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 교착의원인진단과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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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8-04 16:06:46
  • 분류 : 자유마당

고유환(통일연구원장)

 

하노이 노딜의 충격과 그 후유증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본격화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정체되다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가동을 멈췄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우선의 한반도정책을 추진하면서 3번의 남북 정상회담, 2번의 북미 정상회담, 1번의 남북미 정상회동이 있었다. 급진전할 것 같았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난관에 봉착한 것은 무엇보다 하노이 노딜에서 근본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에 대한 남북미 각각의국내 구조의 반발, 미중 간의 패권경쟁, 코로나19 팬데믹 등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미 정상들이 나서서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교환하는 평화-비핵 교환협상이 본격화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20192월 말에 있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이 하노이 노딜을 결정한 것은 제재와 압박의 결과 북한 내부가 동요하고 있다는 정보 판단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관료들이 제재를 유지하면서 압박하면 북한이 굴복하거나 무너질 것이라고 보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딜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가 아프다는 북한의 비명을확인한 미국은 제재만능론에 빠져 남북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상응조치(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완화) 교환을 거부하고 노딜을 선택했다.


싱가포르 6·12 북미공동성명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이 어려웠던 것은 합의내용을 둘러싼 해석차이와 오독또는 의도적 무시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북한은 북미공동성명의 2항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3항 완전한 비핵화문제를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일괄타결 할 포괄의제로 생각한 것 같고, 미국은 합의내용을 연계된 포괄적 의제로 보지 않고 ‘4개의 기둥(four pillars)’이라고 하면서 완전한 비핵화우선론과 제재유지론을 폈다. 북미 사이의 이러한 접근방식의 차이는 현재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과 이를 재확인한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을 통해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이고 공고한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할 것을 염두에 둔 안보-안보 교환의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을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선신고·검증 등 추가적인 비핵화 행동을 요구하거나, 비핵화 범주에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WMD) 전반을 폐기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일괄타결식 빅딜안을 내놓았다. 하노이 노딜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추진력을 상실했다.


북미공동성명 채택 이후 선 행동 선순환에서 동시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착국면에 빠지자, 남북정상이 2018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서 북한이 추진할비핵화 초기조치 방안(영변핵시설 영구폐기)을 제시하고 미국의 상응조치(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완화)를 교환하는 남북합의안을 내놓았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이 합의한 비핵화 초기조치와 상응조치안을 북미 실무협상에서 구체화하여 2019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미국이 잠정합의를 깨고 빅딜을 제안하고, 북한이 제재해제를 요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교환하는 안보-안보 교환에 합의했지만,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기존 입장을 바꿔 비핵화와 제재해제를 교환하는 안보-경제 교환카드를 들고 나왔다. 199410월 제네바합의와 20059·19 공동성명이 동결 대 보상의 안보-경제 교환이었다면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은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체제와 미국이 우려하는 비핵화를 교환하는 안보안보 교환의 평화-비핵 교환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다시 안보-경제 교환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제재 해제를 교환하여 20184월에 당의 기본노선으로 채택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 최종목표(end state)를 밝히지 않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뒤로 미루고 제재를 푸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전반을 폐기해야 제재를 풀고 밝은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미국이 비핵화 초기조치와 제재해제를 교환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거부하고, ‘포괄적 합의-포괄적 이행의 빅딜을 요구하면서 하노이회담은 결렬됐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군사분야조치를 취하는 데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고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의 대가로 유엔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재가 아프다는 속내를 들켰고,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비핵화를 추동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지난 710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서 하노이 협상 당시에는 거래조건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제재의 사슬을 끊고 하루라도 빨리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도모해 보고자 일대 모험을 하던 시기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식대로, 우리 힘으로 살아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북미협상의 기본주제가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에서 적대시철회 대조미협상재개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대결의 장기화와 충격요법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때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자력갱생을 선언하고 장기전에 들어갔다. 북한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충격적인 실제행동새로운 전략무기 목격을 공언했지만,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 대신에 남한을 적으로 되돌려 놓고 대남강경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셈법을 바꾸려하거나,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장기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전략도발을 할 경우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군사옵션을 사용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위험부담이 큰 대미 전략도발 대신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충격요법을 사용하여 대미압박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연말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정면대결전을 선언하고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남측을 향해서는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뒷문을 열어두고 남북관계 진전을 모색했지만 제재국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지 못한 남측의 미온적인 대응과 북미관계에 올인한 북한의 선미후남으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20주년 다음날인 6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6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적은 역시 적이라고 주장하면서 화해협력·공존공영을 합의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을 부정하는 말폭탄과 함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전면적으로 단절됐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한 한반도 평화-비핵교환협상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보장이 이뤄진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조건부 비핵화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노딜은 평화-비핵 교환협상을 진전시켜 대외관계를 풀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을 좌절시켰다.


수령의 결정은 오류가 없다는 것이 수령체제의 내부논리인데 하노이 노딜로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은 상처를 입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일성으로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여 매지 않게 하겠다는 인민생활향상을 공약했다. 제재로 이를 실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내부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남강경노선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카리스마권력이 3대에 걸쳐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북미 적대관계, 남북분단 체제, 수령체제 등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위기 때문이다. 위기는 수령체제 유지의 영양소다. 북한은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수령체제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국면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수단 사용의 빌미를 제공할 대미 위기조성은 어렵다고 보고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대남 위기조성을 선택하여 대내 위기를 돌파하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한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을 진행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섰던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무오류성이 보장된 백두혈통이 나서도 되는 일이 없다는 인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확산돼 카리스마 권력의 리더십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북한지도부는 백두혈통으로 오는 불만을 남쪽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북관계 단절에 따른 부담 역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 수령이 나서서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면 이 또한 리더십에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다.

 

백두혈통의 역할 분담과 국면전환 가능성

북한이 모든 남북연락채널을 차단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그만큼 남측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623일 화상으로 진행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 계획을 유보하고 정세를 관망하기로 한 것은 남북합의 파기에 따른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 추가 상황악화를 막고 정세를 관리하고 있어 남북미 정상들 사이의 신뢰를 동원하여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만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대남강경 조치의 전면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나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력을 물려받은 백두혈통의 계승자가 조건부 비핵화론을 내놓고 대외관계를 풀고 경제발전을 모색했지만 오랜 구원관계인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남측에도 손을 내 밀었지만 미국의 견제로 손을 잡지 못했다. 북미 대결구도가 장기화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역할을 분담하여 김여정 제1부부장이 배드캅(bad cap: 나쁜 경찰) 역할을 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굿캅(good cap: 좋은 경찰) 역할을 하면서 상황반전의 기회를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710일 발표한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에서는 개인생각임을 전제로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여정 담화를 통해서 북한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 결정적인 입장변화”, “중대한 태도변화를 보이고, “수뇌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설 경우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반전을 노리려면 외교안보 라인의 전열정비와 함께 합의이행을 강조하고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 등을 화상 또는 대면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한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는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좌초할 경우 세 지도자 모두 리더십의 상처를 입을 것이다. 지금의 교착을 풀기 위해서는 남북미 정상들이 다시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미국대선 등을 고려한다면 대면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미 실무협상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고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를 추인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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