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문화의 혁신화로 달라지는 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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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10-05 09:46:31
  • 분류 : 자유마당

병영문화의 혁신화로 달라지는 군생활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 인식하고 대우해야

 

최병욱(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D.P.로 불지펴진 병영문화

넷플릭스의 웹드라마 “D.P.”의 인기가 높다.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DP)를 소재로 한 것인데, 탈영의 과정에서 묘사되는 병영 내 잔혹한 가혹행위가 화제다. D.P.2014년 강원도의 한 육군 헌병 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군대 내 가혹행위는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실제로 예비역 남성들 사이에서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것 같다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2014년은 육군 28사단에서 후임병을 구타해 숨지게 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22사단에서 집단 따돌림 등을 견디지 못해 무장 탈영한 병장이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해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급기야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드라마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D.P.가 태국·베트남·영국 등 해외에도 방영되는 데다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확산될까 우려돼서다. 국방부 부대변인은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 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라며 7년이 지난 현재의 병영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극화된 묘사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발표와 같이 지금의 병영문화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D.P.의 맥락과는 정반대로 군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인권과 기본권의 강조, 평일 외출, 위수지역 완화, 동기 생활관, 핸드폰 사용 등 군이 이래도 되는지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오래전 군 생활을 기억하고 있는 기성세대에겐 이런 변화된 군의 모습이 낯설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체로 본격적인 병영문화 혁신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군은 1987년에 구타금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했고 1990년대 들어서 집합과 얼차려, 암기 강요, 지시, 군기 교육 등 병 5대 금지사항을 명문화했다. 1999년에는 신 병영문화 창달계획

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하달했다. 그러나 20051월에 발생한 육군훈련소 인분사건과 그해 6월의 GP 총기사건은 군 내부만의 노력으로는 병영문화 개선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민관군 전문가들로 구성된 병영문화개선위원회가 출범했고 선진병영문화 Vision’을 수립했다. 2008년에는 군에서 발생한 잇따른 안전사고와 병영사고를 줄이기 위하여 군재조형(Military Reshaping)’ 과제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1년 해병대에서의 총기사고와 육군 부대의 가혹행위 사건을 계기로 군에서의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의 실효성 여부에 또 다시 의구심이 증가되었다. 이러한 의구

심을 해소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국방부는 병영문화선진화추진계획을 수립해 발표했다. 그런데 2014, 위에서 언급한 윤 일병, 임 병장사고는 국방부로 하여금 또다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으며, 이 위원회를 통하여 다양한 혁신과제가 발표되고 추진됐다.

군은 현재 국민이 신뢰하는 병영문화 정착을 목표로 건강하고 안전한 병영’, ‘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병영’,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 ‘자율과 책임이 조화된 병영’, ‘기강이 확립된 병영을 표방하며 병영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에 평일도 외출 가능해져

긴 여정의 병영문화 혁신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병영생활, 병영문화는 외면적으로는 사뭇 달라졌다. 병영문화와 장병들의 군 생활 변화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에어컨이 나오는 분대 단위 침대는 소대 단위 침상 생활을 했던 부모 세대에겐 놀랍다. 이런저런 이유로 군의 불량급식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밀리터리 버거가 군대리아로 인기리에 시판되고 있고, 패딩형 동계 점퍼가 병 개개인에게까지 보급되는 것을 보면 시설, 급식, 피복 등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 봉급 인상도 가파르다. 필자가 소대장으로 복무했던 1986년도 병장의 봉급은 4,900원이었다. 지금으로 따져도 고작 몇만 원 수준이다. 부모가 주는 용돈이 있어야 군 마트(PX)를 이용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가히 애국페이라 할 만하다.

올해 병장의 봉급은 61만 원이다. 헌신에 견줄 수는 없지만 장병 내일적금으로 개인별 월평균 30만 원 정도를 붓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놀라운 변화다.

무엇보다 혁신적 변화는 2019년에 시작된 휴대전화 사용과 평일 외출이다. 과거 군 생활을 기억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병사들은 군 복무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고, 평일에도 외출이 가능하다. 외박은 제한지역이 폐지되어 부대를 상당 부분 벗어나 원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제한은 있다. 휴대전화는 촬영과 녹음기능을 사용할 수 없고, 보안 취약구역을 제외한 공간에서, 일과 후에만 사용할 수 있다. 외출은 휴가자를 포함하여 부대병력의 35%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월 2회 이내로 횟수를 제한했다. 외박은 지역제한의 기준을 거리가 아닌, 복귀 소요시간으로 하되 현지 여건을 고려하여 부대 지휘관이 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평일 외출은 잠정 중지된 상태다.

