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노인 빈곤대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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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5-04 13:56:47
  • 분류 : 자유마당

‘100세 시대노인 빈곤대책 서둘러야

노인복지, 국가중심 체제로 전환해야

 

이정식(CBS 사장)

 

 

20073월 전남 장흥에서 70대 노부부가 안타까운 사연을 안은 채 숨졌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74세의 아내를 4년 동안 병수발 해오던 75세의 노인이 아내를 질식사시킨 뒤 자신도 목매 숨졌다는 보도였다. 차분하게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할 나이에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만 했을까. 그러나 그들의 절박했던 사정은 이 땅에 사는 많은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사연이기도 하다. 이미 각종 설문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노인은 미안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였을 이 글은 또 우리 노인들의 어려운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읽힐 만하다. 아내를 숨지게 하고 자신은 자살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까지도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게 오늘날 우리 노인들의 위상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자체가 주위에 미안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그 노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풍조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측면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것이다. 설령 노인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를 제도화한다고 해도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노인들이 안락한 말년을 보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책적 지원은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사회를 향해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진전하고 있는 중이다. 의료 지원을 비롯한 적극적인 노인 복지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풍, 치매 등을 앓는 노인들의 문제는 이제 단순한 노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섰다. 수많은 가정이 앓는 노인들로 인해 허구한 날을 한숨 속에 지새고 있으며 급기야는 가족 간에 불화를 겪기도 한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으나 건강수명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거기에 국가적 관심마저 부족해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노인 문제, 특히 중병을 앓는 노인을 수발하는 문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과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노인들의 제1의 희망사항은 편안하게 빨리 죽고 싶다로 나타나고 있다. 농담이나 가식이 아니라 진심 어린 답변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노인들의 삶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노인들이 빨리 죽고 싶을정도가 돼서는 분명 바람직한 사회는 못된다. 정책적 배려와 함께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과 사회교육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노인 수발제대로 하려면

나라에 노인들이 많아지면 당연히 일손이 달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또 노인 복지 수요의 증가로 인해 젊은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이런 고민을 이제 우리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 20155월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50%에 육박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가 나왔다. 우리나라 노년층의 삶이 곤궁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지만 그 정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구조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서 씁쓸함이 더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였고, 노인 자살률도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높은 수준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말뿐인 경로사상으로는 노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돈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노인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도덕성에 기초한 당위론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지속 가능성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미래는 노인이고, 결국 노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34개 회원국의 소득 불평등에 관한 OECD의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었다.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무려 49.6%로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가처분소득이 국민 전체 중위 소득의 50% 이하에 속하는 비율을 말한다. OECD 평균(12.6%)4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가장 낮은 네덜란드(2%)

는 물론 호주(33.5%), 멕시코(31.2%), 이스라엘(24.1%) 24위 국가들과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OECD 회원국 중 사회 시스템적으로 노인을 가장 잘 돌보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경제적인 토대가 흔들리면 삶의 질()은 악화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 당 평균 자살률은 29.1명으로 OECD 평균(12.1)의 약 2.5배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인 남성의 경우 그 비율이 606964.6, 7079110.4, 80세 이상 168.9명이라는 결과이다. 자살률은 행복도와 관련이 있다. ()경제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물질적인 토대가 심하게 흔들리면 통계적으로 불안, 우울, 행복감 저하 같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찾아온다. 노인 범죄도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빈곤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왔다.

노인 빈곤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쾌도난마(快刀亂麻)식 해결이 쉽지 않다.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 청년 실업, 불충분한 사회보장 시스템 등 노인을 가난하게 만드는 문제 중 그 어느 것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여유는 더욱 없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의 증가율이 연 4.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미 2000년 고령화사회(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0% 이상)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중산층의 25.4%, 고소득층도 2.4%가 노인이 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니 저소득층은 오죽하겠는가. 국민 대다수가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인학대·부정수급

우후죽순노인요양원 문제

최근 노인요양원이 급증하면서 수용된 노인에 대한 학대에서부터 요양보험 부정수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20081244개에 불과했던 노인요양원 수는 요양 비용의 80%를 지원해 주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후 큰 폭의 증가를 거듭하고 있다.

고령화와 핵가족화 등의 추세에 따라 노인 요양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터여서 노인요양원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인적·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사설 노인요양원이 난립하게 된 것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빈발하는 노인학대다. 당국에 의해 공식 확인된 노인요양원 내 노인학대 사건은 2010127건에서 2014246건으로 4년 사이 배증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의 입소 노인에 대한 가혹 행위, 성폭행은 물론 치매 노인이 실종 후 사망하거나 입소 노인이 다른 입소자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화재를 비롯한 안전사고의 위험도 빈번히 지적되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기관의 관리는 느슨하기만 하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노인요양원 557곳을 대상으로 노인요양보험 수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64.1%357곳의 허위·부당 청구가 적발됐을 정도로 요양보험 지원을 둘러싼 비리도 만연해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노인요양원의 공급과잉으로 볼 수 있다. 노인요양원은 일정 요건을 갖춰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별 어려움 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진입 장벽이 없다 보니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설 노인요양원이 수요보다 훨씬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른 과당 경쟁은 요양보호사 등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서비스의 질() 저하, 일부 요양원의 보험 부정 수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설 노인요양원의 시설기준 강화와 국공립 요양원의 비중 확대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핵가족화 등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가정에서 노인을 돌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치매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일은 국가와 사회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노인요양 시설이 입소자들의 노후를 보살피기는커녕 각종 범죄의 온상 역할을 하고 국가 재정까지 축내고 있는 실태를 더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부양, 사회가 분담해야

아무 준비없이 고령화 사회를 맞기는 했으나 이제부터라도 곧 다가올 고령사회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우선 젊은 세대나 노인 세대 자신이 갖고 있는 노인관부터 올바로 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의 노동이나 가족부양에만 의존하는 전통적 노년관에서 벗어났기는 하지만 변화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 중심의 사회경제 체제에서도 벗어나 있는 것이 오늘의 노년관인데 앞으로는 노인들도 사회와 경제에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 인간수명을 늘린다 해도 어차피 누구나 늙게 되고 노인이 된다. 젊은 세대도 자신의 가까운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노인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인식 아래 무엇보다 정부가 이젠 노인복지를 국가중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형식적인 경로연금제도를 사회수당형태로 발전시키거나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재가복지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사회 전체가 노인부양을 분담하는 시스템을 확립토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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