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의 평택 시대 개막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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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7-02 16:20:45


한미연합사의 창설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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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년 북한이 남침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
한의 침략을 규탄하면서 미국 주도의 통합군사령부
창설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국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으
로 참여하는 모든 군대는 유엔군사령부(UNC)의 작전통
제를 받았다.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CFC:
Combined Forces Command)가 창설되기 전까지 한국 방
위의 주체자이자 정전협정 체결의 당사자로서 정전협정
의 준수 및 집행을 책임져 왔다.
그러나 한미연합사가 창설되자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의
기능과 역할이 조정됐다. 유엔사는 주로 정전협정과 관
련된 기능과 역할만을 수행하고,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
고, 억제 실패 시 외부의 무력공격을 격퇴하는 한국 방위
에 대한 임무는 한미연합사가 맡게 됐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은 왜 한미연합사를 창설하게 되
었을까? 한미연합사의 창설 배경은 크게 미국 변수, 국제
변수, 그리고 한국 변수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 미국 변
수는 닉슨 독트린이 결정적이다.
1969년 7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괌에서 미국의 대외
정책을 발표했다.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베트남전
의 베트남화’가 추진됐고 한국에서도 ‘한국 안보의 한국
화’가 추진됐다. 닉슨 독트린에 의해 1970년 초 2만 명 규
모의 미 제7사단이 철수했고 1971년에는 휴전선에 배치
되었던 미 제2사단마저 동두천·의정부 방향으로 재배치
됐다. 이렇게 되자 유엔사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기 시
작했고 유엔사의 해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유엔 총회에서의 동서 진영의 표 대결이라
는 국제적 변수였다. 닉슨 독트린에 의해 동서 간에 데탕
트가 형성되자 수많은 식민지들이 독립과 동시에 유엔의
회원국이 됐다. 이들의 성향은 반 서구적이었다. 동서 진
영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었던 비
동맹운동(NAM: Non Alignment Movement)도 반서구적인
경향을 띠었다.
1975년 베트남과 북한이 NAM의 회원국이 되자 북한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유엔 총회 투표를 통해 유엔사
의 해체와 외국군 철수를 끌어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동
서 진영은 1975년 제30차 유엔 총회에서 첨예하게 표 대
결을 벌였고 그 결과 서방측 안과 공산측 안이 동시에 통
과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서방측 안인 GA3390-A 결의는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대화 촉구, 항구적 평화 보장 위한
교섭 희망, 정전협정 유지 위한 적절한 방안 및 유엔사 해
체를 위한 초기 조치로서 조속한 시일 내에 협의 시행 촉
구, 그리고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도
록 정전협정 유지 위한 대안 마련 희망 등이었다.
이에 반해 공산측 안인 GA3390-B 결의는 유엔사 해체
및 남한에 주둔하는 외국군 철수 필요, 정전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 촉구, 그리고 군비증강 중지 등 항구적 평
화 유지 촉구 등이었다. 총회의 결의안은 안보리 결의안
과 달리 강제성이 없긴 하다. 또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결의안이 동시에 통과되었기에 총회의 한계를 보여주기
도 했다.
세 번째는 한국 국내 변수였다. 북한이 1968년 1.21사태
와 울진·삼척에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을 일으켰음에
도 불구하고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자 한국의 안
보 불안감은 커졌다. 한국은 주한미군 철수 불가에 대한
국회결의와 내각 총사퇴 불사론까지 내밀었지만 제7사단
의 철수를 막지 못했다. 게다가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되고 유엔 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가능성이 등이 논의되
자 한국의 안보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국의 입장
에서 보면, 최악의 경우 유엔사가 해제되더라도 이를 대
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가 필요했다. 결국 한미는 미군
과 한국군만의 통합사령부 창설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미연합사의 창설과 지휘구조의 변천
한·미 양국은 1977년 7월 제1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의(SCM: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에서 한미연합사 창
설에 합의했다. 이듬해인 1978년 7월에는 제11차 SCM
읕 통해 연합사의 상부 기관이자 양국 간의 상설 군사협
의기관인 한미군사위원회(MC: Military Committee)를 설
치했다. 한미군사위원회의 회의가 바로 MCM이다. 연합
사의 창설로 인해 한·미군의 지휘체제도 변했다. 최상위
기구는 한미 양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
National Command and Military Authority)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래에 SCM이 있다. SCM은 NCMA에서 설정한 정
치적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군사력 운용에 관한 일반적
인 지침, 즉 전략지침(Strategic Guidance)을 발전시킨다.
