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전사자 가족들, 우리 사회의 위로가 필요하다

  • No : 378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0-05-18 11:29:09
  • 분류 : 예전자료

천안함 전사자 가족들, 우리 사회의 위로가 필요하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전 국민을 하루하루 뉴스에 귀 기울이게 만든 천안함 사건. 꽃다운 젊음을 바다에서 마친 승조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가슴 아픈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있으니 바로 혈육을 잃은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가족이다.


안석균 / 연세의대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부교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우 나타나는 정신적 고통을 전문 용어로 ‘애도 반응’이라고 하는데, 애도 반응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쇼크 상태다. 정서적 쇼크 상태로 무표정해지며 목이 꽉 조이는 느낌이 들고 신체 증상으로 한숨, 울음, 공복감, 비현실감을 경험한다. 죽었거나 실종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부인하거나,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2단계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몰두가 나타난다. 정서적으로 분노·슬픔·불면 등이 나타나며 한숨과 울음은 식욕 저하와 피로감으로, 비현실감은 죄책감으로 대체된다. 사망자나 실종자에 대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며 꿈으로 재현된다. 기쁨과 즐거움이 무감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해소 단계에 접어들면서 정서적·신체적 증상은 점차 해소되고 주변의 흥미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대인 관계도 서서히 가능해진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비로소 생각에 변화가 오는데, 과거의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할 수 있게 되어 정상적인 정신적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천안함 희생자 가족은 이러한 애도 반응의 단계를 거치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서 마음 속에서 사랑하는 아들, 남편, 형제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현실 적응 어려워

일반적으로 애도 반응은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1년이 경과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기간 이후에도 일정 형태의 애도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마지막까지 나타나는 애도 반응은 가족, 특히 부인에게서 보이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수년간 지속 되는데, 종종 가족의 이름을 듣거나 사진을 보는 등의 일상적인 일만으로도 잃어버린 가족이 다시 생각나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슬픔이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지고 한순간의 기억과 함께 눈물도 차차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애도 반응이 지나치면 병적 우울증에 빠지고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란 생각을 넘어서 스스로를 약하고 나쁘며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우, 잃어버린 가족과 관련한 일을 계기로 슬픔이 나타나는 것을 넘어 저절로 북받쳐 올라오는 경우, 우울증이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기능 저하가 심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의 경우처럼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가족을 잃은 경우는 이 같은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망자에 대한 지속적인 기다림, 흐느낌을 보이고 감정적 반응 역시 강렬하고 반복적으로 보이게 된다. 꿈속에 계속 나타나고, 생활 공간에서 망자의 이미지가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해도 불안이 해결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반응을 보인다. 긍정적 기억을 떠올릴 수 없으며,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족 중 한 명이 이런 병적 애도 반응을 보이면 가족 전체의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이다.

병적 우울증에 더불어 만성적인 불안감, 공황에 빠지고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 특히 아빠를 여읜 어린아이의 경우 아빠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감정적·인지적으로 미숙한 탓에 이후 성인기에 병리적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 문제 역시 중요한 애도 반응의 한 후유증이다. 남자, 특히 65세 이상인 경우 사망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허혈성 심근경색 같은 심장질환으로 기인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술과 담배 등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하거나 처방받지 않은 약을 함부로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라를 지키다 전사했다는 자긍심 가져야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충분한 수면이다. 충분한 수면은 스스로 의 회복 탄력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회복하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둘째로는 휴식과 이완이다. 과각성(깜짝깜짝 놀라는 등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증세)되는 경우 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끼리 자조(自助) 모임을 가져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가족의 30%가량이 사회관계를 끊고 혼자 고립되어 지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조 모임을 통해 함께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고 고립감과 외로움을 이겨내고 사회적·감정적 지지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사회의 의미 있는 한 구성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의 아들이, 나의 아빠가 국가를 수호한 자랑스러운 우리 모두의 지킴이였다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또 이들의 출신 마을, 학교에서도 우리 마을·학교 출신이 백령도에서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후배들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영국의 명문 학교에서 신입생에게 우리 학교 출신이 어느 대학에 몇 명 들어갔는지를 얘기하기 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몇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 몇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듯이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때 유가족의 애환은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것이며, 이것이 우리 모두 유념하고 함께 지향해야 할 진정 통합된 사회를 향한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길일 것이다.(자유마당, 2010년 5월호)

네티즌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