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후폭풍과 한국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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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4-17 13:26:44
  • 분류 : 자유마당



‘광풍’ 몰아친 사회, 코로나19 후폭풍과 대한민국의 과제
 한국사회 지형 바뀐 경제, 사회, 일상의 지형도는?

        김동하 / 한성대 교수

세상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 광장은 텅 빈지 오래. 삶의 터전인 직장, 공장은 물론이고 학교나 공원도 멈춰서고 있다. 스포츠 현장의 열광과 환호도, 공연과 예술 현장의 생생한 감동도 모두 사라졌다.

머뭇거리던 WHO가 마침내 3월 11일(현지시각)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판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물론 감염의 대상을 전 세계로 넓힌 것일 뿐, 모든 사람이 감염되거나 죽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심리는 이미 감염의 충격을 품었다. 모이길 두려워하는 사람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강박증이나 기피증 환자들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일상이 됐다.

‘집콕’족(族), ‘언택트(비접촉)’이코노미 등 새로운 경제활동이 커지곤 있지만, 움츠러드는 시장을 잡기엔 역부족이다. 금리인하, 양적완화와 같은 세계 각국의 파격적 정책에도, 방황하던 시장은 이내 날개를 접고 추락했다.

벌써 3개월째. 생산과 소비 모두 느려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공포심과 시장의 위험신호는 바이러스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Global)을 외치던 세계 여러 나라들이 저마다 문을 닫아걸고 있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코로나 19의 광풍이 몰아친 우리 사회의 달라진 지형도를 짚어본다.

◆교육 문화 예술 종교 불문 ‘올 스톱’

‘연기’, ‘금지’, ‘폐쇄’, ‘격리’, ‘비상’, ‘봉쇄’ 등등.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 투성이다. 가장 국경이 느슨했던 유럽이 국경을 닫아걸었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각국들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리 없는 전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종교의 성역까지 번졌다. 1,2차 세계대전에도 열렸던 불교 집회가 1600년만에 처음으로 모두 중지됐고, 천주교는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했다.
신천지와 같은 변종 뿐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회에서 소금물을 뿌리면서 확진자를 늘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라는 형태로 의식을 바꿨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건, 감염과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어쩌면 더 클 수 있는 경제에 대한 공포를 함께 몰고 오기 때문이다.
 눈과 귀로 느껴지는 경제는 이미 공황수준이지만 아직 생산과 소비가 얼마나 줄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지난 2월 글로벌 제조업 PMI가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도 1월대비 크게 하락한 정도로 추정할 뿐, 3월부터 번져간 전 세계 경제의 충격파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프로’들의 세계 최대 격전장 미국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미국프로축구(MLS), 프리미어리그(EPL) 등도 모두 멈춰 섰다.
 공연, 뮤지컬, 전시회 등 문화예술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에서 연간 극장관람횟수가 4.37회로 가장 많은 한국의 극장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1월1일 하루 134만명을 모았던 극장은 하루 3만명 남짓한 관객을 받고 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이라는 쾌거가 있은 지 한 달도 못돼 스크린당 2-3명 관람하는 일이 빈번한, 그야말로 파리가 날리는 극장계가 돼 버렸다.
 
◆11년전으로 돌아간 증시... 달러품귀와 동학개미운동

19일 기준으로 코스닥과 코스피 시장은 고점대비 각각 36%, 38%하락했다. 코로나19로 신용위기를 맞은 외국인들은 비교적 크고 활발한 한국시장을 주된 ‘셀(Sell)’ 타깃으로 삼고, 주식을 팔아대며 유동성을 확보했다. 미국이 사실상 제로금리, 즉 달러 값이 0임을 선언하고 양적완화를 통해 달러를 뿌려댄다고 발표했지만, ‘달러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점증하면서 가치는 더 치솟았다. 달러 인덱스는 11년만에 100을 넘어서는 초강세를 보였고, 원달러환율 역시 11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금융위기 당시 연준의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발표 후 4개월간 원달러환율이 1200원대에서 1600원 가까이 치솟았던 점을 떠올리면, 환율우려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폭락에서 눈여겨볼 점은, ‘떨어지는 칼날’을 받아낸 쪽이 대부분 한국의 개미, 즉 개인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20일부터 3월 중순까지 외국인들은 코스피시장에서 14조원을 팔아치웠고, 개미들은 15조원 넘게 사들였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면서까지 한국 주식을 사들이는 개미군단은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특히 ‘부동산 불패’에 이은 ‘삼성전자 불패’를 외치며 한국의 대장주 삼성전자를 1개월간 6조원 넘게 사들였다.

