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18세, 대한민국 유권자 되다 / 장성훈

  • No : 275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2-04 14:39:12
  • 분류 : 자유마당

2019년 12월 27일, 대한민국 선거
사(選擧史)에는 또 한 줄의 상징
적인 역사가 기록됐다. ‘만 18세 선거
권이 포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의결’. 18세 선거권 문제는 우
리 사회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찬반
논쟁이 이어져 온 정치적 의제였다.
세계적 추세인 참정권 확대를 가로
막고 있다는 주장과 학교가 정치판으
로 변질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충
돌하면서 긴 시간 대립과 진통을 겪
어야 했다. 그러던 18세 선거권이 법
제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도 마침
내 일단락됐다.
선거권 연령이 낮아짐에 따라 약 50
만 명의 유권자가 정치과정 속에 새
롭게 등장하게 된다. 이 가운데 대략
14만 명 정도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당장 다가오는 4월 15일 제21대 국회
의원선거부터 고3 학생들도 선거에
참여한다. 긴 시간 공방을 벌였던 핵
심 논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
루어졌으니 더 이상의 논쟁은 소모
적이다.
오히려 18세 새내기 유권자들이 성
숙한 유권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교
양을 쌓아야 할 것인지, 어떠한 환경
을 만들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지
에 대해 고민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
이 더 생산적인 일임은 자명하다. 이
제는 논란 대신 발전적 대안을 고민
해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 18세 유권자들이 다른 선
진민주주의 국가에서보다 선거권에
대한 무게감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
끼지는 않을까? 18세 선거권을 고민
하면서 찾아든 첫 번째 의문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교과서를 통해 ‘우
리나라는 1948년 첫 근대적 선거에서
부터 보통·평등선거를 실시하였다’라
고 반복적으로 배워왔다. 이 때문에
선거권을 너무나 당연하고 소비적인
권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우려는 아
니다.
선거권의 본질,
실질적 주권 행사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데서 출발해야
선거권이라는 것이 그냥 아무에게
나 덥석 안겨주는 선물 같은 것이라
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거
권은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
다.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법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
진다는 의미를 넘어 국가의 중대사
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을 사회적으
로 인정받는 것이다. 또한 국민주권
의 위임이라는 대의(代議) 방식의 문
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귀족사회에서 대
중사회로, 계급사회에서 보통사회로
전환되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20세기를 거치면서는 남녀 간 정치적
평등과 인종차별 철폐의 상징이기도
했다. 현실의 정치영역에서는 권력
규모를 결정짓는 심판권이자 새로운
정치세력과 가치의 제도권 진입을 판
가름 짓는 운명판과도 같다.
실제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역사
속에는 많은 땀과 희생이 스며들어
있다. 오늘날은 보통선거권이 일반화
돼 있지만, 그것이 제도화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프랑스는 1789
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155년이 지난
1944년에서야 완전한 보통선거권을
실현했고, 미국은 1865년 노예제를
폐지한 이후 100년이 지난 1966년에
서야 모든 주에서 흑인 투표권을 인
정했다.
영국에서도 1838년 노동자 계급의
선거권을 요구하던 차티스트운동이
일어난 후 90년이 지난 1928년에야 온
전한 보통선거권이 제도화됐다. 그
세월은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한 인고
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해방과 함께
근대적 민주주의 체제가 이식되면서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의
원선거에서부터 보통선거권을 갖게
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일천
한 상황에서 만 21세 이상의 국민이
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선거권을 가
지는 보통선거권의 획득은 매우 급진
적인 변화였다. 이후 선거권 연령은
1960년 20세, 2005년 19세, 2020년 18
세로 점차 낮아졌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선거권은 한
때 권력에 의해 통제되기도 했고, 매
수와 매매의 대상이기도 했다. 민주
화를 거쳐 선거권이 현재와 같이 실
질적 주권의 의미가 있게 되기까지
는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
러한 역사를 생각하면 18세 선거권의
본질은 단지 법적 권한의 문제가 아
니라 실질적 주권 행사의 가치와 의
미를 찾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
다. 이것은 비단 18세 유권자만의 문
제가 아니라 모든 유권자가 함께 고
민해야 할 문제이다.
