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글짓기대회] 금상-초등부 유시윤 '자유를 찾아 탈출한 할아버지'

  • No : 608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8-18 10:42:29
  • 조회수 : 1016
  • 추천수 : 1

제1회 전국나라사랑 글짓기대회 수상작

금상 - 초등부 유시윤(화성 도이초등학교 6년)

자유를 찾아 탈출한 할아버지

 

역사를 전공하고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아빠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는 엄마를 둔 딸은 피곤하다. 이번에는 유튜브를 보라고 한다.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자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공기의 소중함으로 모르다가 화생방 훈련에서 느끼는 것과 같았다.

유튜브 영상이 끝나자 아빠의 지루한 설교가 시작됐다. 6.25전쟁 무렵엔 남한과 북한 중 북한이 더 잘 살았다. 북한에는 지하자원이 많고, 수풍발전소 때문에 전기 공급도 잘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당시 북한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은 남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잘 산다. 경제력이 45배 차이가 난다. 이유가 무엇일까. 남한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주어지면 자신의 능력을 각자 발휘할 수 있다. 아빠의 말씀을 듣자 할아버지의 고향 청주의 박성남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시윤아, 오늘이 6.25전쟁 72주년인데 신문에 할아버지 고향 청주에 할아버지 친구의 기사가 실려있네.” 잔소리로 생각되었지만, 며칠 전 탈북자 특강을 듣고 통일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밥을 다 먹고는 신문을 보았다. 이제껏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1950628. 열아홉 살의 박성남 소년은 집을 나서 학교에 간 길이 전쟁터로 향하는 길일 줄 알지 못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소년은 고향 개성에서 강제로 끌려가 북한 인민군이 되었다. 인민군은 전라남도 나주까지 내려왔다. 920일이 되자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소년은 전쟁이 무서웠다. 무엇보다 자유가 소중한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소년의 눈으로 토지개혁을 하는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 잔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꼭 살고 싶었다. 후퇴하면서 군대가 흩어진 틈을 타서 도망을 쳤다. 충북 보은군 탄부면에 아는 사람을 찾아 이곳에 정착하였다. 소년은 떳떳하게 살고 싶어서 제발로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를 하였다. 다행히 소년의 호소가 받아들여져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전쟁 중에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다시 국군 소집 영장이 날아왔다. 그래서 국군으로 가게 되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1951210, 국군에 입대한 소년은 육군본부 정보국 직할 특수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의 지리적 특성을 잘 아는 북한 출신들만 모아 꾸린 부대이다. 북한군의 뒤를 교란하고 견제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북한에 군수물자가 못 다니게 하는 작전에 가담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북한에 들어가서 철도, 교량을 폭발시켰다. 소년의 본래 고향은 북한이니 북한의 철도를 부술 때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할아버지의 복잡한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때는 전쟁에 나간 젊은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가 몹시 힘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태극기를 그려서 나눠 주었다. 소년도 태극기를 하나 받아서 가슴 깊이 간직했다. 태극기의 힘으로 소년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며 동네 사람들이 그려준 태극기는 지금도 소년의 보물 1호다. 이 소년이 할아버지 친구 박성남 할아버지다.

이 글을 쓰는데 아빠가 보고는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30분쯤 지나니 아빠 메시지로 그 할아버지의 태극기가 들어왔다. 태극기를 보니 누렇게 변해있었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동네 사람들의 싸인도 적혀 있었다.

박성남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사셔야만 하셨을까. 남한과 북한의 분단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도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다. 나도 내 핏줄인 세 살이 어린 동생과 자주 싸운다. 하지만 싸우고 화해한다. 자고 일어나면 같이 놀다가 또 싸우고 또 화해한다.

남북한은 72년 전 6.25전쟁으로 싸웠다. 그러나 나와 동생이 싸우고 화해하듯 화해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화해란 무엇일까. 바로 통일이다.

지난번 탈북자 특강을 들었다. 북한은 지금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식량만큼 또 부족한 것이 전기이다. 전기 없는 삶은 상상이 안 간다. 얼마나 삶이 힘들까. 요즘엔 공기처럼 필요한 게 전기이다. 그만큼 북한은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식량과 전기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도 부족하고 치료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백신 4차까지도 맞고 있지만, 북한은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민간요법을 사용하고 있다. 21세기에 민간요법을 사용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엄마 말씀으로 세계 200개 나라 중 한 개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은 언어에 대한 문제가 없다. 다른 나라는 회담을 할 때 통역이 필요하지만, 남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기에 통역을 쓰지 않는다. 회담을 하고 합의문 쓰기도 편하니, 통일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아빠께 들으니 북한이 처음 수립될 때는 수도가 서울이고 국화가 무궁화이고 국기가 태극기이고 국가도 애국가를 사용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진 이후로 북한의 수도, 국화, 국기, 국가 등이 새로 생겼다. 그만큼 전쟁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많은 것을 바꿔 버린 것이다.

탈북자 특강을 들으면서 놀란 것이 있다. 북한 사람은 신라면, 초코파이, 믹스커피, 소주를 정말 좋아한다. 우리와 취향, 입맛이 거의 같다. 평양에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이 몰래 갖고 있는 게 김치냉장고다. 왜일까?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민이 캐나다나 영국에 가면 한국으로 보낸다. 위와 같은 이유다. 같은 핏줄, 같은 민족이기에.

박성남 할아버지는 고향인 북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신다고 한다. 박성남 할아버지처럼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처럼 자유를 누리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

네티즌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