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동맹' 사이 최선의 선택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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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4-17 13:25:57
  • 분류 : 자유마당


북한의 ‘빨치산식’ 생존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

전현준(국민대 겸임교수)

북한의 역사 인식

  북한의 역사 인식은 해방이전인 20세기 초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반도는 아직도 ‘식민 상태’이기 때문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외세를 물리쳐야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일제’를 대신한 ‘미제’가 들어와 ‘조선민족’을 수탈하고 있다고 북한은 생각한다. ‘미제타도’를 하지 않고는 조선민족의 진정한 해방은 없다고 보는 북한은 해방투쟁의 주체는 북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북한 지역은 완전한 해방을 이루었으나 남한은 일제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일제대신에 ‘미제’가 들어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조선 해방’을 달성하여 진정한 의미의 ‘한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민족끼리’ 단합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는 기실 북한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의미이다. 북한은 남한을 ‘미제 식민지’로 보기 때문에 남한은 안중에도 없다. 북한은 소위 ‘민족순혈주의’를 주장한다. 이것은 철저한 배외사상으로 흐르고 외세와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구한말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유사하다.
  그 이면에는 김일성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은 친일파들과는 달리 항일무장투쟁을 하였고 그것이 민족해방을 이룬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김일성은 구국의 영웅이고 대대손손 칭송을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이것이 곧 ‘주체사상’이다.

현 단계 한반도 정세

  20세기 말 미?소 양극체제가 붕괴되고 미국 단극체제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미국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이 2002년부터 ‘화평굴기’를 전략노선으로 채택하면서 세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10년부터 ‘중국포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1년에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공식선언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2013년부터 ‘일대일로’ 정책을 주창하여 미국과 맞섰다. 미국은 중국의 서진전략에 대항하기 위해 2018년 7월부터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하였고 2019년 6월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중국때리기’에 나섰다.
  미?중 간 패권경쟁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지만 특히 한반도에서의 긴장은 상상이상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닿는 곳으로서 역사적으로 양대 세력이 각축전을 벌였던 지역이기 때문에 불안감은 어느 다른 국가들보다 크다. 한반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몽골(원나라)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을 침략하였고 1592년에는 일본과 명나라가 한반도에서 전쟁하였으며 한반도는 초토화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한반도에서 치러졌고 한반도는 일제 식민지배하에 들어갔다. 1950년에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하였고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전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고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한반도는 늘 피해를 보아왔다.
  35년간의 일제식민지가 종식되었지만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세계사적인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남북대화가 있었고 2018년 6월에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북 정상회담까지 개최되었지만 한반도에서의 불안정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불안정한 이유는 북한의 강경한 대남 및 대미 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의 사회주의식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을 미국으로 상정하고 ‘미제타도’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해 1950년 6월 전쟁을 일으켰다. 명분은 ‘미제’에 의해 ‘강점’된 남한을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관철되지 못하였고 ‘국토완정’에 실패한 북한은 언젠가는 ‘미제를 타도’하고 자기중심의 통일국가를 이루기 위해 강력한 정치체제, 막강한 군사력 보유, 일사불란한 사회체제 등을 추구해 왔다. 이러한 국가목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3대 모두가 추구한 것이다. 2012년에 본격 등장한 김정은은 전쟁경험이 없고 부유한 집안출신이지만 김일성의 낡은 ‘주체혁명사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김정은은 혁명의 지속을 위해 단기간 내에 ‘핵보유 국가’를 만들었고 이를 무기로 미국과의 담판에 나섰다. 이것은 신적 존재였던 할아버지 김일성도, 선군사상으로 무장한 아버지 김정일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은의 ‘파격적인’ 제안에 의해 시작된 미북 간 정상외교는 2018년 6월, 2019년 2월 등 2회에 걸쳐 개최되었으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진전은 보지 못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2019년 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명학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굳이 새로운 길이라면 미국에 대한 무력도발이 아닌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이 2019년 말경 ‘레드라인’을 넘는 무력도발을 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과는 달리 대미 무력도발을 자제함으로써 한반도에는 ‘침묵속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11월에 있을 대선 준비에 여념이 없고 최근에는 ‘코로나19’ 해결에 매진하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2019년에 13차례의 각종 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였고 2020년에는 2회의 재래식 무기 발사를 하였으나 미국은 ‘무시(neglect)’로 일관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 전망
  이런 가운데 2020년 초입에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의 창궐이다. 세계적인 관심이 코로나19로 집중되는 바람에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는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형국이다. 군사전쟁이 아닌 ‘질병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도 전통적인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작년의 13차례에 걸친 ‘저강도’ 무력도발에 이어 금년에도 북한은 3월 2일과 9일 두 차례의 무력시위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 이를 무시하였다.
  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행한다면 전 세계적인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매우 저강도의 군사훈련을 통해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에게는 오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한과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2일에 실시된 북한의 무력시위에 대해 우리 청와대가 유감표명을 하자 소위 ‘친남 인사’로 알려진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직접 청와대관료(문재인 대통령이 아닌)를 비난하고 나섰다. 일본에 대해서도 북한은 일관되게 “아베의 간악한 흉심‘, ’교활한 일본‘ 등이라는 표현으로 비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 북한은 여전히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 매체들은 중국의 방역 성과를 연일 보도하면서 시진핑의 2월 12일 베이징 코로나 방역실태 현장방문에 대해 칭찬을 했고 ‘우한’이라는 지명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할 지 모른다. 비록 작년 말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선포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한편이 될 수 밖에 없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단기간 내에 종식되지 않으면 한반도 상황은 최소한 2020년 상반기까지는 ‘그럭저럭 흘러가기(muddling through)’가 지속될 것 같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이 상황이 지속되어 UN 및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국가이익에 막대한 손해가 초래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경제상황은 악화될 것이고 그 만큼 민생경제는 피폐해 질 것이며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도 떨어질 것이다. 북한은 일정 시점에는 ‘정면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북 정책 방향

  한국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어 진퇴양난이다. 특히 진보정권은 보수정권과는 달리 북한과 미국 모두를 버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친미적’이면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친북적’이면 미국이 강력 반발한다. 우리는 현재 강력한 근본주의자들인 미국과 북한을 상대로 중재자, 균형자,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모두 우리의 그러한 역할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당장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 만일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는 한미동맹 때문에 자연히 미국편에 설 수 밖에 없다. 제2의 한국전쟁은 제2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될 것이고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비극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그 방법은 양 국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민족이냐 동맹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모두를 껴안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향해 국제정치는 힘이 지배하기 때문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베트남은 몽골, 프랑스, 미국, 중국을 이겼고 이스라엘은 아랍을 이겼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것이다(wag the dog)”. 북한에게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는 단기적으로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멸망 상황까지 갈 수 있음을 설득한다. 특히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임을 주지시킨다. 만일 남북한 교류협력이 활발하여 평양에 남한 및 미국 사업가들이 상주한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은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로 북한을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도 있지만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만들어라”라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고 ‘전쟁연습’도 해야 하지만 ‘평화연습’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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