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국군의 위상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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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10-05 09:47:18
  • 분류 : 자유마당

달라진 국군의 위상과 과제

민주국군을 향한 73년 도정의 역사

 

김민석(중앙일보 군사전문기자 · 전 국방부 대변인)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새겨진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이다. 국방부 대변인 시절 매년 1월 초 새벽에 국방부·합참 간부들과 함께 현충탑 앞에서 예를 올린 뒤 한 해를 시작했다. 그때 겨울의 새벽 공기에 춥기도 하지만, 동이 미처 트기 전 현충탑에 새겨진 노산 선생의 글귀를 읽으면 머리가 쭈뼛 선다. 그러면서 6·25 한국전쟁이나 독립운동 곳곳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마음이 온몸에 저며 온다. 묵념을 할 때 현충탑 주변에 불어오는 서기 어린 찬바람은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영험한 작용을 한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모윤숙 선생의 시가 절로 떠올라 마음속 응어리로 자리 잡는다.

 

창설 73돌 맞은 대한민국 국군

대한민국 국군이 올해로 창설 73돌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장병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그런 역사의 과정과 역경을 거쳐 오늘날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군대로 성장했다. 국군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광복군을 근거로 둘 수 있다.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한국의 독립 과정에서 영국군과 미군 등을 도와 일제에 대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광복군의 위상이나 역할은 한계가 있었다. 한국이 독립된 상태가 아니었고,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도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광복군은 인도·버마와 중국 등지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국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정식 창군되면서 본격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50625일에는 김일성의 북한군이 중국과 소련의 지원받아 남침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전차 242대와 야크 전투기 등 각종 작전용 항공기 226, 구경 76밀리 자주포와 곡사포 등 대포 748, 대형수송선 등을 지원받았다. 중국은 항일전과 국공내전에서 경험을 쌓았던 한국인 병사 56만 명을 북한군으로 편입시켜줬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은 북한 김일성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고 했다. 그때 우리 국군에는 전차가 1대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전쟁에서 국군은 중무장한 북한군에 밀려 서울에서 대전, 대구까지 밀렸다. 낙동강을 경계선으로 한 발짝만 더 밀리면 대한민국은 북한군 수중에 떨어질 판이었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없을 수도 있는 극한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국군의 안간힘과 미국 등 유엔군의 지원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 와중에 중국 공산당의 중공군이 개입해 국군과 유엔군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국군은 중공군을 다시 물리쳐 지금의 휴전선을 유지하게 됐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평화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도 존속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 유지에 이바지한다는 국군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성장통 겪으며 도전의 역정 걸어

그러나 대한민국이 발전하면서 우리 군도 크게 변했다. 우선 한국군의 위상 자체가 국제화되었다. 한국군의 전투력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선두주자급이다. 국방비도 지난해 한국이 전 세계에서 9위였다. 한국의 군사과학기술 수준은 세계에서 89위 수준이다. 이제 웬만한 첨단무기와 장비까지 국내에서 개발해 생산한다. 과거 미국제 M-16 소총이나 야포의 기술을 이전받거나 모방해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투기와 전차,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나라가 됐다.

병사 월급도 1970년대 말에만 해도 3000원 남짓 받았지만, 이젠 병장 기준으로 올해 월급이 608500원이나 된다. 군 복무하는 18개월 동안 봉급만 모아도 어지간한 학비는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다.

한국군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 성장통도 많이 거쳤다. 우선 군이 무력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찬탈한 경우가 있었고, 군대가 민간인과 서로 총구를 겨누며 대치했던 일도 있었다. 모두 비극적인 얘기들이고 역사적으로 아쉬운 점도 많았다. 또 군내에 부정도 없지 않았다. 특히 방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로비를 받거나 불법으로 자금을 수수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군이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군인이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정도였다. 또한 군내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성 비위 사건이나 구타 등 괴롭힘 문제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건도 발생했다.

