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오리무중 남북관계, 정부 위기관리 능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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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5-18 13:14:32
  • 분류 : 예전자료

■ 한반도 풍향계

설상가상·오리무중 남북관계, 정부 위기관리 능력이 주목된다
- 북한 연루 가능성 제기된 천안함 사태, 황장엽 암살조 검거… 일촉즉발의 남과 북



천안함 사태 이후 긴장감이 감돌던 남북관계가 ‘황장엽 암살조’로 밝혀진 북한 간첩 검거를 계기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 의지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서 터진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당분간 출구를 가늠하기 힘든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의 남북관계, 그 출구는 어디인가?


김창권 / 한길리서치 대표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따르면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의 북한 간첩 2명이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지난 1~2월께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 국정원의 합동신문 조사와 검찰 조사 등을 거쳐 지난 4월 20일 간첩 혐의로 전격 구속 수감됐다. 이번‘ 사건’은 특히 천안함사건에 북한이 연루됐을 경우 정찰총국이 이를 주도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터져 더욱 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지구 자산 동결을 시작으로 연이은 대남 강경책을 쏟아붓고 있으며, 한동안 신중론으로 일관하던 우리 정부도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외부 충격 때문인 것으로 가닥을 잡은 이후에는 북 개입 시에 대비해 모든 옵션 검토에 나서는 등 강경한 방향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의 의도적 남북관계 악화 조치 단호히 대처해야

지난 4월 20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평통 북미주 자문위원들과 함께한 다과회 자리에서 “나는 북한이 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본다”며 북한을 공개 비판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발언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의 발언은 천안함과 무관하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반응이지만 천안함 사고의 북한 개입설이 유력한 가운데 나온 것이란 점에서 이번 발언이 대북 강경 기조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외교안보자문단과 함께한 오찬 간담회에서도 참석자들로부터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취해야 할 조치,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과 천안함 사고를 연계할지 여부 등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청취하고 검토했다.

이번 간첩 사건은 그동안 설(說)로만 떠돌던 황장엽 암살 음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대북 전문가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북측 의도와 유례없는 긴장 상태로 빠져드는 남북관계의 변화 양상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교수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강공책과 간첩 침투 등과 관련 “북한은 지금 천안함 사태로 교착 국면에 빠진 현 상황의 책임을 남한과 국제사회로 돌리기 위한 명분 쌓기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대외적으로 북한의 테러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하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이미 금강산과 개성공단 문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진 데다 혹 연루 세력이 더 밝혀지거나 조만간 천안함 사고 조사 결과에서 북한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북핵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논의 등은 상당 기간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남북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추가된 설상가상의 사건으로 현재의 경색 국면을 배가하고 지속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갈수록 꼬여가고 있지만 이를 풀어줄 대안이나 마땅한 실마리가 없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과 북이라는 측면만으로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어렵다”면서 “일정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6자회담 재개를 포함한 국제적 차원의 해법 모색만이 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남북관계 악화를 순차적으로 계획해온 것으로 보인다. 2월 들어 이명박 대통령 취임 2주년 즈음에 다시 이 대통령 비난에 나섰고, 3월 4일 아태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금강산 · 개성 관광과 관련한 모든 합의와 계약 파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 동결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또 3월 18일에는 다시 아태평화위원회가 통일부와 현대아산에 통지문을 보내 부동산 조사 실시와 자산 몰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3월 25일부터는 실제로 조사가 있었고, 이후 일련의 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은커녕 기존 남북협력사업마저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급변사태 대비와 대량 살상무기 제거를 위한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비난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급기야 2월 8일에는 인민보안성·국가보위부 명의로 “전면적인 강력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나섰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이후 나타난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는 끝나고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적인 남북 갈등 상황 연출에 이명박 정부도 일부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지난 2월 8일 개성에서 열린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실무 회담이 결렬되자 북한 측이 후속 접촉을 제안했으나 남한 측은 거부했다. 4월 8일 북한이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한의 부동산 동결을 발표하자 이튿날 남한 정부는 “정치 공세”라고 일축하면서 “회담을 제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4월 13일 북한이 ‘동결’ 조치를 취했을 때도 통일부 관계자들은 기왕에 사용하지 않는 시설들이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 개성 관광 비용(현금)이 김정일 정권의 통치 자금이나 핵 개발에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북한과의 관광사업 자체를 회의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사업을 경제 원리에 따라 대하고, 북핵과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 공조와 보편주의에 입각해 접근하고.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보듯이 북한을 계도하거나 굴복시키려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남북관계의 후퇴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천안함 사태 원인 신중하게 밝히는 데 집중할 때

여기에다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도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만약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물증이 없거나 북한이 부인하는 가운데 심증으로만 북한의 소행으로 몰고 간다면 남북관계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북한이 개입한 물증이 있다면 정부는 단호한 대처 의지를 밝히고 국제사회와의 공조 아래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의 진상 규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단은 이 사건과 남북관계를 분리해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원인은 사고 때부터 지금까지 함미·함수 인양 외에는 크게 달라지거나 진전된 것이 별로 없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지난 16일 “한국은 군사적 조치를 못할 것이라고 하는 데, 우리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면서 군사 대응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19일은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것은 최종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기뢰 또는 어뢰 아니겠느냐고 추정할 수 있지만 물증이 제한되기 때문에 영구 미제 가능성도 있다”고 답변했다. 국회 국방위에서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긴 하지만 영구 미제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외부 충격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인데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의 이른바 ‘~라면’ 화법이 국민을 헷갈리게 만든다. 이런 때일수록 추측이나 추정보다는 신중하게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국가안보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자문단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더욱 단합하게 될 것이고 지금은 모두가 서로 격려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제 여건이 우호적이다. G20정상회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고위급 원조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등 우리가 주최할 중요한 국제 행사가 많고, 국제사회에서 할 일도 적지 않다”며 “우리가 책임 있는 국가가 됐기 때문에 심증만으로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균형 감각을 갖고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리 경제가 영향을 받지 않았고, 사고 이후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 등급을 오히려 한 단계 올린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에 신뢰를 보낸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의도적인 남북관계 악화 조치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로 물리적 충돌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북한의 행동에 대해 단호한 대처 의지를 밝혀 상황 악화의 한계선을 제시하고, 두 번째로 개성공단 사업을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해 유지 발전시켜나갈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또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남북관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직시하고 상황 악화를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남북관계는 당분간 경색 국면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연루설이 아직까지는 하나의 가설이지만, 앞으로 천안함 침몰 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적잖은 후폭풍도 예상된다. 남북관계 급변 사태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요즘, 우리나라 국민과 세계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그 어느 때보다 주시하고 있다.(자유마당,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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