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외환보유고 / 박유연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 No : 271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2-03 13:34:49
  • 분류 : 자유마당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골칫거리 되는 ‘외환보유고’ / 박유연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10월 말 외환보유고가 4063억 2000
만 달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
다. 외화곳간이 늘었다는 소식이라
반갑게만 들리지만 명암이 존재한다.
한은의 힘, 외환보유고
외환보유고는 한국은행(이하 한
은)이 확보해서 관리하는 외환을
의미한다. 한은은 경상수지 흑자
등을 통해 국내로 외환이 유입되면
이를 흡수해 외환보유고로 쌓아둔
다. 이렇게 외환보유고를 쌓았다가
필요할 때 쓰게 된다.
외환보유고의 시작은 수출기업이
다. 수출기업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많이 내놓으면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서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
이 커진다. 환율이 하락하면 앞으로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지금 수출을 많이 한 것이 미
래 경쟁력 약화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때 한은이 나선다.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인다. 그러면
시중에 돌아다니는 달러 유통량이
줄어들어, 환율 하락세가 진정된
다. 한은은 이렇게 사들인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쌓게 된다. 요악하면
환율 하락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외
환보유고가 늘어나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로 보관해둔 달러는
급할 때 쓴다. 환율이 지나치게 많
이 오를 때 사용하는 것이다. 환율
은 너무 크게 올라도 좋지 않다.
이는 자칫 위기로 이어질 수 있
다. 이를 막기 위해 한은은 외환시
장에 달러가 부족해서 환율이 크게
오르면, 외환보유고로 갖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풀어 달러를 공급한
다. 그러면 시중에 달러 유통량이
늘면서 환율 상승세가 진정될 수
있다. 평소 충분한 외환을 쌓아두
면, 경제에 어려움이 생겨서 환율
이 급등하려는 압력이 생겨도, 막
대한 양의 외화를 시장에 공급함으
로써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 외
환보유고가 경제위기 때 강력한 힘
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다다익선?
많으면 오히려 독 될 수도
외환보유고는 얼마나 많아야 할
까?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우
선 IMF(국제통화기금) 등 글로벌
금융기구들은 최소 3개월 수출입액
합계에 해당하는 금액 정도는 갖는
게 좋다고 권고한다. 다음으로 국
가 유동외채(1년 내 만기가 돌아오
는 모든 외채) 수준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면 최악
의 경제 상황에서도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외채를 갚을 수 있
다. 현재 한국은 두 가지 기준 모두
를 충족하고 있다. 한국의 외환보
유고는 2018년 말 기준 4030억 7000
만 달러로 세계 9위에 해당한다. 한
국보다 앞선 나라는 중국, 일본, 스
위스, 러시아, 대만, 인도 등이다.
외환보유고가 많을수록 좋다는
주장이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위
기에 대비하기 위해 가급적 많이
외환을 쌓아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적어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모든 외국인 자금의 합계액만큼은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
다는 주장도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는 외
환보유고가 바닥나 발생했고, 2008
년에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3
개월 만에 외환보유고가 1000억 달
러나 감소하면서 외환위기 목전까
지 간 바 있다.
당시 은행들은 해외에서 부채 상
환 요구가 들어오자 한은에게 달러
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고, 한은이
이 같은 요구에 응하면서 외환보유
고가 급속도로 감소한 바 있다.
이런 사태에도 외환보유고가 바
닥나지 않으려면, 평소 충분한 양
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어
야 한다는 게 ‘다다익선’론의 주장
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외환보유
고는 경제에 오히려 짐이 될 수 있
다. 유동성 증대 효과 때문이다. 한
은이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시
장에서 달러를 계속 사들이다보면,
반대편에서는 이에 상응해서 원화
가 풀린다. 한은이 환율에 따라 원
화를 주고 달러를 사들이기 때문이
다. 막대한 양의 원화 공급은 물가
상승,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부작
용을 가져올 수 있다.
다음 그림을 보자. 한은이 시장에
돌아다니는 달러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흡수하지 않으면 환율은 내려
가겠지만(그래픽에서 3번까지 전
개), 환율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외
환보유고를 키우는 과정에서 원화
가 풀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 물가가 크게 오르는 일도 나
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환율
을 안정시키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키우게 되면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
다.(그래픽에서 6번까지 전개)
이때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
는 수단이 있다. ‘통화안정증권’이
란 이름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다. 한은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
해 시중에 판매하면 투자자들은 한
은에 돈을 내고 채권을 사간다. 그
만큼의 돈이 한은으로 흡수되는 것
이다. 한은이 외환보유고로 달러를
흡수할 때 풀게 되는 만큼의 원화
를,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다시 흡
수할 수 있으면, 환율 안정 대가로
유동성이 늘면서 물가가 오르는 부
작용을 막을 수 있다.(그래픽에서 9
번까지 전개) 무척 합리적인 방안
으로 보이는 듯하다. 환율안정의
부작용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
이 있다. 바로 ‘이자’다. 투자자들
은 통화안정증권을 그냥 구입하지
않는다. 한은이 제공하는 이자 조
건을 보고 구입한다. 한은이 통화
안정증권을 판매해 유동성을 흡수
하기 위해서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
고, 이는 한은에 큰 부담을 남긴다.
