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글짓기대회] 금상-고등부 이정민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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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8-18 12: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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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나라사랑 글짓기대회 수상작

은상 - 고등부 이정민(망포고등학교 2년)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며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유튜브를 보면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였다. 또 대한민국에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하였다. 작년 한국사 시간, 역사 선생님께서 6.25 전쟁에 대해 가르쳐 주신 것이 생각났다.

1945922, 평양에 들어온 김일성은 공산주의 실현을 위한 계획을 자신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과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한 분이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그분이 100세가 넘으신 연세대 김형석 교수님이다. 교수님은 김일성의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방법이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자신이 말한 대로 공산주의를 실현하였다. 먼저 토지개혁이었다.

천민과 노비 출신의 청년들을 앞세워서 지주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는 비민주적 방법이었다. 토지개혁은 19463월 실시되었는데, 천민과 노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땅을 배부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491225, 평양에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 당시 김일성의 나이는 37세였다. 젊은 나이에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이다. 현재 이렇게 세워진 동상은 48천 개에 이른다고 한다. 황순원의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와 임옥인의 장편소설 <월남전후>에 이 과정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김일성은 남한에서도 이처럼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당시 북한은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공장이 많이 있었다. 남한은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쌀을 생산하기 위하여 비료공장, 정미소, 철도를 건설하였고, 북한에는 산악지대에서 생산되는 지하자원을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건설하였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압록강에 수풍발전소를 지어 전기도 풍부하였다. 이처럼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의 몇 배나 되었다. 이를 믿고 김일성은 전쟁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소련과 중국의 지원도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이를 믿고 김일성은 6.25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남한에서 누구도 김일성을 환영하지 않았다. 1950430일부로 남한도 토지개혁을 완결하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을 환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북에서 재산을 잃고 내려온 월남민들이 김일성과 공산주의를 좋게 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전쟁에 실패한 김일성은 북한에서 완전한 공산주의를 실현하려 하였다. 방법은 자유의 억압이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성분제이다. 사람들을 핵심, 동요, 적대등 크게 3개 계층으로 분류한 뒤, 다시 이를 51개로 나눠서 차별해 왔다. 북한은 21세기가 되어서도 이러한 신분 계급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정식 국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성분제라니, 이게 웬 말인가.

북한이 자유를 억압하는 현주소는 화제가 되는 구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밤에 남한은 대낮과 같이 밝다. 경제발전이 잘 이루어져 낮과 밤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반면에 북한은 평양 이외에는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들은 전기도 없는 생활을 하더라도 김일성의 동상은 밤에도 불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직업에서도 북한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남한은 인구 5천만에, 직업은 약 3만 개에 이른다. 그러나 북한의 인구는 약 25백만이지만 직업은 겨우 3천 개밖에 되지 않는다. 부모의 직업을 따라야 하는 북한 사회 구조상, 다른 직업을 고를 수도,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없다.

자유의 소중함은 미국과 중국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또 자유로운 체제에 자부심을 느끼는 미국은 인구가 약 32천 명이나 48백 개의 대학이 있다. 개인이 자유롭게 대학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은 인구가 14억을 넘지만 대학은 겨우 26백 개밖에 되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한은 대학이 400개 가까이 되지만 북한은 50개가 채 되지 않는다. 핵심층 자녀들만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요, 적대층 자녀들은 능력이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없고, 핵심층 자녀들은 능력이 없어도 대학에 가니, 대학의 수준이 높을 수가 없다. 북한의 경제가 낙후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하루 인천공항에서 세계 각국으로 나가는 비행기가 480개 노선을 갖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일주일에 세 번씩 비행기가 뜬다. 그마저도 베이징을 향한 항로밖에 없다. 비정기적으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항로가 있을 뿐이다. 부산항에서는 인천과 여수항에서 산더미같은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세계 각지를 향해 떠나지만, 북한의 항구에는 고기잡이 목선밖에 없다.

한국에는 지하철이 수도권,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5곳에 있다. 특히 수도권의 지하철은 마치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있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북한에는 평양에 세 개의 노선이 있다. 천리마선, 만경대선, 혁신선이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21년 세계 여권 랭킹 순위에서 남한은 190점을 받아 독일과 공동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일본과 싱가포르다. 그러나 북한은 조사 대상이 된 199개 국가 중 109위에 머물렀다.

선생님은 말씀을 마치시면서 책 한 권을 소개해 주셨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은 1831년 미국을 연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 1835년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1839년 이 책을 집필했다. 결론은 자유가 미국을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의 유명한 말이 바로 자유의 산에 올라가면 평등이 보이지만, 평등의 산에 올라가면 자유가 보이지 않는다.”이다. 선생님은 질문하셨다. 자유와 평등이 어떻게 다를까? 아마도 자유는 민주주의이고, 평등은 공산주의이기 때문이 아닐까. 공산주의가 실패한 원인이 이 말에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아마 시간문제일 것이다. 자유를 억압한 나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이 우리와 같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유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 자유를 되찾는 방법은, 오직 남북한의 통일이 아닐까? 그날은 언제가 될까.

유튜브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자유에 대해 소중함을 느꼈다. 북한에서는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간다고 한다. 나와 같은 나이의 북한 친구들은 지금 군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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