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연·병·호
독립운동 세력 통합에 헌신하다
국가보훈처는 원명(圓明) 연병호(延秉昊)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해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의 연계 역할을 담당했고, 한국국민당 조직 등 정당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친일파인 상해거류조선인 회장 저격사건에 연루돼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894년 11월 22일 충북 증평군 도안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형 연병환의 영향을 받아 1915년 경성기독교청년회관을 다니며 안재홍, 조용주 등과 교류하고, 조선기독청년회, 조선인유학생학우회 등을 통해 민족의 통탄한 현실을 논의하는 등 동지적 유대감을 형성했다.
선생이 독립운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3·1운동 직후 함께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만주의 한국독립당과 합당해 신한독립당으로 통합·발전시키는 등 정당의 통합을 통한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1933년 다시 임시의정원에 참여했던 선생은 1937년 초 친일파인 상해거류조선인회장 저격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63년 선생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