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6주년에 되돌아본 <민주사회의 변화와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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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5-04 13:54:16
  • 분류 : 자유마당

광복 76주년에 되돌아본 <민주사회의 변화와 발전>

민주사회의 토대, 시민사회()

 

 

호광석(사단법인 정부정책연구원 원장)

 

 

자유의 확장, 자유방임을 지향한 서구의 시민사회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편화되는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선포된 이후 자유권이 보장되고 19세기에 이르러 참정권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에 시민사회는 더욱 공고화되어 일부의 특권층만이 아닌 사회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시민사회로 변화해 왔다. 특히 20세기에 사회권 등장으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사회구성원에게 부여하게 됨에 따라 시민사회는 보편적 시민을 위한 시민사회로 거듭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 시민사회는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그리고 권위주의 사회로부터 민주화로의 이행을 위한 중심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회적 쟁점과 과제들에 대한 사회운영의 중심이 비정부기구(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를 주축으로 하는 제3섹터부문인 시민사회가 주도하게 될 것이며, 민주정치의 세계화에 따른 전지구적 시민사회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된 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도 시민사회가 민주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까?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보편화된 시민사회가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형성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게 되는지, 또한 시민사회 주요한 단체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시민사회의 형성

현대에 와서 시민사회를 국가와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자발적 결사체로 보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견해는 개인의 고립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을 막는 민주화의 큰 학교라는 입장이다. 에드워즈(M. Edwards)는 시민사회를 인간사회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목표인 동시에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이며, 목표와 수단을 서로 연결하는 틀과 관련한 거대한 사상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시민사회가 한국에서는 언제 형성되기 시작했을까? 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멀리는 1890년대 동학혁명 시기에 태동했다고 보기도 하고, 1910~20년대 3·1운동과 초기 노동운동 시기에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1945년 해방정국에서 많은 사회단체가 형성된 시기에 초점을 맞춘 시각도 있고, 19604·19혁명에서 국가에 대한 저항과 정권의 종식이 이루어졌기에 그 기저에 이미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하면, 19876월항쟁 이후에야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민의 개념을 시에 존재하면서 주로 상업 활동을 영위하는 특정 직업 집단으로 이해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면, 상인집단과 상인 계층이 존재하던 조선시대부터 시민사회가 형성된 것으로 주장하게 된다. 또한 동학혁명을 거쳐 조선말에 여러 단체들의 출현에 주목하거나 3·1운동 직후 시기 또는 1945년 해방정국에서 많은 단체들이 등장하게 되는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런데 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느냐,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느냐 등이 중요한 판단근거라고 하면, 단지 단체들의 결성만을 근거로 시민사회의 형성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국 시민사회의 개념 틀을 시민권 확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법적 차원), 국가와 시장의 견제와 감시 및 공공서비스의 생산과 제공(기능적 차원), 그리고 시민적 규범을 갖는 자기 정당성의 확보(문화적 차원) 등 다차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시민사회는 1960년대에 초기 형태가 만들어졌고, 1987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시민, 시민사회는 자율성을 토대로 성장하는데, 그 자율성을 상실하면 정권의 동원 대상이 되거나 국가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민으로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서는 시민 없는 국민국가의 시대가 너무 길었고, 군부정권이 종말을 고한 1987년까지 한국인은 시민성에 관한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던 중 1987년 민주화 이행은 가히 시민사회의 폭발을 가져왔는데, 산업화 기간 국가 권력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시민사회가 드디어 얼굴을 드러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19세기 말 이후의 봉건신분제도의 폐지, 식민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쳤던 독립협회, YMCA, 신민회, 흥사단 등 초기 NGO를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확장된 견해이다. 또한 정부수립 이후 1960년대 초까지 반공이데올로기가 우선시되어 시민사회의 활동영역이 상당히 제약되었던 시기에 대한부인회, 대한청년회, 서북청년단, 건국청년운동협의회, 대한반공청년회 등 관변단체들이 시민사회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19604·19혁명을 기점으로 시민사회의 기초가 다져져 나가게 되지만, 시민사회의 영역 확장과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는 두 차례의 군부의 정치개입과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유신체제 하에서의 반독재투쟁과 1970~80년대 민권운동, 민주화운동은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확장해 갔다. 그 후 국가와 밀착되었던 중산층까지 결합하여 국가권력의 횡포에 대항한 19876월항쟁의 성공 이후 민주화는 가속화되었고, 시민사회는 점점 더 분명하게 형성되어 갔다.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서 시민들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경제적 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형성, 시민의식의 발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실 1960년대부터 20여 년 간 이루어진 경제성장에 시민사회가 기여하지는 못했다. 서구사회와는 다르게 한국의 시민사회는 경제성장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

서구에서는 시민사회가 먼저 존재한 후에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국가 이상으로 사회 혹은 시민사회에 대한 의식이 우선되지만, 우리의 경우는 국가가 모든 것에 선행해서 존재한 후에 시민사회가 발전하는 역순의 과정을 거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적 시민사회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특성이 있다. 또한 우리의 시민사회는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체제 등을 거쳐 온 역사적 경험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강해졌고 한국에서의 시민사회는 곧 정치적 민주화운동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은 시민사회의 형성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형성과 연대는 다시 분리되거나 파편화되지만, 시민사회 활성화의 지표인 자유화와 민주화는 사회 각 영역과 부문으로 확산된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의 모습도 정치적 영역에서 비정치적 영역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80년대까지는 주로 정치적 민주화 영역에 시민운동과 그것의 공간으로 시민사회를 연관시켰다면, 90년대 이후 비정치적이고 사적인 영역으

