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한반도 정세
고유환(통일연구원 원장)
통상 해가 바뀌면 새 희망을 품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나 올 새해를 맞는 대부분의 국민들의 마음은 무거울 것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팬데믹 지속, 본격화한 미중 전략경쟁, 교착국면에 빠진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 심화하고 있는 빈부격차와 남남갈등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난제들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질병 문제를 넘어 자연재해 수준의 인간안보(비전통안보)이자 국가안보 문제로 부각했다. 전통안보는 적우(敵友)가 분명 하지만 코로나19는 적우가 따로 없는 인류공통의 적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전염병이 국가안보를 위협함에 따라 군사안보 중심의 전통안보 위협에 대처하는 것 못지않게 인간안보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은 ‘K-방역’을 통해 비교적 선방하고 있지만, 북한은 국가의 모든 우선순위를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집중하면서 국경을 폐쇄하고 마치 ‘성곽도시’처럼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남측의 역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여 남북관계를 끊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75주년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두 손을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혀 남북관계 복원의 의지를 밝혔다. 북한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있어 남북관계 복원은 코로나사태가 수습돼야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새해 남북관계 조기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해 유엔연설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시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에 북한이 적극성을 보인다면 남북 보건·의료협력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 의해 취해진 켜켜이 쌓인 제재에다가 ‘셀프봉쇄’를 선택한 북한의 경제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유엔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로 삼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에서 사회 전반의 일탈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문이다. 북한은 연초에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전열을 정비할 예정이다. 2019년 말 미국과의 대결을 ‘제재 대 자력갱생의 장기전’으로 정리한 북한이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80일 전투’ 등 내부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취임일성으로 약속한 인민생활향상 공약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공개 사과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여 매지 않게 하겠다”며 인민생활 향상을 공약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연이은 핵·미사일 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와 함께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추가 제재를 받아 북한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성공 이후 ‘국가핵무력 성공’을 선언한 북한은 2018년 4월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채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미국과 평화-비핵 교환협상을 타결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구상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좌절되고 말았다. 2019년 말 북한은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자력갱생식 전면돌파전을 수행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은 ‘또 하나의 고난의 행군’을 감내해야 한다.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의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인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위기 심화에 따른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감성정치’를 구사하면서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혁신과 발전, 실질적인 변화를 이룩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전략노선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월 20일이면 미국에서 조 바이든(Joe Biden) 민주당 행정부가 출범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큰 틀에서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효과론’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의 핵능력이 질적으로 고도화하고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 하지 못했고, 사실상 핵을 가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적극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적 압박을 지속하면서 상향식(보텀업) 대화를 추진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22일 “한반도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를 이끌기 위해 핵 능력을 감축하는 데 동의한다는 조건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새 행정부가 공화당 정부가 선호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또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방식의 선비핵화론에서 벗어나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두고 ‘핵능력 감축’을 우선하는 단계별 동시행동 방식을 수용할 경우 평화-비핵 교환협상은 조기에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 정부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대한반도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유의해 주도적으로 정세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창의적인 안을 내면 동맹을 중시하는 미 행정부도 우리 입장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