또 경제주체들에게 풀리는 이자는
시중 유동성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통화안
정증권을 발행했는데, 그 이자가
다시 유동성을 키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추가로 통
화안정증권을 발행해서 이자로 풀
리는 유동성까지 흡수해야 하는데,
통화안정증권 발행량이 지속적으
로 늘면서 이자 부담도 계속 커지
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통화안정증권 이자가 너무 많아
지면 한은은 통화안정증권 발행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증권을 더 이상 발행하지 못하면,
외환보유고를 쌓는 과정에서 풀리
는 원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물가 상승 같은 부작
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일이
심화되면 종국에는 물가 상승을 우
려해 달러를 흡수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외환보유고를 더 이상
쌓지 못하는 것이다.(그래픽에서
11번까지 전개)
통화안정증권 발행은 또 환율 인
상 정책의 효과를 감퇴시키는 역할
을 한다. 통화안정증권이 대거 발
행되면 투자자들은 고민을 하게 된
다. ‘기존 회사채도 있고 국채도 있
고, 거기에 통화안정증권까지… 이
렇게 채권이 많아졌는데 어디 투자
하지?’ 이런 상황에서 채권 발행주
체들이 투자자들 시선을 끌려면 예
전보다 높은 금리를 줘야 한다.
이런 행위는 결국 전반적으로 채
권 금리를 올리게 된다. 그러면 높
은 금리를 보고 외국에서도 자금
이 들어온다. 달러가 유입되는 것
이다. 이렇게 달러 공급이 늘면, 다
시 환율이 내려간다. 정부의 환율
인상 정책을 상쇄해버리는 것이다.
또 통화안정증권은 결국엔 갚아야
하는 빚이란 것도 생각해야 한다.
추후 경제에 큰 짐이 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시장 개입을 하
면서 통화안정증권을 충분히 발행
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온다. 물가
상승을 방치하는 것이다. 결국 외
환보유고를 쌓는 과정에서 발생하
는 물가상승의 부작용은 완벽하게
피하기 어렵다. 그러다 물가상승이
과도해지면 환율 하락 방어가 어려
워진다. 결국 외환보유고는 현실적
으로 계속 쌓기 어렵고, 무조건 많
이 쌓는 것이 좋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충분한
시장 개입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적립 수준을 찾아낼 수 있
어야 한다. 한은의 치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운용 어려운 외환보유고
외환보유고를 잘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은은 외환보유고에 있
는 달러를 그냥 방치하지 않는다.
달러로 구입 가능한 각종 해외 자
산에 투자한다. 그래야 운용 수익
을 내서 외환보유고를 보다 늘릴
수 있고, 외환보유고 관리 비용을
충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운용이
쉽지만은 않다. 한은의 외환보유고
운용은 대부분 미국 국채에 투자하
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미국 국채
는 미국 정부가 부도를 내지 않는
한 떼일 염려가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그 이면에
수익률은 극히 낮다. 안전한 만큼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물가상승률조차 벌충하지 못할 때
가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외국 주식, 해외
부동산, 외국 회사채 등에 대한 투
자를 늘리기도 어렵다. 자칫 손실
을 봤다가 위기 대응을 위한 최후
의 보루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
문이다. 또 위기가 발생하면 재빨
리 현금화해 이를 국내 외환시장
에 풀어야 하는데 미국 국채를 제
외한 다른 자산은 현금화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다. 당장 돈이 필요
한데 언제 부동산을 팔아 돈을 마
련하겠나.
그래서 무작정 고수익 고위험 자
산에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
국 어쩔 수 없이 미국 국채 같은 안
전자산 위주로 운용하고 있다.
한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
가 설립한 한국투자공사(KIC)에 일
부 운용을 맡기고 있다. 전체 4020
억 달러 가운데 250억 달러를 KIC
에 맡기고 있다. 한은이 직접 고위
험 자산에 투자할 수 없으니 투자
의뢰라도 하는 것이다. KIC처럼 국
가 자금으로 글로벌 투자를 하는
기관을 ‘국부펀드’라 한다. 싱가포
르의 GIC, 사우디아라비아의 PIF
등이 대표적이다.
안타깝게도 여러 국부펀드들 가
운데 KIC는 수익률이 부진한 편
에 속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
융위기 직전 미국의 투자은행 메
릴린치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
을 보는 등 큰 투자 실패 사례도 여
럿 갖고 있다. 외환보유고 수익률
을 높일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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