 

민주시민 의식 바탕으로 건전한 병영문화 조성해야

성장통에 의해 유발된 군의 여러 문제점들은 건군 73주년인 오늘날 대부분 해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가 헌법이 정한 군의 임무와 사명에 벗어난 불법 행위를 할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없다고 생각된다. 국민은 한국군이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신념과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군 내부의 비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실제 최근 수년 동안 방위사업 등 비리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았지만,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젠 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서로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동료가 감시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끊이지 않는 군과 관련된 사건들은 성 비위 또는 성 인지 문제다. 이 부분에서는 군내의 사고 의식이 일반 사회보다는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군에서 발생한 각종 성 비위 사건은 육··공군을 가리지 않는다. 남성 부사관이 같은 부서의 여성 부사관에 대한 성추행은 물론, 장교와 부사관, 심지어 장교와 장교 사이에서도 부쩍 많았다. 그런 일로 여성 부사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인식 차이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과 계급이라는 위계질서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군내에는 남성이 우월하다는 오래된 잘못된 습관까지 남아 있다.

수년 전 대변인 시절 부대 안에서 성 인지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사건을 바로 잡기 위해 현역 장성이 성 인지 교육을 했는데 그 자신도 잘못된 성 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성 인지 교육은 외부의 민간 전문가에 초빙해서 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사례가 말해주듯이 우리 군에는 여전히 성문제와 관련한 고질적인 잘못된 습관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조차도 군이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 더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시민 의식도 중요하다. 군인은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아 실제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나 백마고지 전투와 같은 상황에선 전우들 가운데 누가 투입되더라도 많은 희생이 불가피했다. 다부동 전투 당시 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자신도 그 전투 상황이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 사단장이지만 적들이 쏘는 총탄이 무서워 뒤돌아설 경우에는 나를 쏴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전쟁 땐 엄중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그래서 군대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의 문화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군대 안에서 작전이나 임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하는 상명하복을 평시 자율적인 시간에까지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제 그런 착각에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힌 경우도 과거에 많았다. 지금도 어떤 부대에선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문화는 모두 근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부터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육이 돼야 하고, 그런 사고와 의식이 군대에서도 유지돼야 한다. 그랬을 때 자율과 책임이 구분되는 것이고, 투명한 조직문화가 조성된다. 또 그런 문화가 있어야 군대 본연의 임무를 더 성실하게 수행해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국방체제 적응 과제로

한국군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 자체가 도전의 역사였다. 그런 노력에 의해 우리 국군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세상은 군에 대해 더 과감한 자기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향후 1015년 사이 한국군은 발부터 머리끝까지 바뀌게 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군에 대규모로 접목될 것이기 때문이다. 군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하게 되고, 모든 정보는 실시간에 공유하는 여건이 조성된다. 군에 AI를 장착한 로봇 전투병이 배치될 날도 머지않았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은 벌써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가령 10명의 전투병으로 구성된 보병 분대는 인간 전문전투병 23명과 46개 정도의 로봇 전투병으로 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지금의 전투방식과는 전혀 다른 구조가 된다. 군대 전체가 그런 식으로 변한다. 군에서 전우들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 냉랭하고 멀어질 수도 있고, 어쩌면 기계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현재의 부대 근무형태보다 더 고립적일 가능성도 있다. 소수의 인원이 하나의 조직을 운영하게 되는데 상호 감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민주시민 의식이 결여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군대의 무기체계는 더 정교해지고 그 치명성은 더 커진다. 사이버전, 레이저, 다양한 스펙트럼을 활용한 전투력 등은 상대방을 은밀하게 더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사람을 곤경 또는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강력한 전투력을 자칫 잘못 운용하면 엄청난 사고 또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군대는 규율과 의무를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군대의 기강 유지는 기본이고, 자율성 확대에 따른 책임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새로운 국방체제에 적응할 수 있다. 따라서 조만간 군이 맞이할 새로운 환경에 대비해서라도 지금부터 군의 조직문화를 바르게 세울 필요가 있다. 인간존중과 민주시민의식이다. 그러면서도 책임과 자율이 균형을 이루는 조직이다. 그랬을 때 군대다운 군대, 국민을 위한 군대, 나라를 지키는 군대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도 생동하고 발전하는 군대를 위해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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