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의 민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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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5-06 16:37:12
  • 분류 : 자유마당

21대 총선의 민의는 무엇인가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인류에 대한 새로운 도전 속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매듭지었다. 21대 총선 결과는 명명백백한 숫자로 남았다. 전체 의원 수 300명 가운데 지역구가 253, 비례대표가 47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434만 표를 득표하여 득표율 49.9%163석을 얻었다. 지역구 의원의 64%를 얻은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1,191만 표를 득표하여 득표율 41.4%84석을 얻었다. 지역구 의원 수의 33%를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121석 가운데 85%에 해당하는 103석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가 말이 많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뀐 선거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18년부터 우리는 공직선거법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영하는 문제로 크게 혼란을 겪었다. 다양한 가치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소수 정당에게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양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어서 그 명분은 사라졌다. 우리는 잘 운영되지 않으면 어느 제도든 원래 취지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경험적 사례를 갖게 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살아남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는 새로 진입한 초선 의원이 151명으로 전체 의원의 50%를 넘겼다는 것이다. 초선 비율이 50%를 넘긴 경우는 2004년 임기를 시작한 17대 국회(62.5%) 이후 처음이다. 초선 의원이 크게 늘면서 국회 운영이나 각 정당의 정치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초선 의원은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기대를 받곤 했지만,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선수(選數) 높은 선임 의원과 당론에 순응하는 행동대원 역할만 한 경우도 많았다.

선거에 대한 교과서적 해석에 따르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민의를 묻고 확인하는 장이라고 하지만, 이번 선거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높은 총선 열기는 28년 만에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4,400만 유권자 가운데 2,912만 명이 마스크를 하고 비닐 장갑을 끼고 투표에 참여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마음과 기대로 투표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들의 집단 의지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아, 선거 후에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민의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칫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흐르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도 그동안 논쟁과 정쟁의 대상이 되었던 개별 정책들에 대해 국민의 찬반을 확인하는 마당은 되지 못했다. 모든 선거에는 여러 가지 정책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번 선거 역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찬반이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 19라고 하는 공동 재난이 닥쳐, 국민이 정책에 관심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구해 온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현 정부가 추구해 온 가치와 정책에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다.

이번 선거가 초래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야당의 궤멸이다. 민주주의에서 야당은 반대당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독주를 견제하고, 대안 세력으로 존립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필수적이다. 공산주의의 일당독재나 민주주의에서의 압도적 승리는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권위주의 시대에는 인위적으로 한 정당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적이 있지만, 민주화 이후 국민의 선택을 통해 압도적으로 일당 체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는 기회이면서 위기다. 180석 거대 여당의 탄생으로 정부 여당은 개헌을 제외하면 아무거나 할 수 있게 되었다. 합의가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선거를 전후해서 여권의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 토지공개념 도입과 같은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쟁점들의 실현가능성을 공개하였다. 정부 여당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할 수는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우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가 코로나라는 위급 상황 때문에 잠시 잊었던, 코로나가 불러온 새로운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봉착한 경제적 위기다. 이 위기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자영업자나 경기 부진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순간적인 마음의 위로는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이 더 심각하다. 우리는 상호의존도가 높아진 세계화 시대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도 현실이다.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의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경제 문제는 국가의 간섭과 개입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언제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할 수 있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 정부는 이런 자신감을 어느 정부보다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여론을 조성할 세력이 이번 선거에서 궤멸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축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선거도 끝나고 보통 사람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 투표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기대를 접어서는 안 된다. 루소는 의회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었던 영국을 보고, “영국 인민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의회 구성원을 선출하는 동안만 자유롭다. 선출이 끝나면 그 즉시 인민은 노예이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일단 뽑히고 나면 뽑아준 사람을 잊기 십상이다. 또 정치를 하려면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4년마다 한 번씩, 5년마다 한 번씩 자주 돌아온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2년도 남지 않았다. 정치인이 이것을 잊는다면 정치인 자신이나 국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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