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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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3-03 14:12:48
  • 분류 : 자유마당

자유마당 3월호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

 

서보혁(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장)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요즘이다. 남한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무시로 일관한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작년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한은 남한정부를 첨단무기 도입이나 합동군사연습등을 이유로 사대굴종 정권이라 비난해왔다. 2018년 남북 두 정상이 합의한 4.27 판문점 공동선언,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 이행도 중단되었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제재를 가하면서 대화를 제의하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에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이행을 주장하면서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2018612,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내다보기 어려움은 물론 평화체제는 먼 미래로 보일 수밖에 없다.

 

비핵평화체제론의 등장과 첫 실험

 

이렇게 널뛰는 한반도 상황에서도 과거와 다른 한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희망 섞인 현상이다. 바로 2018년 일련의 남···중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바람직한 한반도 미래상을 비핵평화체제로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평화체제는 공론화 되지 못한 채 북핵문제만 다뤄져왔고 이는 북한의 반발을 샀다. 북핵 위기가 지속된 데에는 북한의 핵개발 동기는 무시한 채 핵개발의 결과에만 맞서는 대증요법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에 맞서 (혹은 그런 상황을 이용해) 핵개발을 포기하기는커녕 핵무력 건설 노선을 표방하고 그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핵문제에 있어 북한의 기본입장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완전 철폐되어야 핵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어 간 2010년대 들어 남북관계는 최악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핵개발, 제재와 압박, 남북관계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견고해 보인다. 그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북핵문제가 핵폐기 우선 대 안전보장 우선이라는 비타협적 대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2018년 남·북 정상들은 판문점 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으로 합의하고 그 일환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3자 또는 남···4자회담 개최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이어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전쟁 포로 유해 송환 등에 합의했다.

이상을 통해 2018년이 한반도 평화 논의를 진척시킨 것은 여러 가지 의의가 있다. 물론 2005-76자회담에서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 논의가 가능하다고 한 적은 있지만, 비핵평화체제의 관점에서 본격 논의된 바는 없고 6자회담은 정상회담보다 격이 낮은 실무회담에 머물렀다. 그와 달리 2018년 일련의 정상회담과 일부 실천으로 이어진 상황 전개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북한의 핵 폐기와 대북 안전보장을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 추진의 과제(소위 비핵평화체제)로 포괄적으로 접근하기로 한 점, 둘째,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 공약은 물론 초보적이지만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낸 점이다. 이행 사항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DMZ 평화지대화 관련 남북의 공동 행동(DMZ 내 시범적 GP 철거 및 지뢰 제거,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을 말한다. 이런 경우는 그 이전에 없었던 바여서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비핵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었다. 특히,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미 비핵평화 협상과 병행해 남북 간 재래식 군비통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이는 분단 이후 최초의 합의 및 일부 실천으로서의 의의가 높다. 셋째, 비핵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남북이나 북미와 같은 특정 양자관계가 아니라 모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참여해 합의한 점도 작지 않은 의의이다. 문제는 이런 의의를 갖는 2018년 한반도 비핵평화체제의 길이 2019년 들어 어떻게 교착국면에 빠졌는가 하는 점이다.

 

2019년 이후의 정체와 그 함의

 

2019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핵심 쟁점(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범위)이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점에서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따라 상호 불신은 다시 높아졌다. 4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회담을 겨냥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로 되었습니다고 말하고,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고 주장하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공을 미국측에 넘겼다. 이때부터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한 설왕설래가 번져갔고 북한측 고위인사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하였고 대미 압박 차원에서 비핵화 협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북한의 행보는 미국의 싱가포르 공동선언 이행 의지에 강한 의심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지만, 북한 스스로 비핵화 공약을 준수할 의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2019년에 대화와 협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630,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한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은 하노이 이후 침체된 북미 협상의 분위기 조성 노력으로는 인상적이었다. 이어 한미 양국은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조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폼페이오 국무장관, 비건 대북협상 대표 등 미 고위인사들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언행에 신중을 기했다. 대표적으로 비건 대표는 201996일 미시건대학 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1년 내에 중대한 진전을 만들어내는 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고, 긴장완화가 이루어질 경우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접촉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하노이 회담의 재판이 되어버렸다. 협상이 아니라 자기 입장의 일방적 전달에 불과했다.

하노이 이후 지금까지 나타난 한반도 정세는 의미 있는 대화가 중단된 채 북한의 핵능력이 조용하고 꾸준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2018년 남··미 정상이 전 세계에 공약한 비핵평화의 길과 반대 방향이다.

 

장기과제로 굳어져가는 비핵평화체제

 

북한은 작년 1228-31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정면돌파전을 향후 대내외 정책 기조로 결의했다. 결정서를 통해 북한정권은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 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고 인식하고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과의 핵협상보다는 현재의 핵능력을 유지한 채 고립주의적 외교와 폐쇄적 경제노선을 걸어갈 것임을 말해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정부로서는 북한의 그런 입장이 최선의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도 아니라는 점에서 받아들일 상황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은 북한에 어떤 보상 없이, 대신 국제사회와 대북 제재 공조를 취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시키고 미국 억류자들과 전쟁 유해를 송환한 점을 자화자찬해 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해온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북핵 관리 모드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제의하는 한편 제한적 수준의 남북대화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상황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는 북한 정권과 미국 정권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비핵평화체제의 길이 장기화 모드로 바뀌면서 남북 간 불신이 다시 높아지고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여론분열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말하고 그 방향은 공존공영의 한반도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탈냉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북핵문제가 들어와 담론이 비핵평화체제로 확대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정치외교적 동학으로 인해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분리 접근되어온 것이 2018년 이전까지 양상이었다. 2018년 들어 한반도 문제의 직접 이해 당사자들인 남···중 사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함께추진해나간다는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20192월 하노이 이후 교착상태는 비핵평화체제의 로드맵, 즉 구체적인 이행 경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고 그만큼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비핵평화체제가 장기과제로 굳어져가는 형국이다.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는 동북아 안보협력 구도와 직결되어 있고, 대북정책 전체 틀에서 접근할 과제이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비핵평화체제는 장기 구상 속에서 현실 가능한 단기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이를 4자 간의 공감대 속에서 합의, 이행함이 타당하다. 또 한국의 입장에서 북핵문제는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성에서 추진할 일이지 그 자체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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