선거참여는 매우 좋은
시민교육의 기회
올바른 참정권의 실현은 선거권의
추상적 가치, 투표의 중요성만을 주
입한다고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근본적으로는 지속적인 시민교육
과 체험학습을 통해 유권자의 교양
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시스
템이 필요하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며, 모든 인간은 평생
을 어떻게 갈등을 최소화하여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해
가야 한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사회
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치
가 무엇인지, 선거에서 어떻게 국민
의 생각이 집약되는지 학습하고 체험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각은 어디쯤 있는지’ 정립해 가
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선거
참여는 매우 좋은 시민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청소년들이 정치
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을 부정
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문화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이 살아가는 세
상에 대한 이상과 꿈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히려 그것이
없어서 문제이다. 따라서 선거교육의
출발은 세상에 대한 내 생각 갖기에
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세상에서 어
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것이 어떻게 해
결되었으면 좋겠는지 관심을 두고 생
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시민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며, 그 핵심
중 하나가 선거교육이다.
시민성 강화를 위한 교육과
환경 조성이 현실적 대안
18세 선거권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걱정은 과연 우리 고등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
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있을까 하
는 우려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생각에 좌우
되지는 않을까? 친구들과 분위기에
휩싸여 무비판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
을까? 선거절차와 방법이나 제대로
알고는 있는 걸까? 많은 부분에서 우
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권리를 갖게 된 새내기
유권자들의 역량을 믿어야 한다. 역
사적으로도 정치적 고비마다 고등학
생들은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에 있었
다. 어느 영역에서든 세계의 젊은이
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과거와 달리 뉴미디어의 발달로 다
양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
는 세대가 됐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자신의 정치적 의
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도 가졌
다. 다만 정치적 경험이 부족할 따름
이다.
유권자로서 부족한 역량이 있으면
시민의 권리를 제약할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채워주면 된다. 선거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
다. 선거제도를 학습하고, 정책과 공
약을 평가할 기회를 확대해 유권자의
역량을 강화하면 될 일이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자연스럽게 사
회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하고, 자유
로운 대화와 토론의 문화가 자리 잡
도록 이끌어야 한다.
권리 통제가 아니라 시민성 강화를
위한 교육과 환경 조성이 현실적 대
안이다. 시작도 하기 전 편견을 가지
고 경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부
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유
념해야 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에서는 19세부터 20대 초반의
국회의원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
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시민교육과
정치활동을 통해 정치에 가까워졌고,
다양한 학습과 체험을 통해 민주시민
으로서의 역량을 쌓아온 결과이다.
우리도 유럽의 이러한 사례들을 진지
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나
이가 아니라 교육과 학습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외면
할 수는 없다. 당장 학교의 정치화 또
는 정치의 교육현장 침탈에 대한 걱
정이 많다.
극단적 편향성을 가진 교사들이 객
관적 선거교육보다 특정 이념이나 정
책을 강요하여 중립성을 해할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명확한 운용기준의 부재로 인해 선
거 관련 불법행위가 난무할 가능성
도 있다. 특히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
에 불신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고
장기적인 대비책이 절실해 보인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의 시작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선거교육에 있
어 강제성 금지의 원칙이다. 독일 시
민교육의 지침으로 알려진 보이텔스
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첫 번째 원칙은 강압적인 교화 교육
또는 주입식 교육의 금지이다.
이는 시민교육에 있어 학생들이 스
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
는 데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함을 의미한다.
선거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선거교
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현장의 선생
님들이 가슴 속에 되뇌어야 할 중요
한 원칙이다.
학교에서의 선거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시급한
일이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그리고 학생들
이 선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면학 분
위기를 해치고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현실적 가이드라인이 명확하
게 제시돼야 한다. 구체적 사례를 통
해 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
다. 당장은 다가온 21대 국회의원선
거를 대비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비 유권자를 포함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선거교육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작업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이미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은 시
작됐다. 혹자는 18세 새내기 유권자
가 이번 선거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을 주목하기도 한
다. 그러나 선거교육의 핵심은 당장
의 정치권 이익배분이 아니라 민주주
의의 발전을 위해 새내기 유권자들이
얼마나 건전하고 합리적인 주권자들
로 성장해 갈 것인가이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
거는 이를 위한 시민교육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가오는 국회의
원선거와 50만 명의 새내기 유권자를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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