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데탕트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 No : 2170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8-08-07 10:23:09
  • 분류 : 자유마당

북핵 해결의 중재자 역할 수행으로 한반도 영향력 유지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상호 윈–윈 프로젝트


‘신동방정책’으로 동북아지역과 관계발전 추진
최근 동북아 북방 중심축의 두 기둥인 중국과 러시아에서 집권연장 또는 장기집권의 유지가 있었다. 2기 집권을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4기 집권을 시작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장기 국가전략으로 일대일로정책과 신동방정책을 추진해 해빙 무드에 있는 동북아에 자극과 도전을 던지고 있다. 중국에선 지난 3월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1인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시진핑 주석은 통치의 기본축인 삼위일체 지도체계(당·정·군)를 장악해 집권 2기를 황제처럼 시작했다. 또한 헌법개정으로 3~4기 또는 종신집권 가능성도 확보했다.


러시아에선 푸틴이 5월 7일 대통령에 취임하며 4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푸틴은 앞서 14년간의 통치에 이어 2024년까지 6년 더 러시아 대통령직에 올라 ‘현대판 짜르(Tsar:차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제무대에서 역할 강화를 모색하는 푸틴은 전략적 차원에서 동북아 지역과의 교류 및 협력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과의 관계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극동개발을 위해‘신동방정책’의 기조 아래 동북아 국가들과 협력하고 지역통합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러시아판 ‘아시아 피봇’이다.


현재 러시아의 경제상황과 국제관계는 좋지 않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그에 따른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러시아와 서방간 외교적 갈등의 수준을 넘어 군비경쟁으로까지 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금융 및 기업을 포함해 개인들까지 미국과 EU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기침체와 심각한 자본유출, 경제제재와 맞물린 대외투자(DFI)의 격감, 루블화의 가치하락은 러시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와 가스의 수출이 2014년 유가 폭락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시장지향적 방향전환은 당연한 것이다. 러시아는 전체 천연가스 수출에서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4년 7%에서 2025년 30% 이상, 2035년에는 최대 44%까지 높이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사할린), 북극(야말반도)의 가스전 개발에 대외투자의 유입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중국의 실크로드 자금을 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진핑 주석의 메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는 에너지 확보를 위한 것이며, 미국 셰일혁명에 대항한 지정학적 반작용에서 비롯됐다. 사실 미국이 ‘아시아 피봇’을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셰일혁명 덕택이다.


셰일혁명으로 천연가스와 원유가 쏟아져 나오자 미국은 중동원유에 대한 의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어 중동에 집중됐던 대외정책 자산을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견제에 쓸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은 ‘일대일로’ 전략과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2011년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셰일혁명으로 인한 유가 폭락과 미국과 EU의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가 ‘신동방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얻기 위해 협력에 나선 것이다. 에너지를 팔아야 하는 러시아와 에너지를 사야 하는 중국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최근 북극 개발과 맞물려 북극의 북동항로를 확보해 ‘빙상 실크로드’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해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해외 무역 화물의 90%를 해상 루트에 의존하고 있는데, 북동항로가 열리면 수송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 계획을 추진하려면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러시아 북극개발 위해 빙상 실크로드 추진
러시아 정부도 북극 지역의 개발을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빙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중국 정부와 적절한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해관계에 따라 러시아는 중국과는 에너지·방산 분야 협력은 지속하면서 연합훈련 등 안보분야 공조는 대미관계 진전 등에 따라 전략적 수위조절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 러시아의 남북한과의 국가전략을 들여다보자. 러시아는 남북한과는 공히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정치적 대화를 통해 남북간 긴장을 해소하고 상호 화해·협력하는 데 조력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변함없이 지지하며, 6자회담 형식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원칙에 입각해 전면적 비핵화를 위한 공조에 참여할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북핵문제 다자간 채널과
정치적 해결방안 필요 인식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서 전통적으로 당사자 대화와 해결 원칙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한체제의 보장 등을 포함하는 북핵문제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다자간 채널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반대다. 그러나 러시아의 입장은 북핵 문제는 압박과 제재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다자간 채널과 정치적 해결방안을 통해 해결해야만 하며 러시아는 어떤 형태든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적극적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최근 한반도 데탕트 무드와 관련해 차이나패싱을 염려해 적극적으로 북한과 접촉을 보이는 중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관심을 가지고 관망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른 남·북·러 에너지 협력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및 ‘극동개발정책’은 우리의 신북방정책과 일정한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신북방정책과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이 만나는 지점이 극동”이라면서 한·러협력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9개의 다리를 놓자”, “북극항로 개척으로 새로운 에너지시대의 실크로드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데탕트는 신북방정책에서 시작됐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경협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신북방정책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환동해 에너지벨트가 그려져 있고 이 에너지 벨트의 핵심은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유전과 가스전 개발과 이를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또한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사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후임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9월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이 사업을 구체화하기로 합의했고,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이 2015년까지 가스관을 건설해 연간 10bcm(LNG 약 780만톤)을 30년간 도입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서 전통적으로 당사자 대화와 해결 원칙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한체제의 보장 등을 포함하는 북핵문제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다자간 채널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압박과 제재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다자간 채널과 정치적 해결방안을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깨끗한 에너지원인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도입해 석탄발전을 줄여 미세먼지에 대처하며 원전도 줄여 나갈 것이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중단되었던 남북협력도 재가동해 한반도의 분단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마디로 에너지 안보, 환경 문제, 북한 문제의 세 가지 도전을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통해 풀겠다는 의미이다.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에 가장 적극적이다. 2110억 달러에 달하는 북한의 채무도 변제해주고 나진과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도 개통했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러시아가 진행 중인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횡단철도(TKR)의 연결로 이어질 수 있다. 가스관, 송유관 연결 사업은 동북아지역의 철도연결, 도로연결, 전력망 연계(슈퍼그리드) 등과 연동되어 있는 패키지 성격이 강하다.


비록 북한 경유 가스관(740km)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북한의 공급 교란 가능성이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추진단계에서 종료까지 40년 이상 걸리는 장기적 사업이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 적극적
문재인정부의 국정전략, ‘남북한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의 세부과제 중 하나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은 주요 내용 중 하나인 환동해 에너지벨트의 핵심인 남·북·러 가스관 연결을 통해 구체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남북경협 활성화로 통일 여건 조성 및 고용창출과 경제성장률을 제고하는 효과와 더불어 러시아와 연결되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으로 한반도가 동북아지역 경협의 허브로 도약하는 효과가 있다. 한반도의 미래와 통일을 염두에 두면 북한경유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한국, 북한, 러시아가 서로 윈-윈하는 바람직한 국제협력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향후 동북아지역은 미·중 갈등이 커가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가 역내 정세를 좌우할 핵심변수로 예상된다. 주변열강들은 북한 비핵화라는 공통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비핵화 해법에 대한 차이로 ‘한·미·일’대 ‘북·중·러’간 대립구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규성 -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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