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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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7-06 10:15:04
  • 분류 : 자유마당

국민통합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청이다

 

 

김창남(정치학 박사, 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장)

 

국민통합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늘 범국민적 과제였고, 정치인들의 언어를 아름답게 수놓아왔다. 그러나 국민통합은 지금까지 구두선에 그쳤고 어떤 정부도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 갈등과 분열은 국가의 위기 대응능력을 저하하고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이 된 지 4반세기가 지났고, 세계 GDP 순위가 10(2021)에 이르렀지만 국민통합의 수준은 OECD국가 중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반면, 정치·경제·사회 갈등지수는 OECD 30개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우리나라는 지지정당, 성별, 세대, 학력, 가치 측면에서 체감하는 집단 간 갈등의 심각성이 세계 1위로 나타났다.

리서치기업 엠브레인이 2021년에 전국의 성인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이 양적·질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201970.3%, 202077.8%, 202185.8%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성별, 연령, 정치적 이념성향에 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대 대선의 승패를 갈랐던 0.73%, 247천 표라는 역대 가장 작은 표 차도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심각성을 시사한다. 8대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과 호남을 중심으로 드러난 강고한 정치적 지역주의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정치 사회적 갈등을 가늠하게 한다.

 

갈등은 증가하는데 국민통합을 위한 갈등관리는 최저 수준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갈등의 요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정치인, 이익집단 등은 사회 갈등과 분열을 특수 이익을 증진하는 데 이용했다. 일부 언론도 편파적인 정보전달과 의제설정, 오보, 가짜뉴스로 갈등 증폭에 가담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갈등이 속출했다. 특히 이념, 지역, 계층, 세대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사회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엠브레인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사회 갈등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경제적 양극화(52.8%, 중복응답)를 꼽았다. 빈부격차의 확대를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은 중장년층에서 두드러진다. 사회지도층의 지나친 사익추구(39.5%), 경제적·사회적 불안감(32.4%), 정치적 불안감(31.2%), 실업률 증가(28.7%)도 주요한 갈등 요인이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20, 3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책, 가치관 등과 관련하여 나타난 성별 갈등도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9년과 2013년에 각각 사회통합위원회와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갈등관리 등 국민통합의 복합적인 요소들을 포괄적균형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제도적 시스템의 미비, 네트워크와 협조체제의 결함 등으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독일의 공익재단 베텔스만재단이 OECDEU에 가입한 4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회통합 및 불평등 해소와 관련된 사회정책분야의 성과가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한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여성들이 노동시장 진입에 상당한 불이익을 겪고 있지만 관련 정책은 거의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서도 우리나라의 갈등관리 능력은 OECD 30개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들은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 국민 소득 수준, 문화적 영향력 등의 면에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사회 갈등관리 능력은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 갈등이 국가에 치명적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질도 중요한데, 베텔스만재단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질에서도 조사대상 41개국 중 28위로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성소수자·탈북자·이민자 등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 존재 등을 이러한 결과의 이유로 들었다. 엠브레인의 2021년 조사는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갈등의 정도가 심각해진 원인으로 정치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78.8%)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절대다수의 국민들(81.4%)은 정치집단들이 한국의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는 정부와 정치집단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민통합의 길

국민통합은 국민 개개인이 다양성을 존중받으면서도 국민 전체가 조화롭게 상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기존 질서 또는 가치관으로의 획일적 동화가 아니다. 국민통합은 국민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정·극복하여 심리적인 유대감·연대감·소속감·결속력·일체감을 앙양한다. 국민통합이 이루어진 사회에는 구성원 사이에 소통이 원활해지고 문화와 국가 비전이 공유된다. 국민통합은 정치적 안정과 사회경제적 성장의 기반이 된다. 국민통합은 국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솟게 한다. 그러므로 국민통합을 이루어 놓는 것은 효과적인 국가 위기 대응을 위해 긴요하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회는 평소에 갈등을 잘 관리한다. 사회 갈등이 위기로 전환되지 않게 하려면 갈등을 효과적으로 예방·조정·완화·해소할 수 있는 능력과 전략을 갖춘 갈등관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갈등관리 거버넌스가 구축되어 있어야 국민통합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수들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치와 구성 요소들을 이해·공유해야 한다. 합리적 사회규범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도 필수적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국민의 다양한 이익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선거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득표의 등가성에 입각해 정치적 대표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구비되어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개헌도 해야 한다. 능력 있는 정치시스템은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인 정치행위를 통제하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정치행위를 신장하여 국민통합을 용이하게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 정치인, 정당, 이익집단들은 국민의 이념적 분화와 갈등 요소들을 특수이익의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행정 관료집단, 법조계, 경찰 등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이들이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권력의 시녀로서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행태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언론도 편파적인 정보전달과 의제설정, 오보, 가짜뉴스로 사회 갈등을 증폭하는 행태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되어야 한다.

국민 삶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지속적 경제성장을 통해 민생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은 국민통합의 기본이다. 우리나라는 고용 없는 성장, 노동시장의 불안정, 납세자 감소 등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면서 그 과실을 국민들 사이에 공정하고 균형되게 배분함으로써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것이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국민 사이에 조세, 기회, 참여 등과 관련하여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과 관련된 세대 간의 갈등도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치·사회체제의 정당성과 능력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발생하여 사회적 불안정성이 증가한다.

국민통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이 이룰 수 없다. 정치적·경제적·기술적 약자의 보호, 이민자와 다문화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 종교적 신념의 자유 등 다양성과 이질성에 대한 승인과 배려가 필요하다. 사회보장제도의 확충과 균형적인 적용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불안정 요소의 상쇄도 필요하다. 불공정한 사회에서는 국민통합이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법 앞의 평등을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도 고려해야 한다. 신뢰, 소통, 규범 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을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면 사회적 협력과 거래가 촉진되고 국민통합의 힘이 된다. 사회적 자본이 잘 구비된 사회에서는 사회갈등이 합리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사회 갈등으로 인한 비용과 손실이 감소한다. 사회적 자본을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과 공공부문의 도덕성 및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북 분단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이념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완화·해소하는 것이 국민통합을 위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를 위해 사회구성원 사이에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촉진하여 다원적인 집단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배타성을 약화시켜야 한다.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대화와 토론을 촉진하여 소통과 공감 문화를 정착시켜야 국민통합이 촉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라를 선봉에서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지도자는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특수 이익의 대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경영에 필요한 인재는 널리 구해야 한다.

협소하고 편파적인 사상과 정치세력, 사적인 인연, 오도된 능력주의나 학벌주의 등에 구애되어 인재를 등용하면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가 혼란해진다. 지도자가 영웅주의나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 20대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제8회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인물들도 결정되었다. 새 정부는 국민통합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민대통합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하지만 호시탐탐하는 국내외의 파고가 높다. 안팎으로 밀려오는 경제·안보적 어려움에 더하여 사회경제적 갈등도 만만치 않다. 새 정부는 올바른 진로와 전략을 찾아 나라의 평화, 안정,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

지도자와 정부는 늘 역사에서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해 외세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굴욕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국민통합이 없이는 국가의 활로와 국민의 생존권을 확보할 수 없다. 국민통합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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