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불안 뒤섞인 청년창업의 현실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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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6-30 13:35:51
  • 분류 : 자유마당

기대와 불안 뒤섞인 청년창업의 현실과 미래

혁신 창업 강조하지만 실패엔 가혹한 한국 현실

두 번 기회는 없는 창업 현실···‘재기창업적극 지원해야

 

장휘경(일요서울신문 기자)

 

남들은 제가 꿈을 좇아간다고 하지만, 현실은 돈에 쫓기며 살고 있어요. 일단 직장 다니며 모은 돈으로 1년만 버텨보려고요.”

경기도 수원시에 인쇄물 디자인 회사를 창업한 김모 씨(29)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김 씨는 4개월 차 청년창업가다. 2년간 다닌 서울 직장을 관두고 동업자 친구와 함께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창업했다. 근근이 일거리가 들어오지만, 직장 다닐 때에 비하면 턱없이 벌이가 부족하기만 하다. 김 씨가 처음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직장을 다니며 월급은 매년 늘었지만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적게만 느껴졌다. 매일 밤 야근 강행군에도 몸이 힘든 것보다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허탈감이 더욱 컸다고 했다. 지난 2월 입사 3년째, 김 씨는 과감히 사표를 냈다. 주변 만류도 뿌리쳤다. 청년실업자가 120만 명에 달하는 시대를 살며 취업이 능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대기업 정규직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기 자본금 중 임대료로 절반인 2000만 원을 썼다. 서울의 값비싼 임대료를 피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변두리에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한 달 월세만 100만 원이다. 월세와 생활비는 한 달 수익으로 빠듯했다.

청년사업가의 발목을 잡는 건 또 돈이다. 일단 일거리를 늘리려면 홍보가 필수인데, 광고나 마케팅도 돈이 든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대세라지만,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몇백만 원까지 매달 지출하기엔 부담이 크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구조. 초기 자본금이 넉넉지 않은 청년창업가가 선택할 수 있는 홍보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방법뿐이었다. 매일같이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잠재고객을 찾아 나선다. 김 씨는 전문적으로 광고나 마케팅을 알진 못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건 결국 실력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신모 씨(28)는 올 초 서울시 구로구 7평 오피스텔에 사업자등록을 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영상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만이다. 몇 편을 만들든 월 200만 원이던 월급 대신 건당 200만 원 제작비를 직접 챙긴다. 돈은 전보다 많이 벌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커졌다. 책임감과 불안감이다. 개인사업자가 되면서 시간도 많아졌다. 문제는 이 시간이 주는 무게였다. “스스로 능력을 판단해 일을 조율해야 하는데 촉박하게 잡으면 몸이 힘들고, 지나치게 여유롭게 잡으면 수입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 씨는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으려 채찍질하듯 일했다. 그러다 보니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렸다. “누가 출퇴근 시간을 정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계속 일하게 된다사업 초기라 클라이언트(고객)를 확보하려면 더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다.

할 일도 늘었다. 앉아서 영상만 만들 수도 없었다. 회사를 나오니 홍보와 영업, 고객 미팅도 직접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울며겨자먹기식 일감도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일이 수정이다. 젊은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부탁을 쉽게 하는 경향이 많았다.

계약 내용과 관계없는 도와달라식의 수정 요청이었다. 예전 만든 영상을 다시 고쳐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당연히 무보수로 말이다. 신 씨는 그래픽 영상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업계 처우는 아직 못 따라가는 실정이라며 아쉬워했다. 현실적으론 거부하긴 힘들다. 클라이언트와 관계 유지가 중요해서다. 특히 사업 초기이자 나이가 어린 창업자에게 클라이언트는 몇 없는 소중한 존재다.

기존 시장에 뛰어들려면 열정만으로는 안됩니다. 시스템 앞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해요.”

오모 씨(27)는 올해 3월까지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1년간 운영했다. 대학 휴학생 신분이라 사업자금이 없어 친구와 함께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1500만 원을 빌려 창업했다. 처음엔 동대문에 기반을 둔 공장 의류를 도매로 사 소셜커머스에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돈을 모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한때 월 최고 1000만 원도 벌었다. 몇 개월간 승승장구하며 꿈이었던 의류 브랜드도 론칭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였다. 소셜커머스에서 오프라인 편집숍으로 유통구조를 넓히며 발목이 잡혔다. 내가 만든 옷이 아닌 공장 의류는 판매금의 10%대 수수료만 소셜커머스 플랫폼에 내면 팔 수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윤은 꽤 남았다. 하지만 내 브랜드는 디자인, 생산, 유통까지 죄다 책임져야 했다. 공장 선정부터 주문 제작까지 공장 의류에 비해 제작단가가 높았다. 게다가 국내 브랜드가 많이 입점한 유명 온라인 편집숍 판매 수수료는 30%대였다. 10만 원짜리 옷을 팔면 3만 원 넘게 편집숍이 가져갔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감수했지만 곧바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 동업자 친구와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오 씨는 당장 수익이 적어도 꿋꿋이 브랜드 사업을 개척하려 했다. 동업자는 반대였다. 당장 매출이 급했다. 결국 둘은 창업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친구 사이도 금이 갔다. 오 씨는 준비와 운영을 각각 1년씩 해보며 많은 걸 느꼈다시장 조사와 같은 이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창업가 3인은 창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창업은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아닌 또 다른 현실의 입구라고 말이다. 취업난 해결책으로 청년창업이 약방의 감초마냥 등장하지만 실제 창업에 몸을 던진 청년들은 고민이 깊었다. 정부도, 유명대학도, 대기업도 혁신을 내세워 창업을 권하고 있다. 언론도 연일 청년창업 성공기를 조명한다. ‘억대 매출청년 장사꾼들 이야기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년 CEO가 배출된다. 그러나 어둠도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전용 창업자금 약정해지 현황에 따르면 대출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해 청년창업대출 계약이 해지된 건수는 2014107건에서 2015221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미상환 금액만 2015124억 원에 달한다. 20161년 새 30세 미만 신설법인이 21.5%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청년 창업자 수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공식자료는 없다.

