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반도 정전체제와 평화체제 논의

  • No : 1737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7-06-30 10:51:15
  • 분류 : 자유마당

정전체제 종결 - 평화체제 구축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 핵개발
북한 주장 평화협정은 ‘핵보유국’ 인정 요구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3일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 6·25전쟁 정전협정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협정문 서명에 사용한 테이블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테이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전체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방지와 위기관리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로서 그 기능을 발휘해왔다. 정전체제 자체도 한반도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해온 또 다른 평화체제로서 의미가 있다. 정전체제는 현실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설치와 정전관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MAC: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이하 군정위) 및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이하 중감위)에 의해 관리돼 왔다.
정전협정 아래에서 군정위와 중감위는 정전협정의 이행을 효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으며, 그 결과 상당기간 한반도의 평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군정위는 휴전협정 위반 사실이 있을 때마다 위원회를 소집해 남북한 간의 전면적인 무력 대결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정세 안정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은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상태가 정착될 때까지 현재의 정전협정 준수를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부터 정전체제의 무력화 조치를 강행했다.
북한은 1993년 4월 3일 체코 대표단을 철수시켰으며, 그 이듬해인 1994년 4월 28일에는 북한측 군정위를 철수시켰고, 그 해 5월 24일 이른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고 12월 15일 군정위 중국군 대표를, 그리고 1995년 2월 28일에는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로 철수시켰다. 나아가 북한측은 1995년 3월 2일 군정위를 대신해 미국-북한 간 장성급회담을 개최할 것을 공식 제의하는 등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더욱 노골적으로 감행했다.
국방부와 유엔사는 정전체제의 틀 안에서 한반도 위기관리를 담당할 수 있는 책임있는 대화창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1998년 2월 11일 유엔사-북한간 장성급회담을 북측에 제의했다. 이 제안에 북측이 호응해 옴에 따라 1998년 3월 3일부터 5월 29일까지 7회에 걸쳐 비서장급 및 참모장교 접촉이 이뤄졌다. 그리고 1998년 6월 8일 유엔사-북한군 간 장성급회담 절차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그 뒤 1998년 6월 23일 제1차 유엔사-북한군 간 장성급회담이 개최된 이후, 2002년 9월까지 모두 14차례의 회담이 열렸다. 회담에서는 주로 정전협정 위반행위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상호간의 군사적 관심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제12차와 제14차 회담에서는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와 관련해 ‘비무장지대 일부 구역 개방에 대한 합의서’를 서명하고 발효시킴으로써 동해 및 서해지구 철도 및 도로를 이용해 남북교류협력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장성급 회담은 제14차 회담 이후 중단됐는데, 북한은 장성급 회담을 대신해서 남·북·미 3자 군사공동기구의 구성을 제안했다. 북측은 2003년 3월부터 정례적인 군정위 참모장교 접촉을 거부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엔사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상태가 구축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해왔으며, 정전체제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정전체제의 틀 안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유엔사와 협력한 바 있다.
지난 2015년 8월 4일에는 경기 파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육군 1사단 소속 부사관 2명이 수색작전 도중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은 바가 있는데, 이때 유엔사 군정위가 2차례나 장성급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측은 호응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반도에는 불안한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전쟁 재발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수많은 협상과 합의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상호간 불신만 더 심화된 상황이다. 더구나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목표로 돌진하고 있는 북한의 행태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결국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됐다.

평화체제 논의 계속 됐지만 성과 없이 끝나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는 남북뿐 아니라 동북아, 세계 평화와 직결돼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부터 남북 간, 미·북 간, 그리고 다자간 등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미국-소련 간의 냉전 종식, 1991년 남북 간 기본합의서 체결에 따른 남북간 교류협력의 증가, 그리고 한국 정부의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등 한반도 주변 역학관계의 변화가 평화체제 논의를 촉발시켰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6년 4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4자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한국, 북한, 중국은 1997년 8월부터 1999년 8월까지 2년 간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6차례에 걸쳐 회담을 열었다. 4자회담에서 정전협정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남북한과 서명국인 미국 및 중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평화체제분과위(Peace Regime Establishment Subcommittee)’와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긴장완화분과위(Tension Reduction Subcommittee)’를 운영했다. 그러나 1999년 8월 이후 4자회담은 북한의 일방적 참여 거부로 중단됐다.
4자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긴장완화와 관련된 북한과 다른 참가국(한국, 미국, 중국)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삼기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이런 맥락에서 평화협정도 미·북 간에 체결돼야 함을 주장했다.
중단된 4자회담에서의 평화체제 논의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재개됐다. 더구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군의 주둔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견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평화체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와 북한측의 전향적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강경 보수정권인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북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고 평화체제 논의는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이후 북한은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일본과 러시아가 포함된 6자회담을 2003년 8월에 처음 열었다. 마침내 6개 당사국은 2015년 9월에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냈다. 이 성명에서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6자회담도 2008년 12월 검증 의정서에 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중단됐고, 지금까지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평화체제에 대한 남북한과 미·중의 입장
관련 당사국들의 상이한 입장과 이해관계로 인해 평화체제와 관련된 돌파구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과 먼저 교류협력과 이에 근거한 신뢰구축을 통해 정치·경제 공동체를 구성하고 동시에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함으로써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2003년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북한은 미국에 대해 불가침협정과 외교관계 수립을 요구하는 등 양자관계에 중점을 두어 왔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에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으며, 2015년 10월 당 창건 70주년 직전인 10월 7일에도 미국에 대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의했다.
한편, 중국은 지금 비핵화와 한반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문제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선 평화협정’과 미국과 한국이 주장하는 ‘선 비핵화’ 입장을 ‘병행 추진’으로 절충, 포장해 중재자로서의 입장을 살리고 향후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고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 따른 비핵화가 진전됨에 따라 직접 당사국들이 별도 포럼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주한미군 문제가 이 과정에서 연계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없이는 평화체제 불가능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로 진입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남북한은 ▲교류·협력을 강화해 정치·경제공동체를 건설하며,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남북을 중심으로 한 4강과의 교차승인을 실현하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로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차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문제와 남북간 군비통제를 통한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열릴 때, 이를 바탕으로 남북간 지속가능한 교류·협력과 북한의 대미, 대일 관계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다.
정전체제의 근간인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특히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군 철수와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은 한반도 냉전 종식에 평화협정이 반드시 필요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991년 남북이 체결한 기본합의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과연 평화협정 체결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현 상태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은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고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한반도 평화협정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도 평화협정은 반드시 한반도 관련 국가가 함께 서명해야 하며, 북한 핵 폐기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 평화협정 체결의 대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해도 핵보유를 포기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 비핵화 없이 한반도 평화체제는 구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 정전체제 종결과 평화체제 구축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을 용인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정전체제 종결과 평화체제 이행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행동을 통해 실현가능한데, 2016년 5월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당 국무위원장은 ‘항구적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한지는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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