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의 통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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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8-02 15:52:21
  • 분류 : 자유마당

지금 북한의 통계는

 

전병길(재단법인 <통일과나눔> 사무국장)

 

 

세 가지 거짓말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재임하던 시절에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과학적 수치라고 알려진 통계가 사실은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격언을 남겼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신문, TV,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없이 많은 통계 자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디어에서 제공한 통계 자료에 근거하여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제일 나은 선택을 내리곤 한다. 통계를 바탕으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은 생산 및 판매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제공한 통계 자료가 애초부터 왜곡된 정보였다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 아마도 현재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던 결정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국가의 경우 왜곡된 통계는 사회 발전과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통계

북한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경제 발전 통계집과 같은 체계적인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군수산업 우선 정책으로 산업간 불균형이 초래되기 시작했고 대외적으로 국가 통계 발표하는데 부담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1965년 이후 국가 통계 자료 발표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과거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경제가 안정적일때는 비교적 객관적인 통계를 공표했으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경제 지표를 조작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선 기업소 등에 목표생산량을 할당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상벌을 가한다. 따라서 목표를 할당받은 단위들은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실적을 부풀렸다.

1990년 서독에 편입된 구동독의 경우, 정부의 통계담당 부서의 세부 사항까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Politburo)이 지시를 내렸다. 당시 정치적으로 곤란하거나 부정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통계는 삭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동독 정부는 1971~1988년까지 주택 3백만 호를 지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195만 호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경제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성과 조작이 이뤄졌다. 결국 지표상으로 양호해 보인 동독 경제의 실체는 실제 더 낙후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경쟁력이 낮아 상당수의 기업이 파산하였다.

통계 자료들은 통제 가능한 실험 대상이 아니라 단순 관찰되는 자료이기 때문에 자료 수집과 해석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북한은 통계자료를 자세히 공개하고 있지 않고 공개된 자료들도 신뢰도가 낮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특성상 당의 지시로 물가와 생산량이 사전에 결정되고 조작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왜곡된 통계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반 주민들이다.

 

북한의 비공식통계

북한에서는 주민 소득처럼 계층 간 불평등을 나타내는 통계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다. 지도층이나 당 간부들에 대한 다양한 특혜에 관한 자료도 대외비이다. 자본주의사회에 소득 수준은 곧 구매력을 의미한다. 기업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소비자를 세분화하기도 하며 가격 책정과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펴기도 한다. 통계 지식은 마케팅 활동을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한다. 통계분석을 통해 내린 마케팅 의사결정은 경험이나 직관에 의한 것보다 신뢰도가 높으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기초적인 시장과 고객의 데이터 조차 없는 마케팅의 황무지와 같은 곳이다.

또한 북한은 평균 수명, 곡물 생산, 자연재해 피해, 자살자 수 등 국가 위상을 낮춘다고 판단되는 일종의 불편한 자료는 왜곡되거나 비공개를 유지한다. 사회/환경과 관련된 자료는 기업이 중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북한의 공식적인 통계는 시장과 일반 주민의 생활에 대한 통계가 제외되어 있다. 하지만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이 확산되면서 물가를 포함한 다양한 통계와 연관된 정보들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시장물가는 지역별 생필품 가격, 쌀가격 그리고 환율이다. 북한의 시장 물가 통계는 국내외 대북 전문언론 및 NGO 단체들이 북한 주민, 방문자, 탈북자 등을 통해서 비밀리에 수집하여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 자료들은 종종 신뢰성의 문제가 제기 가 되고 있지만 일부 자료는 시계열 구축이 가능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신뢰성 확보를 위한 모색. 하지만...

북한은 2020년 행정처벌법을 개정하며 통계질서위반행위(61)’를 추가하였다. 해당 조문은 통계 질서를 어긴 자에게는 경고, 엄중 경고 처분, 벌금 처벌 또는 3개월 이하의 무보수로동처벌을 준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3개월 이상의 무보수로동처벌 또는 강직, 해임, 철직처벌은 준다고 명시했다.

북한이 통계와 관련해 처벌 조항을 만든 것은 2020년 행정처벌법 개정이 처음이라 한다. 불량 통계 자료의 생성을 줄이고 생산된 자료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통계 분석의 정확도를 높여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북한 당국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부실했던 통계 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고 동시에 외부 유출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북한은 2016914개의 유엔 산하 기구와 함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4대 우선 전략을 담은 유엔전략계획 2017-2021’을 채택했다. 4대 우선 전략에는 데이터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리가 포함되었다. 북한 당국도 통계 데이터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있고 나름 발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나타나는 모습은 이러한 모습과 좀 거리가 있다. 20217월 북한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자발적으로 검토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북한의 주요 경제통계가 담겨 있다. 201519년의 국민소득과 201420년의 곡물 생산량이 그 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19년 동안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연평균 5.1%, 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성장률의 2배쯤 되는 높은 성장률이다. 지속적인 대북제재 속에 경제적 어려움 겪고 있는 북한의 성장률이라기 보기에는 선뜻 믿기지가 않는다. 이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자발적국별리뷰(VNR)이기에 자세히 검증할 방법이 없다. 과거의 북한과 사회주의 국가들은 통계에 대한 선례가 있기에 그 문제점을 가늠해 볼 뿐이다.

 

북한에 필요한 통계교육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된 통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통계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미 북한은 지난 2012년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통계교육 프로그램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미국 통계학회 산하의 국경없는 통계(Statistics without Borders)’와 미국의 국제전략화해연구소(International Strategy and Reconciliation Foundation),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주도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강사로는 미국, 독일, 호주, 스위스 등 유럽의 학계와 민간연구소와 정부의 통계 전문가 15명이 참여했고 교육 대상은 북한 내 각 대학에서 선발된 학부 고학년 학생과 대학원생들이었다. 통계 관련 조사연구기법과 분석방법 등 8과목에 대한 심도 있는 강의를 제공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북한 측의 사정으로 1년 만에 중지되었다.

그리고 8년 뒤인 20205월 한국의 통일부는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ESCAP)이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통계교육 프로그램에 6년간 47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금은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국제사회의 통계 원칙과 통계 이용방법 등을 교육하는데 사용 예정이다. 하지만 코로나 등 아직 여러 이유들로 인해 이 프로그램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북한은 언젠가 통계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아니 북한 당국이 소극적이라도 지금 성장하고 있는 시장과 그 시장 속의 소비자들이 먼저 그것을 체계화 할 수도 있다. 비록 지금은 그 받아들임이 더딜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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