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멈춘 자리에 탄생한 서글픈 평화의 공간 DMZ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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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6-01 10:28:28
  • 분류 : 자유마당

총성 멈춘 자리에 탄생한 서글픈 평화의 공간

DMZ의 현재와 미래

 

한경숙(투데이경제 기자)

 

 

우리 산하 가로지르는 248Km의 가슴 아픈

1953727일 오전 10,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및 중국 대표가 판문점에 모였다. 2년 여에 걸쳐 진행된 휴전회담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였다. 악수도 인사도 없이 침묵 속에서 양측이 준비한 문서에 서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12. 3년 넘게 한반도를 뒤덮었던 포화와 총성이 드디어 멈추는 순간이었다. 총성은 멈췄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전쟁. 6·25전쟁은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 외에도 원치 않았던 숙제를 남겼다.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다가갈 수 없는 땅, DMZ였다.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Demilitarized Zone’의 약자인 DMZ비무장지대라는 뜻으로 국제조약이나 협약에 의해 무장이 금지된 지역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의 DMZ1953727일에 조인된 정전협정 제11(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근거해 ‘1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설정된 공간으로 정의된다. 휴전 상태인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DMZ는 군사분계선에서 남쪽과 북쪽으로 각 2Km, 4Km 폭의 공간이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DMZ의 길이는 서해의 임진강 하구에서부터 동해의 고성군 명호리에 이르기까지 약 248Km(155마일)이다. 서울시 면적의 1.5배이며 한반도 전체 면적의 1/250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또한 한강하구 중립지역이라 하여 임진강 하구에서 강화도 끝섬까지 남북 양쪽의 이용이 허용되는 지역이 있다. 육지 상의 DMZ가 남북한의 민간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전협정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몇 개의 선()들이 생겨났다.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 MDL)과 남방한계선(Southern Limit Line : SLL),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 NLL),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Civilian Control Line : CCL)이다. 남한 쪽에서 보면 군사분계선에서 2Km 남쪽으로 남방한계선이, 군사분계선 10Km 이내 남쪽으로 민간인 통제선이 그어져 있다(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5). 그리고 민간인 통제선에 인접한 지역들을 접경지역이라고 부른다. DMZ의 기준이 되는 군사분계선은 애초의 38˚선에서 약간 벗어나 비스듬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정전협정 당시 정확한 38˚선이 아니라 남북한의 군사 대치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DMZ 생태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우리가 DMZ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되어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것이다. 각종 신문기사나 TV 방송을 통해 우리는 DMZ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철새들이며, 맑고 투명한 물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봐왔다. 벌판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노루며 고라니,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산양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 위에서도 새 생명을 자라게 만드는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것이 진실일까?

사실 DMZ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된 곳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DMZ6·25전쟁 당시 격렬했던 전투가 이어지던 곳이다. 전선은 전쟁기간의 2/3DMZ 일대에서 소비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집과 농경지가 파괴되었듯이 동물들의 보금자리들도 파괴되었다. 높은 산을 먼저 빼앗으려는 고지전이 이어지면서 숲의 식물들도 불에 타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자 이제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철책선이 놓여 산줄기를 따라 움직이는 동물들의 이동로가 차단됐다. 동물들의 몸에 붙어 이동하던 식물의 종자들도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했다. DMZ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천혜의 자연이 보존된 곳이 아니라 혹독한 전쟁 간섭과 정전 이후 군사작전으로 인한 심각한 인간 간섭에 지쳐있는 땅이라고 할 수 있다. DMZ의 생태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면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DMZ의 자연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대부분 민간인 통제구역의 것들이다. ‘DMZ’민간인 통제구역의 범위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혼동했던 데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DMZ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위치상 인접해있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하지만 철원 평야나 대암산 용늪, 두타연 등 민간인 통제구역 내의 주요 생태지역들을 ‘DMZ의 자연으로 소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DMZ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엄격한 군사지역이면서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한반도의 동서 생태축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6·25전쟁 이후 지속적인 군사작전과 활동으로 영향을 받았고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야생동식물의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지역은 매우 독특한 생태계 복원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DMZ 일원의 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6·25전쟁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던 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전제되어야 한다.

DMZ 일원에는 군사상 목적, 또는 자연적인 이유로 주기적인 산불이 일어난다. 이러한 산불은 산림을 훼손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초본식물들의 성장을 촉진시켜 더 많은 초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를 만들어 준다. 또한 산불이 났던 지역은 식물 생태의 천이(遷移 : 일정한 지역의 식물 군락이나 군락을 구성하고 있는 종들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천하여 가는 현상)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써 DMZ 일원의 생물들을 다양하게 만든다. 임업연구원 또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DMZ 일원을 대상으로 산림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DMZ 일원은 잘 보존된 생태계라기보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채 군사활동이 이루어지는 중에 전반적으로 열악하나 특정 구역에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게 유지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생태계라 정의하고 있다.

 

다양한 생물종 모인 독특한 생태계

DMZ 일원의 특징 중 하나는 습지생태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는 동부지역의 계곡습지와 호수습지에서 서부지역 저지대의 습지까지 다양한 형태의 습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과거 많은 이들이 거주하며 논농사를 짓던 곳이다. 이런 곳들이 6·25전쟁 이후 60여년 간 방치되면서 습지생태계로 발달한 것이다. DMZ 일원의 습지생태계는 과거 농경지나 저지대였던 곳이 어떻게 습지로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DMZ 일원은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를 포함한 동북아 철새들의 보금자리이자 이동 경로다. 철원평야 지역, 판문점 지역, 임진강과 한강이 서해안과 만나는 한강 하구는 이 철새들의 최종 기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원평야에서는 매년 3000여 마리의 독수리가 월동하고 있기도 하다. DMZ 일원의 식물 분포 또한 독특하다. 이곳에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분류되는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닻꽃, 대청부채, 매화마름, 산작약, 왕제비꽃 등과 고유의 식물종인 금강초롱꽃, 노랑무늬붓꽃, 등대시호, 솜다리 등이 자라고 있지만 귀화식물들 또한 함께 번성하고 있다. 이들 귀화식물은 주로 서양민들레, 돼지풀, 단풍잎 돼지풀, 달맞이꽃, 개망초 등이다. 특히 북미가 원산지인 단풍잎돼지풀과 돼지풀은 번식력이 왕성해 토착 식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외래종은 6·25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품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DMZ 일원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자연 생태계를 지니고 있으며 전쟁 이후 자연 생태계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는 연구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생태·평화지역을 향해

현재 DMZ는 국내보다는 국외에 더 잘 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6·25전쟁에 대한 아련한 기억,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에 대한 호기심,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땅이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외국인들은 DMZ를 찾아온다. DMZ 일원의 생태적 가치에 먼저 관심을 보였던 것도 국내보다는 국외였다. 미국 스미소니언연구소, UNDP(국제개발기구) 등이 DMZ 일원의 생태계 조사에 직접적인 지원과 협력을 한 바 있고, IUCN(국제자연보존연맹)

UNEP(유엔환경계획)은 남북한 양측에 DMZ 국제환경공원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또한 유네스코 접경생물권 보전지역 지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독특한 자연 생태계로 거듭난 곳, 다양한 동식물들을 멸종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 이 작지만 소중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DMZ를 세계적인 생태·평화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치지역인 DMZ, 그 긴장감이 감도는 땅 바로 옆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자연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가 분단과 단절일지, 평화와 공존일지는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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