 

외국선 실패 경험 없이 성공한 기업 드물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하는 스타트업 중 80%는 실패한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리콘밸리에서는 실패한 창업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라고 묻는다. ‘페일콘(Faillcon)’이라는 행사가 있다.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모여 창업 실패담과 교훈을 공유하는 행사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실패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 이런 행사들은 혁신의 심장이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실패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는 평균 2.8번 만에 성공한다고 한다. 최소 2번은 실패하고 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이다. ‘실패는 성공의 과정이라는 게 그곳의 인식이다. 미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의 성공과정이나 거대 IT 기업의 창업 과정을 살펴봐도 잘 드러난다.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란 오랜 실리콘밸리의 격언이 그저 수사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재기창업어려운 한국, 한 번 실패하면 신불자

창업자들의 실패가 많다는 현실은 한국과 미국이 다르진 않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창업자 수는 129만 명이지만 같은 해 폐업자 수 또한 90만 명이다. 창업자 수 못지않게 폐업에 이르게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미국과 달리 실패한 창업자에게 참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다. 한 번 창업에 실패한 뒤 또 다른 창업을 시도하는 일을 재기창업이라고 한다. 이 재기창업이 한국에서는 정말 쉽지 않다. 통계를 봐도 그렇다. 2013년 부도기업인재기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기업 중 불과 19%만이 재기 창업에 나섰다. 그만큼 재기 창업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왜 재기 창업이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가 있다. 한 기업이 폐업할 경우 평균 88천만 원의 부채와 4400만 원의 세금 체납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바로 그것이다(재기중소기업개발원). 상당수는 이러한 부채와 세금추징, 연대보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은 물론 투자조차 받기 어렵게 된다. 재기의 가능성이 영영 막히게 되는 것이다.

 

연대보증 제도 폐지

여전히 힘든 재기 창업자금 확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이러한 가혹한 현실에서 기인한다. 왜 한국에서는 외국에 비해 혁신적 창업가가 상대적으로 적은지, 왜 청년 창업이 적은지, 왜 은퇴자는 창업이 치킨집 등 요식업에 집중되느냐는 비판은 하기 쉽다. 배경을 봐야 한다. 한 번의 창업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실이 문제이다. 안정 지향적인, ‘보수적창업이 많이 이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과 업계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던 대표적인 개혁 대상이 바로 연대보증제도였다. 한국 벤처 1세대를 대표하는 기업인인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2019년 작고) 메디슨 대표이사 시절 자신이 연대보증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경험을 언급하며 기업이 사업자금을 마련할 때 대표이사 등이 의무적으로 연대보증케 하는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연대보증 폐지는 재기창업을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의제이다. 2017년 대선 때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결국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2018년 연대보증제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금융권에 채무기록이 남는 등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혁신 창업은 국가과제,

창업펀드 등 제도적 뒷받침 필요

이와 함께 지적되는 것이 재기창업에 드는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이다. 2017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재기창업자, 예비 재기창업자 1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보면 재기창업의 문제로 절반을 넘는 58.9%자금조달 곤란, 23.2%신용불량으로 인한 금융거래 불가능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재기창업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렵고 이 문제가 재기창업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재기 창업 지원 펀드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미 2018년부터 3300억 원 정도의 재기지원 펀드를 조성했다. 자치단체 가운데서는 최근 경기도가 금융권 등과 공동으로 150억 원 규모의 재기지원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기로 했다. 경기도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것은 시중은행들과 자금운용사 등 다양한 기관이 협력해 재기창업 펀드를 조성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광역자치단체로 확산된다면 정부 주도의 재기창업 자금 지원과 함께 지역 차원에서도 재기 창업 지원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많은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생산력의 극적인 발전과 그에 따른 고용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들고 있다. 수명을 다해가는 대기업 주도의 성장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려면 혁신적 기업을 통한 지

식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창업 활성화는 국가적 과제라는 지적인 것이다. 청년들의 창업이 인생의 실패가 되지 않고 성공의 과정이 되도록,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혁신적 가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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