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으로 인정받은 한국, 위상에 걸맞은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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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9-03 15:30:43
  • 분류 : 자유마당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한국, 위상에 걸맞은 역할은?

 

 

정태선(뉴스핌 공공정책부장)

 

 

평화롭고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고 싶은 꿈을 꾼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를 통해서 품격 있는 선진국의 키워드로 포용을 강조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로 격상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다시 꿈꾼다. 평화롭고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고 싶은 꿈이다.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꿈이다라고 강조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달 우리나라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다. 한국이 UNCTAD에 가입한 지 56년 만이다. 특히 1964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결정에 따라 대한민국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속한 그룹으로 지위를 옮기게 됐다.

세계 32번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이는 한국이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보다 이제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받는 나라가 아니라 주어야 하는 나라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경제 규모 세계 톱10’ 대한민국, 57년 만에 선진국 편입

사전적인 의미로 선진국이란 다른 나라보다 정치·경제·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를 말한다. 사실 한국은 이미 2년 전에 ‘3050 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7번째로 가입했고,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개발원조위원회 등에서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 집행한 지 오래다. 이를 볼 때 한국 경제력 수준이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 지위를 얻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10), 무역 규모(6) 등 경제 역량은 톱10이다.

1인당 소득(27)에선 지난해 G7의 하나인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한국 수출 상대국은 지난 6월 기준으로 233개국에 달했다. 이는 도쿄올림픽 참가국(206)이나 코카콜라 판매국(220여 개)보다도 많은 것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대한민국 발전은 선진국 성공을 빠르게 뒤따라가는 캐치 업(catchup) 전략 덕분이었다. 보호무역과 함께 국가가 산업화를 주도하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압축성장을 이뤘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성장중심엔 제조업이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한국은 자동차 세계 4대 강국이다. 이뿐인가, 전 세계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의 43%를 국내에서 제조해 조선 분야에서도 글로벌 톱이다.

반도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 반도체 사용의 45%가 삼성과 하이닉스 제품이다. 가전제품은 30%가 한국산으로 가전 강국으로 올라섰다.

최근엔 초음속 전투기 수출을 본격화하고 있고, 20조 원 규모 원자로를 수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1970년대 한국에는 고속도로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34개나 있다.

IT 최첨단 선진국이며 세계 1등 상품은 112개나 있다. 5년 후면 일본을 앞질러 세계 1등 제품이 500개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경제 규모로 보면 현재 한국은 북한보다 45배나 잘살고 있다.

사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명확하게 나누는 일관된 기준은 없다. 일반적으로 기대수명, 소득수준, 문맹률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2000년대 들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이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경제적 기준을 만들어 구분하기 시작했다.

IMF1인당 소득수준, 무역 자유도, 금융 개방성 등을 분류 기준으로 활용한다. WB2016년부터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저소득 국가(1025달러 이하), 중하 소득 국가(1026~4035달러), 중상 소득 국가(4036~12475달러), 고소득 국가(12476 달러 이상)로 국가를 분류한다. 이번 UNCTAD 결정을 포함해서 선진국 기준이 주로 경제 규모와 연결되어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좀 더 전체적 수준에서도 선진국일 수 있겠느냐 따져 볼 수 있겠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수립한 실질국민소득, 교육 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등 삶의 질 부문을 모두 포함한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작년 기준으로 한국은 23위를 차지했다.

대략 상위 10%에 해당하는 20위권을 선진국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선진국 주변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이 밖에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 봐도 좋을 사례는 많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은 발생 초기부터 감염병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고 국가 위기관리 능력, 사회적 통합력, 시민의식 등 여러 측면에서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 교육 수준이나 보건의료, 치안, 교통 등 공공서비스 분야의 축적된 역량과 IT 정보산업 발전이 결합된 결과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엔 K팝 등 한류 문화가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 핫한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국토면적은 비록 세계 107위지만 경제영토 확장에 이어 문화영토까지 무섭게 넓혀가는 것을 보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행복 순위 62선진국인가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를 선진국으로 평가하는데 야박하다. 경제 규모 등 정량적 지표는 진작부터 선진국 수준이지만, 심리적 측면에서는 자부심이나 만족감이 부족한 탓이다.

2021년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 순위는 149개국 중 62위였다. 핀란드가 1위였고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 그 뒤를 이어 수위권(首位圈)이었다. 행복 순위가 대체로 높은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과 스위스,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1인당 GDP도 높고 사회 연대성이 강하다는 것. 세계행복지수를 산정할 때 사용하는 지표로는 생애 사다리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수명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인식도 긍정적 정서 부정적 정서 등이 있다. 개별 지표별로 비교하면, 한국은 1인당 GDP25, 건강수명은 7위로 상위권이다. 반면에 사회적 지원 97, 선택의 자유 128, 부패인식 103, 긍정적 정서 103위로 하위권을 기록해 전체 순위에서는 62위로 밀렸다.

핀란드는 1인당 GDP(19) 건강수명(27)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회적 지원(5), 선택의 자유(5) 등의 지표가 높아 1위가 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객관적으로는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두 가지 지표는 금전적 측면에서 1인당 GDP와 신체적 건강수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국은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과 신체적 건강 측면에서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불행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사회적 지원과 선택의 자유, 부패인식 측면에서 처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회적 자본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따금 스스로 한국을 (hell)조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9년에서 2020년 사이 최신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전체 37개 회원국 중에서 연간근로시간 36, 자살률 1, 여성에 대한 처우 37, 출산율 37, 산재 사망률 1, 국가행복지수 35위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상위 10% 집단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극심한 빈부격차의 나라로 주요 50개국 중 3위권에 든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품격 있는 대한민국’, 도전의 길 걸어야

이 같은 수치는 팬데믹 이후를 생각하면 선진국 대한민국의 뒤안길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고용 위기나 중소자영업자들의 몰락, 부동산 가격의 폭등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심리적 불안, 누적된 스트레스 등 아직 통계에 담아내지 못하는 그늘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선진국 조건은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지속성, 경제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선진국은 경제 규모나 부의 축적은 기본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포용과 공생에 맞춰져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서로의 처지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우리 사회는 품격 있는 나라, 존경받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 방향을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가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코로나를 이길 수 없고,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상생협력을 이끄는 가교 국가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백신 허브 국가, 반도체·배터리 산업 등 글로벌 공급망 역할 강화, 기후 위기 대응에서 국제적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개방과 협력으로 키운 우리의 역량을 바탕으로 코로나 위기 극복과 함께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재건과 평화 질서에 적극 이바지하겠다. 특히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우리의 성장 경험과 한류 문화, K-방역을 통해 쌓은 소프트파워를 토대로 새로운 시대의 가치와 질서 형성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도전적인 일이다.

선진국이 되고 나면 선진국다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도 동시에 발생한다. 대한민국은 실상 선진국이었으나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역할을 하는 데 여러 면에서 주저해왔다.

이제 우리에게 맞는 옷을 입었으니 이에 걸맞은 새 역할을 해야 한다. 선진국 국격에 맞는 삶과 체제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사회 구성원 전체 목표를 설정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의 불평등 해소,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등 전 지구적인 재앙과 국제현안에 대해 대응하고 책임있는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또 과연 그럴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가 곧 선진국의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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