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당선과 이후의 행보, 그리고 한반도 정책
북핵 문제…美·中 갈등 속 韓·中 협력의 딜레마
김준석(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의 막무가내 식 기행과 바이든의 승리
전세계를 몇 주간 가슴 조이게 했던 미국 대선의 결과가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탄생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두 사람에겐 역시 ‘최초’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붙게 되었다. 바이든은 대권 도전 32년 만에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 역사상 최고령 당선자이다.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은 최초의 여성 부통령, 최초의 유색인종 부통령, 최초의 인도 이민자 자녀가 부통령이 된 사례다.
당선 이후에 기쁨 일색이어야 할 바이든-해리스 진영은 현재 여러 난관에 부딪쳐 있다. 현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길 거부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트럼프가 끝내 바이든 인수팀에 대한 협조에 마지못해 동의하긴 했지만 대선 결과에는 여전히 승복을 거부했다. 트럼프는 임기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그간 눈엣가시였던 장관들을 잇달아 경질하며 자기 세력을 다진다. 당선자에 정보브리핑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갓 임명한 연방총무처(General Service Administration) 장관은 선거는 여전히 결론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그간 바이든 인수위에의 자금지원을 거부했다. 트럼프가 이렇게 바이든 진영에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해도, 결국 선거 결과는 이미 결정 난 상태다.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불복 진영은 힘을 잃고, 각 주의 재검표 결과는 바이든 당선 확정을 말한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업체를 백지 신탁하지 않았고, 아들들이 그대로 운영하게 했다. 약속했던 자신의 세금납부 내용의 공개를 차일피일 미뤘고, 이의 공개를 압박하는 뉴욕 주 검찰에 대해선 법정싸움을 벌이며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뉴욕타임스의 폭로로 세간에 그 내용의 일부가 알려지긴 했다). 트럼프는 딸과 사위를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했고, 국가를 개인기업처럼 운영했다. 아들 둘 역시 정치에 대놓고 개입했다. 트럼프 재임 중 두 번의 국무장관 경질과, 세 번의 국방장관 경질이 이어졌다. 백악관과 연방정부의 임명직들은 대통령의 전화 한 통으로 늘 경질될 위험에 있었다. 트럼프 측근이 퇴임 직후 줄 지어 폭로성 회고록을 발간한 것도 트럼프 정부가 백악관을 얼마나 자기 멋대로 운영했는지를 보여준다.
트럼프는 하루에도 수십 여건의 온라인 게시물을 올리는 트윗 중독자였고, 그 내용은 솔직했고 무례했다.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Nancy Pelosi)는 ‘미친 낸시(crazy Nancy)’로 지칭되었고, 바이든 후보는 ‘졸린 바이든 (Sleepy Biden)’이었다. 게시 글 일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부터 ‘사실 확인이 필요함’이란 딱지가 붙거나, 가려졌다. 트럼프는 실제 현장유세에서도 동료정치인에 대한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마구 내뱉었다. 그의 기자회견 역시 임기응변과 정제되지 않은 말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재선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에겐 누가 뭐래도 그만 바라보는 단단한 지지층이 있었다. 트럼프 3년 간 두 가지의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첫째, 트럼프 집권 3년 간 미국 경제는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경제적 풍요가 오바마의 정책이 트럼프 대에 빛을 발한 것인지, 트럼프의 공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만 해도 미국 경제가 세계대전 이후 최고로 좋은 상태였던 것은 분명하다. 주식시장은 최고치를 경신하였고, 미국 산업의 생산성 역시 크게 개선됐다. 일자리도 크게 늘어난 가운데, 특히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 실업률은 사상 최저를 찍어, 사실 상 완전 고용 상태에 도달했다. 백인 뿐 아니라 흑인, 라티노, 소수계의 실업률 역시 모두 사상 최저점을 찍었다. 둘째, 국내 정책에선 자신을 찍어 준 유권자의 이익만을 철저히 도모했다. 외교에서의 혼란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국내 정책은 철저히 보수주의적 이념에 따라 진행했다. 집권 2년 차 사상 최대 폭의 세금 감면을 단행했다.
민주당 하원의 극한 반대에도 멕시코와의 경계에 장벽도 일부 쌓아올렸다. 무엇보다, 연방법원을 하급법원부터 대법원까지 보수적인 판사로 가득 채웠다. 트럼프 임기 중 200명이 넘는 연방판사가 임명됐다. 연방대법관만 해도 3명을 보수 판사로 채움으로써 그 축이 보수진영으로 그대로 기울었다. 보수적 유권자들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던 오바마 건강보험을 비롯해 낙태 등 진보적 의제를 뒤집고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새울 기회가 되었다.
트럼프, 우편투표와 코로나 대응 실패가 패인으로 작용
이번 트럼프의 패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우편투표의 확대로 인한 반(反)트럼프 층의 대거 투표참여, 둘째는 코로나 위기에 대한 대응실패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투표장에 대거 나왔지만, 민주당 및 트럼프 반대성향의 지지자들은 우편투표로 이에 대응했다. 미국의 선거법이 투표를 지나치게 어렵게 만들어, 유권자의 참여를 오히려 낮춘다는 문제점은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흑인 및 라티노 들이 이런 까다로운 선거 장벽의 피해자로 인식되었다. 우편투표는 그간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만큼 우편투표가 쉬운 적은 없었다. 코로나 역병으로 인한 상황은 (그간 투표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집에서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둘째, 코로나 역병에 대한 트럼프의 미온적 대처와 그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미국은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사망자도 가장 많은 나라이다. 지난 2월말 미국 시애틀에서 첫 환자가 발생할 당시, 중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정지된 상황이었다. 연방정부로서는 차분히 대응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 위험성을 국민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역병을 금세 사라질 감기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위기 상황에서 매일 브리핑을 했지만, 그 정보는 일관성을 갖지 못했고 임기응변에 급급했다.
