 열어줄 물 관리의 새로운 지평은 생태적 과정을 유발하고 생태적 기본을 유지해줄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울창한 숲, 역동적인 강으로 다시 태어나는 국토

강바닥의 과도한 퇴적물을 걷어내 수심을 확보하고, 강변의 농업활동으로 인한 오염원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강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새로운 시간이 흐르면서 강의 자연스러운 구조가 안정되면 지금 당장 위협을 받을 종들이 훨씬 안정적인 상태로 복원될 수 있을 것 또한 기대한다.
강과 육지의 경계를 인위적인 구조물로 막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경계가 만들어지고, 경계의 속성에 따라 식물이 풍부한 습지가 조성되기도 하며, 토사의 힘이 우세한 곳에서는 새로운 모래톱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의 강은 강으로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스스로를 정화할 기회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강을 강의 운명으로만 지켜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도 강의 생명을 위협해온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으니까. 이제 그 고단한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강을 새롭게 살릴 기회를 맞이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주도할 기회를 무작정 거부하는 것 대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교란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이며, 드러난 위기종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힘을 모으는 일이다.
대대적인 나무 심기로부터 복원된 울창한 산림과 이제 곧 태어날 역동적인 강으로 인해 우리 후손이 살아갈 이 땅이 명실상부한 산수국(山水國)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자유마당,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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