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한류 이끌기 위한 세계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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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4-02 14:01:53
  • 분류 : 자유마당

한국문학, 한류 이끌기 위한 세계화 전략

지구촌 독자들에게 다가서도록 하는 전문가 역할이 중요

 

오순숙(백제문학회 회장)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변방(邊方)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들 흔히 얘기하면서도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좇는 이율배반적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문단에서 차마 말하지 않거나 애써 부정하면서도 내심 갈망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를 통해 세계문학의 중심부로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들어 번역(飜譯) 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우리의 문학작품이 해외에 활발히 소개되고 있지만 주류(主流)로 나아가는 데는 여전한 한계를 안고 있다. 노벨문학상이 영광의 극점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아닌, 세계 문명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2021년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2009년 초 해외 번역사업을 벌이는 기관의 실적을 합계 조사한 결과 역시 고은, 황석영, 이문열 등이 앞줄에 놓였다. 특히 시()는 국내에서처럼 해외에서도 찬밥 신세이기 십상임에도 고은의 시집 만인보’, ‘화엄경’, ‘뭐냐등이 15개 언어로 51종이나 번역 소개됐다. 영어(14), 독일어(7), 스페인어(7), 스웨덴어(4) 등으로 문화권을 가리지 않았다. 소설가 이문열 역시 무려 9개 언어로 출간된 장편소설 시인을 비롯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등 작품 50종이 번역됐다.

번역원 박혜주 교육자료실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문학은 2008년까지 28개 언어로 번역됐고 가장 많이 번역된 언어는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순으로 나타났다면서 “30년 남짓한 번역 역사에서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제교류 나서는 문학, 번역의 질도 높여

이처럼 문학의 국제 교류가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렸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00여 개 나라에서 6000여 개의 출판사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행사이자 매해 전세계 인류의 지적, 문학적 발전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국이 주빈국(主賓國)이 됐고, 90여명의 국내 소설가·시인이 참가해 문학 행사를 열었다. 한국문학의 커다란 줄기가 도도히 펼쳐졌고,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이 세계문학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거의 없다시피 미미했던 한국문학의 존재감을 한 방에 떨쳐낸 성과를 거뒀다. 도서전 현장에서만 2000건이 넘는 출판 계약이 이뤄졌을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다. 2006년부터 서울 젊은 작가들모임이 시작돼 연례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아시아 문학포럼등을 통해 세계문학과 한국문학, 세계문학과 아시아문학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번역원은 당시 국내 문학 작품 번역의 질을 확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KLTI) 공식 번역가 5명을 지정했다. 기존의 번역료 1800만 원을 3000만 원으로 높였고, 공식 번역가들로 하여금 한국 문학의 국제 교류 활동에 대한 가교(架橋) 역할까지 맡도록 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작가들은

하지만 행복한 고민도 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작품이 한국문학의 좁은 개념 규정이다. 하지만 이 범주를 고민하게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바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이 가장 눈에 띈다. 이들이 풀어내는 작품 세계의 주조는 국가와 민족,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적 체험과 기억이다. 범세계적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대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홍콩 출신의 한인 2세 제니스 리(49)2009년 초 내놓은 소설 등단작품 피아노 티처가 미국과 홍콩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선풍을 일으키며 23개 국가에 판권이 팔렸다. 재미교포 1.5세 문나미(45) 역시 자신의 첫 소설 마일즈 프롬 노웨어를 영문으로 펴내며 전세계 여류 작가들의 문학상인 오렌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밖에 고려인 3세인 러시아 국적의 아나톨리 김 역시 톨스토이 문학상 등을 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등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한국문학 세계화 전략? 추리소설 써라

최근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韓流) 열풍이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K, 아이돌의 인기는 여전하다. 이런 대중문화의 선전과 비교하면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번역자 양성 등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조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순수 문학 작가들이 추리 소설 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성곤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14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변해서 세계 독자들이 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한다면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순수문학 작가들이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한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전 원장은 문학사상’ 20149월호에 기고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와 제언에서 아무리 좋은 작품도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했다고 해서 결코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부커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A.S. 바이어트의 소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그 예로 들었다.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했지만 수준 높은 문학 세계를 보여준 국내 순수문학의 대표적 사례로는 이청준의 이어도를 꼽았다.

그러면서 일단 추리 기법 소설로 대형 출판사의 문을 연 다음,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그 뒤를 따라 본격적인 순수문학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분쟁, 정치이념 투쟁 등도 여전히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문학적 소재가 될 수 있다면서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한풀이나 이념 투쟁 방식이 아닌, 참신한 시각과 새로운 기법을 차용한 복합적인 양식으로 쓰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학의 세계화 위해선 치밀한 홍보전략이 중요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은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지만, 한림원의 고향이자 노벨상 수상작가 8명을 배출한 노벨문학상의 종주국 스웨덴에 비하자면 갈 길이 멀다. 스웨덴 소설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의 종수가 500편에서 800편으로 50%이상 늘었다. ‘노르딕 누아르장르로 통칭되는 스웨덴의 범죄소설이 인기를 견인했다. ‘말괄량이 삐삐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밀레니엄시리즈, ‘렛미인등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많다. 스웨덴어가 사용 인구 1000만 명인 소수언어임을 감안한다면 문학 저력에서만큼은 우리가 본받을 점이 많다. 스웨덴 문학의 강세는 영미권으로의 활발한 진출과 이를 가능케 하는 번역가 육성, 편집자들의 고심이 조화된 결과다.

스웨덴 최대 독립출판사 나투어 앤 쿨투어(Natur&Kultur)의 소설 부문 편집자로서 한강작가의 세 작품(‘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을 모두 스웨덴에 번역 소개한 니나 아이뎀은 20199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훌륭한 문학 에이전트들이 전략적으로 활동해왔고, 동시에 워크숍과 정부지원, 펀딩 등도 활발히 이뤄진 덕에 세계시장에 많이 진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뎀 편집자는 특히 외국문학이 번역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홍보전략 또한 치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에서 한 작가의 소설은 맨부커상 수상 작품인 채식주의자20171월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가 이에 앞선 201610월에 번역됐다. 니나는 “’채식주의자가 훌륭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몽환적이고, 기묘하고, 더러는 소화하기 버거운 작품인 데 반해 소년이 온다는 한국적 맥락에서 폭력, 트라우마, 집단경험을 다루고 있어 한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가라는 맥락을 먼저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전략을 통해 한 작가는 역사를 관찰자 시점에서 치밀하게 정리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나 프리모 레비 등의 작가와 비견돼 소개됐다.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는 스웨덴에서 각각 7000부와 25000부가 팔렸다. 이전에 스웨덴에 소개된 적 없던 작가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아이뎀 편집자는 한국문학이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에 더욱 활발히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는 영문판을 스웨덴어로 중역하는 과정을 거쳐 출간됐지만, ‘의 경우 스웨덴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로 이뤄진 부부 번역가에 의해 번역됐다.

영미권에서의 성공 없이도 세계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는 네트워크가 새롭게 마련된 것이다. “훌륭한 작품은 세계에 너무 많아요. 번역 출간 역시 결국에는 국가가 아닌 작품성이 기준입니다. 한국의 훌륭한 문학을 세계에 퍼뜨릴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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