동학농민운동은 국내외적 위기 속에서 아픈 결과로 끝났지만, 근대화로 이어지는 큰 계기가 됐다. 동학개미운동 역시 초기에는 폭락을 이기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위기는 회복되기 마련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다.

◆물보다 싼 석유... 집콕족, 언택트 이코노미의 시대

석유가 물보다 더 싼 세상을 상상한 적이나 있었을까. 코로나19 위기가 낳은 또 하나의 낯선 장면이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침체되고 원유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도 잠시, 두 산유국은 상대방 뿐 아니라 미국의 셰일가스 진영까지 무너뜨리려고 작심한 듯, 적자를 무릅쓰고 증산에 나섰고 국제유가는 18년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2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리터로 치면 150원 정도밖에 안 되는, 먹는 생수 값도 안 되는 원유값이 돼 버렸다.
 
코로나19가 낳은 낯선 경제활동은 ‘집콕족’, ‘언택트’이코노미라는 말로 대표된다. 집콕은 말 그대로 집에 콕 박혀서 일과 휴식,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언택트는 비즈니스 미팅이나 대면접촉 온라인으로만 하는 경제활동을 말한다.

어린이집과 초중고 개학 연기, 학원휴업 등이 지속되면서 각종 온라인 쇼핑몰의 장난감, 게임기 판매가 크게 늘었다. 시내 유명 백화점들은 봄 옷을 팔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온라인에 고스란히 내줬다. 구글 앱스토어의 쇼핑 카테고리 상위권은 쿠팡 등 소셜커머스로,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앱으로, 무신사 등 의류 온라인쇼핑 앱으로 순위를 바꿔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식업은 울상이지만, 집으로 배달하는 간편식과 신선식품 매출은 크게 늘었다. 오리온 쵸코파이만해도 온라인 매출이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극장은 텅 비어 있지만, 집에서 영화를 보는 VOD영화시청은 늘었다. 영진위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월말부터 5주간 케이블과 IPTV의 온라인 영화 이용건수는 전년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넷플릭스나 왓챠 등 OTT플랫폼을 합치면 실제로 영화 드라마 온라인 시청은 훨씬 많다는 얘기다. 

◆고통의 시간을 ‘디지털 혁신’의 기회로

정부, 기업, 가계 모두에게 낯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확실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많게는 백만원에 달하는 긴급생활비를 주는 일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항공, 관광, 공연 등 타격을 입은 업계에 제시한 정부의 지원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버티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착한 임대료’운동 역시 혹한기를 맞은 자영업자들에게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이 되고 있다.

이번 위기는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IT강국이라지만 공공분야에서는 그 말이 무색한 일들이 많다. 손소독제가 품귀지만 인감증명서를 받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대야하고, 재택근무를 권하면서도 법인인감증명을 하려면 정해진 장소의 단말기에 반드시 가야한다. 식사, 쇼핑, 엔터테인먼트, 공부, 업무 등 모든 활동이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자기임을 증명하려면 주민센터에 가서 줄을 서야하고, 그마저도 3개월 후면 무효가 된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만 정부가 배급하는 마스크를 사기위해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선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내는 지폐와 동전, 카드, 신분증 역시 여전히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다. 손은 소독할 수 있지만 지폐의 청결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 소독한다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가 타버린 사연도 있지 않았던가. 디지털 증명, 디지털 화폐를 위한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제도적 선택이다.
 
모든 위기는 극복되어야하고 극복돼 왔다. 위기 극복은 바이러스를 박멸하는데서 오지 않는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바이러스를 모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세상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 독일 국민의 70%까지 감염될 수 있다는 메르켈 총리의 말처럼, 미생물의 박멸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계절독감처럼 ‘평화로운 공생’을 모색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벌다보면 우리는 치료제 뿐 아니라 백신개발에도 성공해 있을 것이다.
 
시장은 공포로 뒤덮여있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희망적 뉴스는 머지않아 날아올 것이다. 그 때마다 시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안도의 환호를 보낼 것이다. 하락의 골이 깊은 만큼, V자형에 가까운 반등은 반드시 온다. 집콕, 언택트를 넘어 ‘존버’의 의지가 필요할 때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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