SCM 아래에 한·미군의 최고 군령기관인 MC가 있다. MC
는 SCM에서 결정된 전략지침을 발전시켜 연합사령부에
전략지시(Strategic Directives)를 하달한다. 연합사는 전략
지시 제1호에 의해 창설됐다.
1994년에는 연합사의 한국군에 대한 전·평시 작전통제
(Operational Control)권 행사가 분리됐다. 1994년 제26차
SCM의 전략지침과 제16차 MCM의 전략지시 제2호를 통
해 평시 작전통제권이 연합사에서 한국 합참으로 전환됐
다. 비록 한국 합참의장이 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한 연합
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이 있
긴 하지만 한국 합참의장은 1994년 12월 1일부로 연합사
령관이 행사하던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통권을 행사하게
됐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의 한국군에 대한 지
휘체제를 요약해 보면, 유엔군사령부에 의한 작전
지휘(1950~1953) → 유엔군사령부에 의한 작전통제
(1954~1977) → 한미연합사령부에 의한 작전통제
(1978~1993) → 한국합참은 평시 한국군 작전통제/한미연
합사령부는 전시 한국군 작전통제(1994~)로 변화됐다. 이
는 한미연합사의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 역할이 점점 축
소되고 합참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한국 정부는 한국군이 한국 방위
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6년 9월, 한미정상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
통제권(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부로 국군에게 전환하
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 합의 이후 북한의 제1·2차 핵실
험, 미사일 발사, 천안함 피격 등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자
한·미 정상은 2010년 6월, 전작권을 2015. 12. 1부로 연기
하여 전환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등장과
함께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 등을 단행
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2014년 4월, 한미 정상은 전작권 전환 재검토에 합의한 후
그 해 10월 개최된 제46차 SCM을 통해 시한(時限)이 아니
라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2018년 10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50차 SCM에서 양
국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 이후의 연합방위 지침
(Guiding Principles following the Transition of Wartime
Operational Control)’에 대해 합의했다. 핵심 내용은 미래
한미연합사가 현재 한미연합사의 기능과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되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령관이 되고 미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이 된다는 것이다. 예하의 구성군사령부
와 참모부도 현재와 똑같이 편성된다. 이로써 전작권은 전
환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신 연합사의 본부는 어디에 위치하
게 될까? 2017년 제49차 SCM에서 연합사 본부를 미군 용
산 기지에서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는 방안이 검토됐고 그
이후 양해각서(MOU)까지 체결됐다. 국방부도 2018년 국
정감사에서 12월부터 연합사의 국방부 용지 내 이전을 추
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 연합사의 사령관직은
한국 합참의장이 겸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그러나 2019년 6월 3일 한국을 방문한 섀너핸(Patrick M.
Shanahan)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과의 회담에서 신 연합사의 위치와 사령관직이 변경됐다.
신 연합사는 현재의 유엔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제8군 사령부 등이 위치해 있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Camp Humphreys)로 옮기고 사령관은 전작권 전환 후 한
국 합참의장이 겸직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한국군 4성
장군을 보직한다는 것이다.
‘신 한미연합사’의 평택 시대 개막
사실 신 연합사의 평택 이전은 2018년 11월에 부임한 연
합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 그리고 주한미군 사령관인
에이브람스(Robert B. Abrams) 대장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
다. 에이브람스 사령관의 주장 이후 한미 양국은 작전 효
율성, 임무 여건, 이전 시기, 비용 등 대략 여섯 가지 정도
의 항목을 가지고 국방부 영내 이전과 평택 이전에 대한
유·불리점을 검토했다.
그 결과 과반수의 항목에서 평택 이전이 더 낫다는 결
론에 이르게 됐다. 신 연합사가 평택으로 이전하게 되면
당연히 합참의장도 신 연합사령관직을 겸직할 수 없다.
업무 부담도 업무부담이지만 서울과 평택을 오가며 업무
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연합사의 평택 이전은 미
군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측면이 있는 반면, 신 연합사의
사령관직은 한국군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신 연합사가 옮겨 갈 캠프 험프리스의 전체 부지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5.5배로 미군의 해외기지 중에서 최대 규
모이다.
신 연합사는 이미 평택에 둥지를 튼 유엔사 및 주한미
군사, 그리고 제2사단과 함께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한국
방위의 핵심 지휘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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