로 관심이 확대되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시장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면서 시민사회에 경제논리가 강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다양한 단체들의 결성과 활동이 전개되는데 단체의 회원으로 또는 자원봉사자로 시민들이 참여해 시민사회단체의 원동력이 되면서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함께 강력한 시민사회의 건설이 진행되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온건·합리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신사회운동을 전개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등과 구분된다. 1987년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을 보여 주는 증거는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고, 이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급증은 물론이고 각종 공익단체들의 활동도 현저해졌는데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여성단체들이 각각 소비자보호운동, 환경보호운동,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운동 등을 주도하여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YMCA, YWCA, 흥사단, 구세군, 적십자사,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이 있었고, 인도주의실천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치과의사회, 환경과 공해연구회, 보건과 사회연구회 등 전문 직업인 단체들이 있었다. 그런데 1987년 이후에는 공해추방운동연합, 사회정의연구실천모임, 자연과 환경을 위한 공동회의,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등 새로운 시민사회단체들이 등장한다.

시민사회를 통한 정치적 참여위주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참여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적 참여로 방향이 전환된다. 5공화국을 이끈 신군부정권이 국정운영원리를 자율화에 의한 안정화에 둠에 따라 저항적 시민사회의 활성화가 진행되다가 1987년 헌법 개정, 1988년 지방자치법 개정 등 정치·행정의 변화가 시민사회단체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의 일환으로 19891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창립되었고,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등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1989년 경실련의 창립과 역할은 한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특성을 잘 말해준다. 경실련은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와 정책제안을 통해 시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실 노태우 정부 말기와 김영삼 정부 초기에 금융실명제의 실시, 토지공개념의 도입, 고위공무원 재산등록, 한국은행의 독립, 국가안전기획부의 개혁, 지방자치제의 실시, 정치개혁 등 수많은 정책들이 대부분 경실련의 주장이었다.

한편 1989년에는 두 개의 특별법이 제정되어 국민운동단체를 지원하게 된다. 자유총연맹육성법바르게살기운동육성법이 그것인데, 1981년에 제정된 새마을운동육성법과 함께 3대 국민운동단체들이 활동하게 된다. 정부가 개별 단체를 특별법으로 지원하고 육성함으로써 3개 단체는 시민사회와는 달리 자율성이 제약된 가운데 관변단체의 경향을 띠었으나, 정부가 바뀜에 따라 변모를 시도하려 노력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시민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이어지면서 진보시대가 개막되어 강한 시민사회를 지향해 가게 된 것이다. 1993년에 제정 시행된 사회단체의 신고에 관한 법률1997년에 폐지되어 이후에는 사회단체가 등록이나 신고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 1993년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창립되었고, 같은 해 5월에는 경실련·한국노총·흥사단 등 39개 단체로 구성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협의회가 출범했다. 19949월 시민단체협의회가 발족되고, 같은 해 참여 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연대회의’(참여연대)가 탄생하였다. 이후 1994년에 출범한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는 2003년 한국자원봉사협의회로 개칭, 2006년부터는 법정기관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은 2000년 전국의 971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총선시민연대의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공천 반대자 64명과 반인권 전력 및 납세 비리, 저질 언행 관련자 22명 등 모두 86명의 낙선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피케팅이나 가두방송, 현수막 게시 등을 통해 특정후보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운동을 전개한 결과, 86명의 낙선 대상자 가운데 59(68.6%)이 떨어졌고, 22명의 집중 낙선 대상자 중의 낙선자는 68.2%15명에 달했다.

2000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시행된 후 2016년까지 시민사회 관련 법 제정과 정책 도입으로 사회복지와 서비스 단체,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관련 조직들이 설립되었다. 2002년에는 민중 시민운동진영의 연대를 추구하면서 환경운동연합·민언련·전국교수노조·전국농민회총연맹·여성단체연합 등 30여개 단체들이 한국사회포럼을 창설하였다. 2002~2004년 기간에 뉴라이트단체들이 출범했고, 2002년에는 중도 온건 보수를 지향하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가 창립되었으며, 이어 2006년에는 뉴라이트 계열의 바른정책포럼이 뉴라이트전국연합 산하로 출범했다. 20079월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17대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2007 국민승리연합을 결성한 바 있다.

한편 2007년 사회적기업법과 2012년 협동조합법의 시행으로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사회적 경제 관련 조직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2009~13년 기간에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하는 지역NGO센터가 전국 7개 지역에 설립되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경험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국제원조활동과 사회적 경제 영역의 단체가 늘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은 박근혜 정부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사회가 중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시민사회는 정치적 성향으로부터 경제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의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변화해 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의 단체들이 크게 성장하였다. 시기적으로는 1987년 이후 많은 시민단체들이 등장하여 시민사회의 층을 두텁게 하고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한 시민사회를 진보성향의 단체들이 주도해 왔으나, 2002년 이후 보수성향의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이 연이어 출범하면서 정치적 대립구도를 형성해 왔다는 특징도 발견된다. 이러한 보수단체들이 이념적으로 진보단체들과 대립각을 강하게 세울수록 시민사회가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보수진영이 운동방식에 있어서 과격한 집회와 시위를 마다하지 않는 단체들과 이를 경계하는 단체들로 구분된다. 육성법에 근거한 자유총연맹 등 국민운동단체들은 이념상 보수적이지만, 후자에 포함되는 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놓고도 그 차이를 보였다.

민주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함에 있어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시민단체들로 구성되는 시민사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서구의 경험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율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부에 의탁하거나 제한받는 종속적 관계에 있다면 그런 시민단체들이 민주사회의 성장 발전에 능동적 기여를 할 가능성은 낮다. 다행히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화의 흐름과 함께 성숙하게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가 향후에는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민주사회의 튼튼한 토대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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