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판 철의 장막, 러시아 인터넷 ‘루넷’(Runet)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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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4-10 11:09:39
  • 분류 : 자유마당

21세기판 철의 장막, 러시아 인터넷 ‘루넷’(Runet) 구축
미국-러시아 간 디지털 신 냉전 체제 가능성도…

‘철의 장막’(Iron Curtain)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가 옛 소련의 서방국가들에 대한 엄격한 폐쇄성을 비판
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1946년 3월 5일, 미국 미주리
주 풀턴의 웨스트민스터대학 명예학위 수여식에서 처칠
은 “발트해의 스테틴으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
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내
려지고 있다”면서 옛 소련의 폐쇄정책을 강력하게 비판
했었다.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진영
과 공산진영 간의 ‘냉전’(Cold War)의 시작을 알리는 유
명한 말이 됐다.
디지털 경제 국가계획 법안,
러 하원 무난한 통과 예상
러시아 정부가 과거 냉전 시대의 철의 장막처럼 ‘21세
기판 디지털 장막’(Digital Curtain)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자국 인터넷망의 해
외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는 인터넷 규제법을 제정할 계
획이다. 러시아 정부의 이런 구상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지난해 12월 러시아 의회
하원인 국가두마에 ‘디지털 경제 국가계획’이라는 법안
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다른 국가의 사이버 공격을 막
기 위해 러시아 인터넷망의 해외 접속을 차단한다는 내
용으로 돼 있다. 말 그대로 ‘러시아만의 인터넷’인 루넷
(Runet)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루넷은 러시아와 네트워크의 합성어이다. 러시아 의회
는 3월 7일 이 법안을 1차 독회(讀會)에서 찬성 334표,
반대 47표로 통과시켰다. 러시아 하원에선 법안을 3차례
독회와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다. 통합러시아당의 의석이
과반수를 넘기 때문에 3차례 독회까지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상원의 표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
명하면 이 법안은 발효된다. 이 법안은 러시아의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들이 외국의 인터넷망 접속 차단시에
도 작동하는 자체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을 구축하도
록 하고 있다. DNS는 특정 웹사이트로 사용자가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이 법안은 또 러시아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는 모든 트래
픽을 통신감독 기관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zor)
가 통제하는 경로로 전송하고, 웹 트래픽의 출처를 규
명하고 금지 콘텐츠를 차단하는 네트워크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러 정부, “미국의 ‘국가 사이버 전략’에
대응하는 자위적 조치다” 설명
러시아 정부가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
은 미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9월 20일 기존의 방어 전
략에서 공격적 전략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국가 사이버
전략’(National Cyber Strategy)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사이버 위험 국가
로 지목하면서 어떤 국가든 미국과 동맹국들에 악의적
인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면 적극 대응하겠다고 천명했
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새 전략의 궁극
적인 목표는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적들에
게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는 억제력을 보유하
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의 입장은 미국 정
부가 ‘국가 사이버 전략’을 통해 자국의 인터넷을 글로
벌 인터넷망과 단절시키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위
적 조치로 ‘디지털 경제국가 프로그램’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 인터넷과 글로벌 인터넷망의 연결
을 일시 차단하는 실험까지 실시할 계획이다. 이 실험은
외부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받았을 경우 방어 체계가 어
떻게 운영될지 측정하는 보안 테스트로, 방어 시스템이
‘디지털 경제국가 프로그램' 법안에 부합하는 지를 평가
한다. 로스콤나드조르는 이 실험에서 러시아 사용자 간
에 주고받은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재전송되지 않고 국
내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이는 ISP
가 데이터를 정부가 통제하는 접속경로(라우팅) 지점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내에서 이동하는 데이터는 목적지에 도달
하도록 트래픽(데이터의 흐름)을 필터링하지만 외부로는
도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식 ‘만리방화벽 구축’이란 비판 면치 못해
하지만 서방 언론들과 인터넷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
부가 이 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숨은 속내가 있다고 지
적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만리방화벽’(Great Fire Wall)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만리방화벽은 만리장성(Great Wall)
과 컴퓨터 방화벽(fire wall)을 합성한 용어이다. 만리방화
벽은 중국 정부가 1998년 금순공정(金盾工程)의 일환으
로 추진해 2003년 완성한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말한
다. 방화벽은 그동안 외국의 인터넷이나 SNS의 접속을
차단하고 ‘톈안먼’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민감한 정치적
단어나 내용들을 검열을 통해 삭제해왔다.
