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4.19혁명 60주년, 한국 민주주의를 돌아보다 - 장성훈 선거연수원 전임교수

  • No : 274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1-07 14:41:01


올해로 4·19 시민혁명이 일어난 지 60주년을 맞는
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첫 문장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장을 담
아 4·19 혁명의 정신을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이
자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4·19는 우리나
라 자유민주주의에서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6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을 선출했던 선거가 있었다.
이른바 3·15 부정선거로 불리는 이 선거는 우리나라
선거사(選擧史)에서 치욕으로 자리매김한 선거였으
며, 4·19 시민혁명을 불러오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
했다. 당시 선거에서 국민들은 권력자들의 집권 야
욕 앞에서 자유와 권리를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미
리 조작된 불법 사전 투표지가 투입되고, 투표함이
바꿔치기 되었다. 완장을 찬 정치깡패의 완력 앞에
서 투표의 자유는 침해당했고, 정부 기관은 집권 연
장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했다. 선거 과정도,
투표도, 개표도 모두 부정으로 얼룩졌다. 당연히 선
거 결과는 집권자의 승리였다. 국민의 대의(代議) 과
정은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는 훼손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불의’에 맞서
뜨겁게 ‘항거’했다. 권력 집단의 무력에 맞서 자유,
민주, 정의를 외쳤다. 근본적인 개혁을 외쳤고, 독재
타도를 울부짖었다. 권력자의 진압은 강경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피 흘리며 희생됐다. 그러
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힘으로 꺾
을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과
이기붕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권력자의 자리를 내놓
아야 했고, 권위주의 독재는 붕괴했다. 자유민주주
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의 투쟁과 희생이 일구어낸
찬란한 성과였다. 이것이 4·19 혁명이다.
4·19 혁명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아픈 상처이자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혁명의 과정은 시민들이 피와
눈물을 쏟아내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아
픔의 시간이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싹을 틔웠다.
군부 권위주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의 싹을 고사 시켜
4·19 이후 일구어낸 신생 민주주의의 싹은 그리 오
래 가지 못해 생명을 잃었다.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군부에 의해 장기간 이어진 권위주의 체제는
또다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존엄한 가치
를 훼손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세계가 놀랄만한 급속한 경
제성장을 얻었다.
우리 정치사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는 늘 양면
의 동전처럼 서로 마주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국
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경제
성장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적 희생의 감수는
필연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국민의 기본
적 조차 훼손하는 독재의 그림자가 더 큰 국민의 희
생과 불행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역사적
평가는 논쟁 중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시민이 고통받고 희생됐
으며, 그 희생자들이 경제발전이라는 성과의 온전한
수혜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했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쉼 없이 독재정권에 저항해 왔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압되어 있던 4·19 정신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계승되었다. 1987년 전국
의 거리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으로 넘쳐났다. 1960
년과 너무나도 닮았다. 권력의 과도한 탄압 속에 시
민들은 피와 땀과 눈물을 내쏟아야 했으며,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그러나 결국 국민 권력이 제도 권력
을 제압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주주의 요구돼
국민이 염원하던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여 기본권
을 회복했고, 왜곡된 선거제도는 수정되기 시작했다.
민주화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마련한 절
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 그 결과 많은 변화가 찾
아왔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여소야대의 정치지
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정치 권력에 대해 유권
자들이 책임성을 물을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쿠데타나 시민혁명이 아니라 선거라는 민
주적 제도를 통해 주권자의 손으로 이루어내는 평화
적 정권교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성숙시켰다. 그렇게 또 30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매년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조
사하여 발표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평가에 따르면 그사
이에 한국은 전 세계 161개국 가운데 21위의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머물러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져 있는 정답이 없으며, 끝없이 변
해가는 정치체제이자 무형의 가치이다. 따라서 시대
에 따라, 국가에 따라 민주주의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
난다. 영국의 민주주의가 다르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르다. 근대의 민주주의와 현대의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와 가치를 추구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또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60
년 전 자유와 권리를 외치던 4·19 혁명기와는 다른 패
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중심
에 놓여 있던 민주적 정치제도, 언론·출판·집회의 자
유, 노동권 쟁취 등의 기본적 가치는 평등, 정의, 공정
과 같이 질적으로 심화한 가치로 대체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중심에 놓였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선동했던 정치적 이
데올로기는 안보와 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 국
가 생존과 번영의 문제로 다가왔다. 극단적 저항과
반목의 정치가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협과 통
합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와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정치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와 달리 한국의 정치는 뒷걸음치고 있으며, 민주
주의의 가치에 대한 혼란이 또 다른 갈등과 대립 그
리고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
는 현재 상황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평가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희생을 담보로 이룬 경제발전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발전의 후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
제성장이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경제적 평등 대
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을 심화하는 양극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
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무너뜨렸다. 정치인 자녀들의 취업 비리, 입시
비리 문제는 기회균등의 가치를 훼손했고, 수많은 청
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검경 갈등과 각종 사회
비리 수사 과정은 사법 질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
속에 불공정성과 불신이라는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
궁극적으로 광장에 쏟아져 나와 양극단의 목소리로
대결하는 시민들과 극단적 대결에 편승하려는 정치권
의 모습은 과연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심각한 회의마저 들게 한다. 어디 이뿐이랴. 그
이외에도 한국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 민주
주의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는 자유, 평등, 공정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한
다. 한국 민주주의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 실종이 민주주의 위기 불러
결국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
을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가치의 충돌
은 지속해서 발생하고 그에 따른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정치이며, 대의제라는 현
재의 시스템 내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결국
대의정치를 통해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에는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정
치의 실종’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제한된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이라
고 정의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
다. 제한된 가치를 인식하는 다양한 시각,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첫째이다.
둘째는 가치 배분의 결정 과정의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한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이다. 마지막으로 그 최종
적인 결정이 권력을 위임한 주권자에게 수용될 수 있
도록 결정권자 즉, 대표자들이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다. 오늘날 한국 대의제에서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
은 일방적인 자기만의 주장, 대화와 타협의 실종, 그
로 인한 대표자에 대한 불신과 권위 상실을 의미한
다. 입법부도, 행정부도, 사법부도 모두 정치라는 용
어에 담긴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볼 때이다. 위기에 처
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회복은 상실된 정치의 복
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1대 국회의원선거 맞아
4·19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4·19 혁명 이후 어느덧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혼
란스러운 시대상은 다시금 4·19 혁명의 정신과 한국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정치현실을
보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
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비
평이 새삼스럽게 공감되는 시대이다.
60년 전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핵심적 기
본권인 선거권이 훼손되거나 왜곡된 절차적 민주주
의를 정상화하기 위해 피와 눈물로 권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때와 달리 국가와 대표
자들이 국민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
주길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가 국민을 걱정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현실은 또
다른 의미의 시민혁명을 고민하게 한다. 무엇이 우리
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어떠한 가치와 정책
이 우리의 내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를 현명한 눈
으로 심판하여 주권자의 힘을 보여줄 때이다. 이를 통
해 대의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다.
3·15 부정선거를 주권자의 권력으로 심판하고 민주주
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4·19 혁명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때이다. 4·19의 정신은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며, 불의를 극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
는 것이었다.
정치와 선거의 중심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 놓일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국민이 나서야
할 때가 왔다. 투표는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강력한 무
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국민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와 합
리적 선택이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를 새롭게 성
장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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