그간 트럼프의 무분별한 적 만들기와 함부로 내뱉은 언사들은 진보진영의 혐오와 분노를 키웠다. 트럼프가 가짜언론으로 매도했던 주류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 만들기’에 대놓고 힘을 실었다.
선거 날 미국 곳곳에서 경합이 속출했다. 트럼프가 크게 질 거라던 여론조사 업체의 예측은 이번에도 크게 틀렸다. 미국 전국의 득표율에서도 바이든과 트럼프의 격차는 2016년 힐러리와 트럼프의 격차와 큰 차이가 없었다. 미국 중부의 5-6개 주가 선거 결과를 결정한 것도 2016년과 닮았다. 이번 2020년 선거는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의 3개 주의 결과가 승자를 결정하였다. 바이든의 압도적 승리는 없었다. 다만, 지난 선거에서 공화당 주로 분류되었던 애리조나와 조지아 주에서 바이든이 이긴 것 정도가 특이점이다. 트럼프 개인의 자질이나 전염병 관리 실패에 대한 실정에도 트럼프 지지층은 여전히 굳건한 것이 확인됐다.
바이든은 승자가 되었으나, 향후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국정 운영을 주도하려는 계획’은 이미 수정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과 하원의회는 실현되지 않았다. 상원의원 선거에선 공화당이 선전하였다. 내년 1월에 조지아 주에서 상원의원 두 석을 놓고 보궐 선거를 벌여야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 지위를 무난히 지킬 것으로 보인다.
하원 선거에선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남긴 했으나, 오히려 의석을 잃었다. 민주당 낙선 의원의 일부는 당이 지나치게 진보진영에 휘둘렸고, 이러한 점이 중산층 유권자를 자극해 자신들의 낙선으로 이어졌다고 분노한다. 내년 1월 새로운 의회가 시작되면, 현 하원의장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 트럼프의 낙선에도 공화당 역시 트럼프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공화당은 내년 조지아의 상원 선거 두 건을 비롯하여, 2022년 중간 선거 역시 준비해야 한다. 여전히 트럼프 지지층은 공화당의 다수이고, 대선이 없는 해에는 동원하기 쉬운 표들이다.
코로나와 대외정책 등 바이든도 시험대 올라
바이든의 미국은 어떠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은 바이든이 대북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일단 바이든 당선인의 공식적인 입장은 대화를 위해선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식의 선 합의 없는 정상 간의 만남은 없다. 현재의 미국은 외부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미국의 코로나 환자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중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부족할 수 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백신이 개발되곤 있으나, 미국이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내년 겨울이 되어야 할 거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바이든이 맞을 위기는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우선 당 내의 분열부터 추슬러야 할 것이다. 민주당 내 진보 세력은 바이든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끌어내릴 사람을 지지한 것이다. 선거는 끝났고 목적은 이뤄졌으니, 바이든 지지에 대한 진보적 의제를 내용으로 한 계산서를 내밀 것이다. 바이든이 당선 전 버니 샌더스와 맺은 협약은 기후변화와 의료보험 등 광범위하다. 당내 중도와 당내 진보의 갈등을 어떻게 아울러 정책으로 만들지에 바이든의 리더십이 기대될 것이다. 이를 지나면 공화당 상원이 기다린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한반도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 자신이 공언한 대로 유럽 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려 할 것이다. 북한 핵 문제에 앞서 이란과의 핵 협정을 복원할 것이다. 이 협정이 북한과 협상의 기본 틀이 될 것이다. 단언은 위험하나, 현재까지 조각된 바이든 외교팀은 오바마 2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무부의 올드 보이들이 대거 귀환했다.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국가안보보좌관에 제이크 설리번이 내정됐다. 두 사람 모두 바이든의 오랜 측근이자, 오바마 정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의 설계를 담당했다. 특히 블링컨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했고, 공개석상에서 김정은을 폭군으로 지칭한 바 있다. 설리반 내정자는 오바마 정부에서의 경험은 물론, 힐러리 캠프에서 사실 상 외교정책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와 달리 큰 상황에서 도발이 계속 이어질 경우 이들이 어떻게 대응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바이든의 중국 정책에 대해선 많은 예상이 오간다. 이번 선거에선 불가피하게 중국 때리기에 강하게 매진하긴 했으나, 바이든의 그간의 행적을 볼 때 중국에 대한 일방적 적대정책을 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정권을 막론하고 중국 견제는 전제되어 있다. 바이든이 전통적인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복원 시도가 예상된다.
이는 우리에 두 가지 큰 고민을 안긴다. 첫째, 미국은 삼각동맹의 주축으로 일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 일본과 우리의 이해는 일치되기 어려우며, 이런 상황에 두 국가 간의 군사적 협력은 대단히 어렵다. 특히, 북한과의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을 얻어야 하는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둘째, 제2의 사드사태에 대한 우려다.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선, 미국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적극 고려하며, 중국과의 직접적인 마찰은 피하려 할 수 있다. 사드 미사일 배치가 오바마 정권 막바지에 이뤄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 보복과 우리 사회 내부에 야기된 갈등과 비용을 생각하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