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보내며

  • No : 1784
  • 작성자 : 한국자유총연맹
  • 작성일 : 2017-09-01 14:58:23
  • 분류 : 자유마당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보내며

신중섭 |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광복절 날 급한 볼 일이 있어 차를 가지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평소와 달리 조금 달리자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시속 10Km에도 못 미치는 속도를 참지 못하고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목적지에 도달했다. 평소보다 3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고속도로에 차를 몰고나온 사람들은 모두 소통이 원활해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목적지로 달려가길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차를 몰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교통정체의 원인이 된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의 행동에서 나온 것이다.

도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집이 필요해 집을 찾아 부동산 시장에 나가면 그 행위 자체가 집값 인상의 원인이 된다. 집을 사겠다고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고 수요 창출은 공급에 영향을 미쳐 부동산 가격을 오르게 한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진다. 이것은 시장 참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집을 사려는 행위 자체가 집값을 올린다.

이처럼 우리의 행동은 원하지 않은 결과를 산출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블라인드 채용’ 정책을 발표하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분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증명사진의 수요를 없애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이유는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해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함이다.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정책은 동네 사진관 운영자들의 생계를 위협할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세상의 일들은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의도로 행한 행위가 그렇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체험한다. 동기가 좋으면 결과의 해악에 관대해야 한다는 동기주의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결과만 좋으면 동기나 과정이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결과지상주의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책임있는 행동으로 보지는 않는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공인의 행동이나 정책은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행한 정부 정책이라 할지라도 그 정책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 정치’다.

‘책임 정치’에 대한 강조는 정부가 책임이 무서워 아돼무 일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무서워 손 놓고 있는 정부를 우리는 무책임 또는 직무 유기의 정부라 부른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정부도 염려스럽다. 무능하면서 의욕이 넘치는 정부는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정치는 힘든 것이다. 평화 시에 정치의 역할은 사회를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많은 국민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가 완전한 사회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무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인간의 힘 밖에 있다. 우리는 현명한 노력을 통해 좀 더 살만한 세상을 겸손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정책 결정과 시행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선택할 때 그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해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긍정적인 결과는 최대한으로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를 공개적으로 시행하고 그 논의의 결과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책 담당자 집단의 열린 마음과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반대자가 없는 정책 반대자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책이 가장 위험한 정책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책의 결과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타날 수 있도록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의도했던 결과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정책을 폐기 또는 보완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입안한 정책을 보호하기에만 급급하면 정책 실패는 더 커진다. 정책입안자는 자신의 정책에 대해 엄격한 비판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자신의 정책이 의도한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에만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 번째는 많은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 동시다발적 시행은 사회적 관심을 분산시켜 정책에 대한 충분한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만 부각됨으로써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돼 실패한 정책을 폐기하거나 실패한 정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의욕적인 정책의 동시다발적 시행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8월 17일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모두(冒頭) 발언은 ‘국민’으로 시작해 ‘국민’으로 끝났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 덕분에 큰 혼란 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로 시작해 “국민 여러분이 국정운영의 가장 큰 힘이다. 국민과 함께 가겠다”로 끝났다.

지난 100일 동안 문재인 정부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말과 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많은 정책들이 ‘비판과 토론’에 만족스럽게 노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 더 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또 사라져 가면서 잊혀질 것이다. 정부가 좀 더 신중을 기하면서 반대자들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면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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