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창설 71주년 ‘금녀의 벽’을 넘어 비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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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10-05 09:45:54
  • 분류 : 자유마당

여군 창설 71주년 금녀의 벽을 넘어 비상하다

 

송명순(전 국방부 해외정보차장, 육군 준장 예편)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사회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급감, 그리고 경제적 위기 등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되고 양성평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점차 제고되면서 국방을 비롯한 사회 제 분야에서의 여성인력 활용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조직 내 양성평등의 구체적 실현자로서, 성문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여성인력의 양적 확대가 필요하다는 인식 또한 보편화되고 있다.

국방환경 역시 인구학적 변화와 전장 환경의 변화에 직면해 있다. 출생율의 급격한 저하와 징집병의 군 복무기간 단축은 장차 병역수행 가용자원의 부족을 초래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지식 정보화 사회의 등장은 현대전을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정밀타격과 사이버전 양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첨단 무기체계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전쟁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운용하는 전사의 양성이 더욱 중요한바, 인적자산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호국여성의 DNA, 면면히 이어지다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지킴이란 뜻의 호국은,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사회가 지속되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으며 현재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안보환경에서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의무로 단정 지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상 여성들의 호국활동을 짚어보면 실로 유구함을 엿볼 수 있다. 비록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유학자 중심의 사가(史家)들이 여성들이 주도했던 호국활동 사실을 자세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긴 하지만 당대를 호령했던 권력자 신분의 여왕이나 태후 또는 왕비들이 엄연히 존재했던 만큼 그 직위나 신분을 활용하여 호국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전개된 여성의 호국활동과 관련해서는 다수가 구전 또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 전투에서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전투를 지원한 역사나 논개 등 여성들의 과감한 순절,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었을 때 여성들이 주도한 항일운동과 항일여성단체 조직, 광복군 참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남성들의 임무는 물론 여성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호국정신은 우리 민족 최대의 재앙이었던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 빛을 발하게 되었는바 육군 여자의용군, 해군 여자해병, 공군 여자항공병, 간호장교 등으로 입대하거나 학도의용군 및 유격대원, 전투근무지원 요원 등의 민간인 신분으로 참전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자랑스럽고 막강한 여군의 토대가 되었다.

 

국난극복 위해 여군들, 분연히 일어나다

여군은 6·25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자원입대한 여자의용군을 모체로 탄생했다. 6·25전쟁 중 여군은 정보수집 및 수색활동, 선무심리전, 행정 근무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휴전 이후에는 군 행정 업무의 혁신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71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이제는 명실공히 국방의 일익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행정지원 위주의 단일 병과로 존속해 오던 여군 병과가 해체되어 여군은 보병정보 등 다양한 병과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 후반부터 공군과 해군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육공군 전 분야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또한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여군 인사정책, 군내 양성평등, 모성보호 등 여군정책 및 제도 역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여군부대 해체 및 여군부사관 야전부대 전환, 국방부 국방여성정책팀 신설, 최초의 전투병과(보병) 여성 장군 탄생 등 굵직한 변화들은 오늘날 여군 발전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수없이 발전을 거듭해 온 여군은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정부 초기 국방개혁 강력추진을 위한 국방부 과제에 여군 인사관리 개선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근무여건 보장 내용을 포함한 여군 비중 확대를 추진하였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여성 군 인력 확충과 관련해서 일시에 여성 군 인력을 대폭 증강할 경우 생기는 문제점을 고려해 최대한 증강할 것이며 이에 따른 진급장기복무복지시설육아 등의 환경을 최적화해 여성 군 인력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국방부는, 현재는 여군을 소규모로 유지하면서 배려 차원의 인사관리를 시행하고 있고 근무여건이 불비하여 우수 여성인력 활용이 제한되나 향후 여군 규모를 확대하고 양성평등한 인사관리를 시행하며 근무여건을 개선시켜 군내 우수 여성인력 활용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에 향후 5년간 획득 규모를 2.5배 수준으로 확대하여 ‘22년에는 8.8%까지 증강하도록 적극 추진하고 병과 별 균형된 여군인력을 확대(전투병과 비율 향상)하며 여군 보직제한 규정 폐지, 여군 공통 적용이 가능한 지휘관() 임무수행 자격기준설정, 여군 지휘관 보직 관행 개선(상비사단을 포함한 전 부대로 확대 보직), 현행 블라인드 진급심사체계는 지속 시행하되 여군 자력 향상 시까지 여군 진급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시행하는 등의 여군 인사관리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한 진급공석 및 초임획득을 확대하여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확보하고 일-가정 양립 지원을 강화하며 군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성 인지 교육 확대, 양성평등센터 및 센터장 전담 운영, 성 고충전문상담관 운영 확대와 여군 편의시설 확충을 통한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등의 여군 인사관리 개선방안을 천명했다.