중국 정부는 사이버 보안법까지 제정해 인터넷에 대
한 통제를 강화해왔다. 이 법의 핵심 규정은 중국 정부
가 외국 인터넷 기업들의 자국내 서비스 활동 일체를 검
열,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들은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과 합작일 경우에만 뉴스
등 핵심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외국 기업들은 또 국가
안보 등과 관련이 있을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중국 정
부에 기술 지원과 수사협조를 해야 한다. 외국 기업들
은 이와 함께 이용자의 실제 신분 정보를 제공해야 한
다. 이 법에는 중국 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외
국 기업의 재산 동결과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규
정도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외국에서 들어오는 인터
넷 정보를 규제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돌발 사태가 발생할 경우 특정지역의 인터넷 사용
을 제한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 정부가 디지털 경제국가
프로그램이란 법을 제정하려는 진짜 속셈은 중국 정부
처럼 인터넷 통제를 강화해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
치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 통제해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 강화 속셈 드러내
이 때문에 러시아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은 3월 10일
정부의 인터넷 통제 강화 계획에 반발해 수도 모스크바
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
였다. 시위대는 정부의 인터넷 통제 조치들이 러시아 인
터넷망을 세계적으로 완전히 고립시켜 북한의 인터넷처
럼 운영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시위대는 정부
가 구축하려는 루넷을 푸틴 대통령의 이름을 빗대 ‘푸틴
넷(Putin net)’ 이라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시위를 주도한
러시아 자유당은 “러시아는 북한이나 이란과는 다른 문
명화된 국가”라며 “인터넷 검열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복잡하고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베리아 지역
의 인터넷 자유 활동가인 세르게이 보이코는 “푸틴 정
권은 인터넷 자유를 포함해 모든 자유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방 언론들도 푸틴 정권이 냉전시대
의 철의 장막처럼 일종의 ‘디지털 장막’을 세우려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가짜뉴스 확산 시 개인 최대 10만 루불,
법인 최대 50만 루블 벌금 물려
러시아 정부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각종
인터넷 통제 조치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러
시아 국가두마가 3월 5일 세 차례 독회를 거쳐 통과시
킨 가짜 뉴스 방지와 관련된 두 개의 법안을 들 수 있다.
첫 번째인 가짜뉴스 금지 법안은 인터넷상에서 국민
의 생명이나 건강, 자산, 사회 질서 및 안전 등에 위협
이 될 수 있는 허위 정보를 고의로 확산시키는 것을 금
지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검찰은 인터넷 매체에서 이런
정보들이 발견되면 로스콤나드조르에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하고, 로스콤나드
조르는 즉각 인터넷 매체에 해당 정보 삭제를 요구하도
록 한다는 것이다.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인터
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해당 매체에 대한 인터넷 접근을
차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짜 뉴스 여부와 그 위험도
는 검찰이 결정하고 관련자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또 고의적으로 가짜 뉴스
를 확산시킬 경우, 개인은 최대 10만 루블(170만 원), 법
인은 최대 50만 루블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또 허위 정보 유포로 사람이 숨졌거나 자산 손실, 사
회 질서 및 안정 훼손 등의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을 경
우, 개인은 최대 40만 루블, 법인은 최대 150만 루블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최대 15일의 구금형에 처할 수 있
다. 이 법안을 발의한 통합러시아당의 레오니트 러빈 의
원은 “가짜 뉴스는 누군가의 삶, 건강 혹은 재산에 피해
를 준다”며 “대규모의 무질서와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러, 미국의 페이스북, 트위터도 처벌 방침
미, 러의 인터넷 통제 강화에 강력 반발
두 번째인 공공기관 모욕 금지 법안은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도덕관념을 비속한 방식으로 모욕하거나, 사회·
국가·국가 상징·헌법·공공기관 등을 노골적으로 멸시
하는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
다. 이 법안은 검찰은 인터넷상에서 그런 콘텐츠를 발견
할 경우 로스콤나드조르에 통보해 해당 콘텐츠를 삭제
하거나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
하고 있다. 처벌 규정도 가짜 뉴스 방지 법안과 비슷하
다. 이 법안을 적용하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
를 인터넷을 통해 조롱할 경우 처벌 받을 수 있다. 러시
아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두 개의 법안 내용들이 모호해
남용 위험이 있으며, 반정부 성향의 언론에 대한 탄압에
악용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푸틴 대통령
이 3월 18일 상원에서도 통과된 이 법안들을 서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4월 암호화 메신저 서비스인 독
일의 ‘텔레그램’ 접속 차단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 정부
는 메시지 암호화 해독 열쇠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텔레
그램이 응하지 않아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
혔다. 러시아에서 텔레그램 사용자는 1000만여 명에 달
한다. 러시아 정부는 또 미국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대
해 자국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서버를 자국으로 이전하
라는 법률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처벌할 방
침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러시아 정부의 인터넷 통제
강화 움직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론 와이든 미국
상원의원은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어떤
조치도 규탄한다”고 밝혔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디지
털 분야에서도 주권이 강해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인터
넷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무튼 미국과 러시
아의 신냉전 기류와 맞물려 앞으로 ‘디지털 냉전 체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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