 

달라진 병영생활로 구조적 악습 감소

달라진 병영생활, 병영문화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주장으로부터, 군 기강 해이와 안보에 대한 우려까지 평가가 상이하다. 모든 변화와 혁신이 그렇듯 병영생활의 현격한 변화 또한 위험의 소지는 있다. 그러나 군 기강 해이, 전투력 약화, 안보 해체 등 군에 총체적 위기가 도래한 것처럼 군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아가 기강이 시퍼렇게 살아있던예전의 군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더욱 위험하다. 집단적 사고의 오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군에서 휴대전화까지 쓰게 한다는데, 그런 군대가 어디 있느냐는 기성세대의 질문은 단적인 예다. 모병제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싱가폴, 터키 등 징병제 국가 거의 모든 국가에서 휴대전화 사용은 이미 일상적이다. 강군으로 상징되는 대표적 징병제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점호조차 없다. 시대가 변했고, 군도 변화하고 있다. 예전 군대의 군기가 외적인 군기와 일방적 복종을 상징했다고 하면, 요즘 군대의 군기는 임무수행의 마음가짐과 적극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전쟁의 양상이 너무도 변했기 때문이다. ‘전략적 수준의 병사’(strategic corporal)를 강조하는 미국의 모습과 군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식의 강압적 군대를 강조하는 우리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바람직한 병영문화는 무엇인가? 대체로 한 국가의 병영문화는 시대의 보편적 가치, 전장 환경의 특성을 반영한다. 예컨대 고대 로마시대에는 상급자, 지휘관은 적보다 두려운 존재여야 했다. 그래야 사각형의 밀집대형인 팔랑스에서, 공포와 무서움 속에서도 이탈하지 않고, 대형을 유지한 채 전진할 수 있다. 지금의 전쟁양상은 과거와 판이하다. 과학기술과 무기체계의 발전으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조차 어렵다. 한반도 안보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장병 개개인의 역량과 판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피복과 장비를 포함하여 개별 병사 그 자체를 하나의 무기체계로 보는 워리어 플랫폼의 발전은 이를 상징한다.

요즘 군대, 정말 엉망인가?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자료를 통해 비쳐진 우리 군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1980년도 병력은 약 70만이었다. 지금의 병력은 약 60만이다. 군기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고 간주되던 1980년도 군내 연간 사망자는 970명이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사망자는 86명이다. 이 중 자살자는 1980년도에는 391, 2018년에는 56명이다.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980년도 473명이었고, 2018년에는 26명이었다. 탈영은 1995년도에 2,074명이었던 반면 2018년에는 122명이다. 수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병사가 소대장을 집단으로 구타했던 1994년의 소대장 길들이기 사건’, 육군훈련소에서 발생한 2005년의 인분사건’, 장병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4년의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등 지난 시절 발생한 대형사고를 생각하면 지금의 군대는 분명 변화하고 있다. 개인적 일탈은 있을지언정,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와 같은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병영악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지난 5, 성추행 피해자 공군 부사관의 안타까움 죽음과 연이어 발생한 동일한 유형의 해군 부사관의 극단적 선택은 우리 군의 병영문화가 여전히 후진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군의 조직문화, 병영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혁신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병영문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국방부 장관을 접견하고 환담하는 자리였다. 기념촬영을 마친 20대 초반의 여군병사가 장관실 한쪽 소파에 앉아 환담 내내 아주 편안한 자세로 졸기 시작했다. 우리 방문단을 줄곧 따라다니며 안내 하던 병사다. 혹시나 혼이라도 날까 걱정되어 참석한 군 관계자에게 농담 반 선처를 부탁했다. 한참 만에 내놓은 답변은 진지했고 놀라웠다. ‘사진병이 사진촬영을 마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와는 상황과 여건이 다르긴 해도 곱씹어 생각해봐야 할 강군 병영의 한 단면이다.

 

자발적 충성과 민주적 가치 내재화가 강군 병영의 초석

미래의 전장 환경은 창의력이 중시되고, 수평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의 조직문화가 필수적이다. 군의 조직과 문화도 이에 걸맞게 진화·발전하여야 한다. ‘병영문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 이래 수많은 개혁이 추진되었지만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군과 군인의 정체성, 바람직한 병영문화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를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 ‘자율과 책임이 조화된 병영’, ‘기강이 확립된 병영’, ‘국민의 군대에 대한 개념이 지휘관마다 상이하고, 병사에 이르기까지 올바르게 공유되지 않을 경우 병영문화 혁신은 요원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군 장병을 제복 입은 시민(citizen in uniform)’으로 대우하고 육성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복 입은 시민은 자의식이 충만하고, 행위의 주체로서 주도성을 발휘하며, 자발적 충성과 민주적 가치가 내재화된 군인이다. 군과 우리 사회가 장병들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올바르게 인식하고, 제복 입은 시민에 적합한 복무여건과 환경을 조성할 때 비로소 병영문화 혁신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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