현재 육공군, 해병대의 여군 인력은 15000여 명이다. 이는 전체 간부 정원의 7.9% 정도에 해당하며 금년 말까지 목표인 8%대에 무난히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군양성과정은 사관생도(‘97년 공군사관학교, ‘98년 육군사관학교, ‘99년 해군사관학교),

3사관생도(육군3사관학교), 학사사관후보생이 있으며 2011년부터 여자대학을 필두로 학군단(ROTC)에서도 여성후보생이 양성되면서 현재 2천여 명의 여성 ROTC 장교가 양성되었다. 여군 부사관의 경우는 각 군별 지원 분야별 모집 및 임관제도가 갖추어져 있다.

지상과 공중, 해상에서는 금녀의 벽을 넘어 여군 최초로 전방사단의 보병대대 지휘관이 탄생했고, 아파치 공격헬기부대 등을 지휘하는 항공사령관도 배출했으며 여군 최초 전투비행대장과 첫 여군 함장도 탄생했다. 육군에는 전체 간부의 7.8%에 해당하는 장교부사관이 근무하고 있고 해군과 해병대에는 약 7.3%, 공군에는 간부의 8.5%가 여군이다.

 

양적인 확대에 상응하는 질적 성장 필요

현 정부 출범 후 여군은 양적 및 질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였다. 국방부의 양성평등정책 2021년 성과분석을 인용하면, 육아휴직 대체인력 제도 개선등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제가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선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최근 일련의 성 관련 사건·사고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양성평등한 선진국방 구현을 위한 제도 및 정책이 구비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여러 징후들을 통해 여군인력에 관한 양적 확대는 충분하고 순조롭다. 그렇다면 이제는 양적 확대에 상응하는 질적 성장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 관련 문제를 포함한 여성인력 활용 제반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 국방부 조직 내 1개 과(양성평등과)가 모든 책임을 지고 엄청난 양의 여성인력 활용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실로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지닌 영향력 있는 컨트롤타워(, 국방부 장관 양성평등특별보좌관 또는 국방부 직속기구)를 신설하여 국방여성인력과 관련한 굵직한 현안들 가령, 여군관련 정책에 남성인력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적 정책, 인력뱅크제 등을 통한 대체인력 수급방안, 여군인력의 비전투병과 편중 완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을 통한 모성보호 향상 방안, 성인지 교육 강화 및 우수 성고충전문상담관 군내 유입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심층적이고 밀도 있게 직접 검토하고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길 위에서 여군들의 호국의지는 현재 진행형

여군인력 활용 확대는 군이 당면한 인력난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자원 관리의 측면과 국방환경변화의 흐름에 부합하는 해결책으로서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군인력 확대에 따른 이면의 문제점들도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으므로 기대효과에 부응할 수 있는 여군인력 확대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더욱더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양적인 확대에 질적인 성장이 뒷받침된다면 71년이라는 성상 아래 금녀의 벽을 넘어 국방의 최일선에서 당당하게 호국을 실천하고 있는 여군들의 미래는 밝게 빛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확히 40년 전, 여군 장교가 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나는 무엇을 위해 군문에 들어서려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81년 여군 소위로 임관하고 첫 출근한 날, 선배가 어깨를 두드리며 총알도 피해 가는 소위, 잘 해봐!’하던 격려는 지금껏 나를 위무해주고 있다. 당시 1,000명도 채 안 되던 여군이라는 소명을 짊어지고 2012년 전역할 때까지 나는 내 이름 석 자 대신 여군이라는 이름표만 가슴에 붙였다. 여군 20,000명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여전히 수많은 우수 여성인력들이 각자의 가슴에 호국의지를 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군문을 들어선다. 사회보다 엄격한 군에서 수십 배가 넘는 남성들과 경쟁하고 부대끼며 자신들의 초심을 지키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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